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라틴어: Gnaeus Fulvius Centumal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조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아버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29년 |
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
동기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
후임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루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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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4세기 중반에 투스쿨룸에서 로마로 이주한 뒤 로마 정계에서 활약한 노빌레스 가문인 풀비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는 그나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의 조부는 기원전 298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라고 추정한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기원전 229년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두 집정관은 아드리아 해에서 해적행위를 일삼는 일리리아 해적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테우타를 무찌르기 위한 원정을 준비했다. 알비누스는 20,000명의 보병과 2,000명의 기병으로 구성된 육군을 이끌었고, 켄투말루스는 200척 함대 사령관을 맡아 브룬디시움에서 아폴로니아로 수송했다. 아폴로니아와 에피담누스는 별다른 저항없이 귀순했다.
그 후 로마군은 일리리아 본토 깊숙이 침투해 여러 마을을 공략하여 약탈한 뒤 대부분의 영토를 로마와 동맹을 맺은 파로스의 데메트리오스에게 양도했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켄투말루스는 연말에 160척의 함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알비누스는 일리리아에서 겨울을 보냈다. 이듬해 봄, 테우타는 자신의 선박이 리수스 강 남쪽으로 항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공물 지불을 보장하며 로마가 통제하는 도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알비누스와 켄투말루스는 로마로 돌아와서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는 기원전 211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나, 기원전 210년 한니발 바르카를 상대로 2차 헤르도니아 전투에서 맞붙었다가 참패를 면치 못하고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