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아풀레이우스 판사 라틴어: Quintus Appuleius Pans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부스 호모(Novus Homo: 신참자)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아풀레이우스 판사(조부)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00년 |
전임 | 독재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부스 |
동기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
후임 | 마르쿠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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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행적
플레브스 집안인 아풀레이우스 가문 최초로 집정관에 오른 인물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는 그의 조부가 가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는 것만 기재되었다. 기원전 391년 호민관을 맡아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를 로마에서 쫓아낸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가 그의 선조일 것으로 추정된다.기원전 300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움브리아의 도시인 네퀴니움(오늘날 이탈리아 나르니) 공략에 착수했으나 실패했다. 그가 집정관을 맡은 시기에 호민관 오굴니우스의 법이 통과되면서 고위 사제직인 폰티펙스와 아우구르(Augur)의 숫자가 늘어났고 플레브스도 이 직책에 선임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며 후손 역시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아풀레이우스 씨족은 그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