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라틴어: Gaius Poppaeus Sabinus | |
생몰년도 | 미상 ~ 35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모이시아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퀸투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조부) 퀸투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아버지)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친형제 또는 이복형제) 대 포파이아 사비나(딸) 포파이아 사비나(외손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외손자)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9년 |
전임 |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
동기 |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
후임 | 마르쿠스 파피우스 무틸루스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에트루리아의 테라모 지역에서 유래한 포파이우스 씨족 출신으로, 조부와 아버지 모두 퀸투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 9년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와 공동으로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9년 보결 집정관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는 그의 친형제 또는 이복 형제로 추정된다. 11~12년 모이시아 지방의 법무관 및 총독을 맡았으며, 15년에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마케도니아와 아카티아 총독으로 선임되었다.이후 사망할 때까지 모이시아, 아카이아, 마케도니아를 통합한 속주의 총독을 역임하면서, 테살리아의 키리온과 메트로폴리스 간의 경계 분쟁을 중재했다. 26년 트라키아에서 발발한 봉기를 진압한 뒤 개선 훈장을 받았다. 31년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이며 세야누스의 농간으로 황궁 지하감옥에 수감된 뒤 굶어 죽은 드루수스 카이사르가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전역에 퍼졌다. 그는 이 소문을 듣고 급히 니코폴리스로 향했고, 드루수스라는 인물은 실은 19년 집정관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뒤 티베리우스에게 보고했다. 가짜 드루수스는 지지자들을 잃고 이탈리아로 향하는 배에 탄 뒤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사비누스는 35년 말에 모이시아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타키투스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파트리키 출신은 아니었지만, 프린켑스들과의 친밀함 덕분에 집정관과 개선 훈장을 얻었고, 24년간 가장 중요한 지방의 우두머리에 올랐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명령에 대처하면서도, 그 명령을 넘어서지 않았다.
사비누스는 알려지지 않은 여성과의 사이에서 딸 대 포파이아 사비나를 낳았다. 대 포파이아 사비나는 에퀴테스 출신으로 재무관을 지낸 원로원 의원 티투스 올리우스와 결혼해 네로 황제의 2번째 황후가 될 포파이아 사비나를 낳았다. 31년 티투스 올리우스가 세야누스 파벌로 간주되어 자살을 강요당해 죽은 뒤, 대 포파이아 사비나는 24년 집정관을 지낸 푸블리우스 코느렐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와 재혼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를 낳았다. 그러나 47년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가 클라우디우스 1세에 의해 반역 혐의로 처벌될 때 아시아티쿠스와 애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 체포된 뒤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