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라틴어: Lucius Munatius Plancus | |
생몰년도 | 미상 ~ 15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제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미상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아버지) 무나티아 플란키아(누이) 무나티아 플란키나(딸)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13년 |
전임 |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
동기 | 가이우스 실리우스→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
후임 |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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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갈리아 전쟁과 카이사르의 내전에서 활약했고, 기원전 42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패권을 놓고 대립할 때 초기에는 안토니우스 편을 들다가 나중에 옥타비아누스 쪽으로 돌아선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의 아들이다. 서기 13년 가이우스 실리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가이우스 실리우스가 모종의 시기에 물러난 뒤 보결 집정관이 된 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다.14년, 새 황제 티베리우스의 지시에 따라 라인 강 전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우비오룸(현재 쾰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주둔한 군단병들을 진정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오히려 군단병들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게르마니쿠스가 개입한 덕분해 풀려났다. 그 후 15년 판노니아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끝으로, 행적이 더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딸 무나티아 플란키나는 기원전 7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의 아내로, 18년 남편이 시리아 총독으로 부임하자 남편을 따라 그곳에 간 뒤 남편과 함께 게르마니쿠스와 대 아그리피나 부부를 적대적으로 대했고,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음해를 일삼았다. 결국 게르마니쿠스가 급사한 뒤 남편과 함께 로마로 소환되어 게르마니쿠스를 저주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 결과 처음에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녀와 친분이 두터웠던 리비아 드루실라의 강한 압력에 버티지 못한 티베리우스가 무죄로 변경했다. 그러나 리비아가 사망한 후인 33년 또다시 기소되자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