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키무스 하테리우스 아그리파 라틴어: Decimus Hatherius Agrippa | |
생몰년도 | 기원전 20년 ~ 32년 |
출생지 | 로마 제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퀸투스 하테리우스(아버지) 빕사니아 아티카(어머니) 도미티아 레피다(아내)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아들)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22년 |
전임 |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그나이우스 트레멜리우스 |
동기 |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
후임 |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피누스 |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5년 집정관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퀸투스 하테리우스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와 카이킬리아 아티카의 딸인 빕사니아 아티카의 아들이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는 42세에 집정관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기원전 20년경에 출생했을 것이다. 기원전 3년 기원전 16년 집정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대 안토니아의 장녀인 도미티아 레피다와 결혼했다. 도미티아 레피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외손녀이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증손녀였다.15년 호민관에 선임된 그는 티베리우스가 원로원 회의에 출석한 뒤 연극 배우들의 방종한 행동을 개탄하며, 군중이 소요 사태를 일으켰을 때 법무관이 배우들을 막대기로 처벌할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제시하자, "아우구스투스가 생전에 배우들은 신체적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를 뒤집는 건 옳지 않다"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는 티베리우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데키무스를 비난했지만, 티베리우스는 침묵했다. 그 후 법안은 티베리우스의 뜻대로 통과되었다.
17년 법무관에 선임되었고, 22년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당시 그는 티베리우스의 신임을 얻었으며, 그에게 몇 가지 법안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특히 원로원에서 같은 가족 구성원의 참석을 제한하자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2년 세야누스의 음모가 폭로된 직후, 그는 티베리우스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그러나 데키무스가 세야누스의 음모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의 미망인은 1년 후 27년과 44년 집정관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 파시에누스와 재혼했다.
그는 도미티아 레피다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를 낳았는데, 이 아들은 53년에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