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라틴어: Lucius Aemilius Barbul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아버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81년 |
전임 |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
동기 |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
후임 |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티베리우스 코룬카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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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아이밀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는 기원전 317년과 기원전 311년 집정관을 역임한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다. 기원전 281년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로마 사절들을 무례하게 대한 타라스(오늘날 타란토)를 응징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먼저 타라스에게 평화 협상을 제의한 뒤, 그것이 거부당하자 전쟁을 선포하고 타라스 영내로 쳐들어가서 여러 과수원과 농장을 파괴했다.얼마 후 타라스의 구원 요청을 받은 에페이로스 왕국의 피로스 1세가 급파한 밀로의 분견대가 타라스 해안에 상륙했다. 이에 바르불라는 해안 도로를 따라 철수를 시작했는데, 도로 우측에는 산맥이 있었고 좌측에는 바다가 있었다. 타라스 함대가 해안가를 따라 항해하며 로마군을 향해 화살 세례를 퍼붓자, 바르불라는 생포한 타라스인들을 좌측면에 내세우게 해, 동족을 살상할 수 없었던 타라스인들이 화살을 쏘지 못하게 했다. 이후 메타폰토로 철수한 뒤 브라다누스 계곡을 겨처 베노우스 시에 들어가 겨울을 보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의 <개선장군 목록>에 따르면, 기원전 280년 전직 집정관으로서 타라스, 삼니움, 살렌토인들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한 뒤 로마로 귀환하여 개선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269년에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함께 감찰관을 역임했지만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는 기원전 230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