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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5 19:18:12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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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
라틴어: Manius Pomponius Mathō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형제)
폼포니아(딸)
직업 로마 공화국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233년
전임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루가
동기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후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르쿠스 푸블리키우스 말레올루스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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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장군, 집정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조부로 유명하다.

로마 공화정 초기부터 제정 시대의 군인황제시대, 서로마제국 시대까지 권세를 누린 폼포니우스 가문 출신으로, 이 귀족 가문 최초의 집정관으로 알려져있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 중 하나로, 사비니계인 폼포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폼포니우스 가문은 가문의 역사가 상당한 집안이다. 이들은 원로원 명부와 디폴마 밀리타리스(diploma militaris, 군사 졸업장 비문)를 통해 밝혀졌듯이, 프린키파투스로 부르는 원수정 시대까지 꾸준히 구성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프라이노멘(개인이름)을 폭넓게 사용했고, 코그노멘(가문성씨) 역시 초창기에 모두 사용한 마토 외에는 몰로, 무사, 루푸스, 바수스 등 너무 다양했다. 또 마토 가문만 남자 개인이름으로 마니우스를 선호할 뿐, 다른 지파 가문들은 노빌레스로 떠오른 뒤에도 마르쿠스, 루키우스, 티투스, 퀸투스, 푸블리우스, 섹스투스, 가이우스, 그나이우스 등을 마구잡이로 사용할 만큼 자유로운 성향으로 유명했다.

이런 폼포니우스 가문은, 로마의 두 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들 중 한 명인 폼포를 시조로 둔 사람의 후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버지가 폼포니우스라는 점도 그 증거라고 했는데, 문제는 로마 시대의 그리스인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지적했듯이, 누마 폼필리우스의 족보가 로마 시대부터 조작 논란에 휩싸여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폼포라는 이름은 사비니족 남성들의 개인이름 중 하나이고, 로마 시대의 남성 이름 중 하나인 퀸투스와 비슷한 뜻을 가진,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 이름이 폼포인 경우, 거진 그 아들이 성씨로 삼을 경우에는 폼포니우스라고 하는 경우 역시 부지기수였다.

또한 폼포니우스 가문이 이 주장을 펼친 것은 원로원 입성 전부터 진짜 족보를 내세워 이런 주장을 한 누마의 후손들인 칼푸르니우스, 피나리우스 가문과 달리, 뜬금없이 공화정 후기로 분류될 때부터였다. 따라서 이들이 아이밀리우스 가문과 함께 피나리우스, 칼푸르니우스 가문과 다르게 누마의 가계를 마메르쿠스, 칼푸스, 피누스, 폼포라는 네 아들과 딸 폼필리아 아래에서 폼포의 후손이 자신들이라고 주장한 것[1]은 당대부터 사람들이 크게 믿지 못하면서도 마지못해 인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왜냐하면 폼포니우스 가문이 공화정 후기부터 워낙 떳떳하게 주장하면서, 의문을 표하면 강경대응을 하는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후손이 되고 싶어하니까 그냥 인정해주자."고 넘어가는 것이 현실적인 타협책으로 괜찮았기 때문이다.[2]

따라서 로마 시대의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해, 현대의 여러 학자들은 폼포니우스 가문이 사비니인 남성 폼포가 조상인들, 아이밀리우스 가문처럼 누마 폼필리우스의 후손을 자처했을 것을 강하게 확신 중이다. 이는 누마의 차남 칼푸스를 시조로 둔 칼푸르니우스 가문과는 그 평이 당대부터 다른 점이다.

이런 논란을 가진 폼포니우스 가문은 그럼에도 공화정 시대부터 사비니계 중 발레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칼푸르니우스 가문 등과 함께 유서 깊은 집안으로 평가됐다.

이 가문원 중 제일 유명한 인사는 로마 공화정 시대 당시 보통 2명이 거론됐다. 첫번째 인물은 기원전 445년경 호민관을 지낸 마르쿠스 폼포니우스이다. 두번째 인물로 거론된 인물은 가문 전체 최초로 집정관을 지낸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이다.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는 폼포니우스 가문 전체 중 최초로 지파성씨의 귀족 가문으로 분가한 폼포니우스 마토 가문 출신이다. 그의 조부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로, 정황상 초기 마토 가문의 남성이었다. 그는 같은 이름의 아들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를 뒀는데, 종종 "마니우스의 아들, 마니우스의 손자인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로 불린다.

그는 "마니우스의 아들, 마니우스의 손자인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로 불린 인물의 아들이다. 형제로 기원전 231년 집정관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가 있었다.

젊을 적의 기록이 부실해, 어떻게 경력을 밞았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다가 기원전 23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파비우스가 리구리아인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는 동안, 그는 사르데냐에서 일어난 봉기를 진압했다.

아울루스 겔리우스에 따르면, 카르타고는 이 시기에 해군을 파견해 사르데냐를 탈환하려 했지만 로마 해군에 저지되었다. 이후 파비우스는 카르타고인들에게 창과 지팡이를 보내면서,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했다. 창을 택한다면 전쟁이고, 지팡이를 택한다면 평화가 있을 것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이 지팡이를 선택하면서 평화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리비우스 등 다른 사료는 카르타고 해군이 사르데냐를 되찾으려 했다가 무산된 시기는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가 집정관이던 기원전 235년이라고 밝혔다.

그에겐 딸 폼포니아가 있었다. 이 여인은 기원전 218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결혼해 두 아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를 낳았다.
[1] 이 주장과 함께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버지가 폼포니우스였다는 그들의 의견까지.[2] 이렇게 넘어간 또 다른 이유는 여러 대귀족 가문 중 아이밀리우스 가문까지도 폼포니우스 가문의 주장에 편승해 이를 주장삼아 손 잡고 함께 누마의 후손을 주장 중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누마 폼필리우스의 후손 중 칼푸르니우스 가문과 달리 강경하기로 유명했고, 로마의 아주 오래된 파트리키로 누마의 장남 후손으로 사람들에게 불린 피나리우스 가문이 이 시절에 멸문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