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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병술(用兵術, Military Arts)는 군사력을 사용하는 기술로, 국가안보전략을 바탕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지적 능력[1]이다. 육군에서는 "전쟁, 전투, 교전[2] 등에서 군사력을 운용하는 제반 술(術)과 과학(科學)"으로 정의한다. 국가전략의 하위 분야라고 볼 수도 있다.2. 용병술의 발달
오랜 기간 용병술은 전략과 전술로 나뉘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투를 통해 적의 군대를 격멸하고 적국의 영토를 점령해야 했다. 아주 오래 전, 인류 초기에는 용병술 수준의 구분이 없었으나 전쟁과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 차원에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수준의 용병술이 전략, 군이 직접적으로 전투력을 운용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용병술이 전술로 발전했다. 이러한 이분법은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고, 현대에도 군사학 지식을 갖추지 않은 일반인은 용병술을 '전략', '전술'과 동일시한다.나폴레옹 시대에 들어서면서 용병술의 새로운 영역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이루어진 대규모 군대가 전쟁에 동원되었고 전장의 규모가 기존에 비해 크게 넓어졌다. 군대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하기 위한 편제인 사단과 군단 편제가 새로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이러한 대규모 제대를 적시에 전장으로 기동하여 전투력을 집중하는 것이 전투에서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는데, 나폴레옹은 전투 이전 정보 수집을 통한 부대 이동, 군단 간 간격 조정,'방진 대대' 대형 등으로 전장에 신속히 다수의 병력을 투입할 수 있었다. 또한 나폴레옹은 정면 공격이 아닌 포위공격을 통해 적 진지를 돌파하고 전과를 확대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은 작전(술)적 사고의 시작점으로 인식된다.
이후 헬무트 폰 몰트케는 프로이센 총참모장로 복무하면서 작전적 지도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당시 프로이센군의 작전명령은 빌헬름 왕의 이름으로 발령되었으나 실제 명령은 몰트케에 의해 내려졌다. 당시 군주는 군사적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총참모장이 빌헬름 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왕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작전적 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에는 몰트케가 작전을 전략, 전투와 구분지어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먼저 몰트케는 왕이나 수상, 전쟁장관이 직접적으로 작전에 관여해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몰트케가 생각한 왕이나 수상의 역할은 전략적 수준에서 양면전쟁을 회피하고 군대에 충분한 군사력을 제공하는(이 부분은 양병 측면이긴 하지만) 것뿐이고, 그 이후에는 전적으로 군대가 작전을 수행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보았다.이러한 몰트케의 생각은 아래와 같은 그의 언급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정치는 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야 한다. 전략의 다음 과업은 군사적 수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의 과업은 군사력을 전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최고로 불운한 지휘관은 자신이 통제할 걸 상부로부터 부과받은 지휘관이다. 매일, 매시간 마다 그는 개념, 계획, 의도를 최고 지휘부의 대리인에게 설명해야 하거나 자기 뒤에 있는 전신을 사용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건 최고의 불운이다. 그러면 지휘관은 반드시 자신감, 주도권, 결심, 과감함을 잃게 된다. 이러면 그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과감한 결심은 자신에게만 나올 수 있다." Generalfeldmarschall Graf von Moltke, Ausgewählte Werke (Berlin: Reimar Hobbing, 1925), I: 55.
"작전 지휘관은 왕으로부터 내려오는 전체적인 지시만 받아야 한다. 이 지시들은 군사적 목적보다 정치적 목적을 유지해야 한다. (중략) 구상해 둔 작전계획과 심지어 작전개념이라도 전역 동안 변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적이 우리의 의도에 반하려면 우리만큼 의지가 강해야 한다. 수천 번의 기회가 일어날 것이고, 전투의 승패는 전쟁의 전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Philip H. Sheridan, Personal Memoirs of P. H. Sheridan, 2 vols. (New York: C. L. Webster and Co., 1888), 2: 367, p. 56.
한편 작전적 지도는 적군의 파괴를 통해 지휘관의 의지를 꺾는것이 목표이고, 작전적 지도는 예하 부대에 대한 유연한 지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마이클 크라우스(Col. Michael D. Krause, U.S. Army, Retired)는 몰트케의 작전적 지도 개념을 말과 기수의 관계로 설명한다. 일반적인 명령을 내일 때는 고삐를 느슨하게 한다. 하지만 조마(調馬)를 할 때나 정확히 선회하거나 기동을 할 때는 "조여진 고삐"가 필요하다. 말은 점차 기수가 말에게 보내는 신호와 그 반대의 신호를 이해하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다시 "느슨한 고삐"와 "조여진 고삐"가 쓰여도 이제 말과 기수는 서로가 무엇이 필요한지 의도를 이해한다. 몰트케는 이 개념을 작전적 지도에 사용했다.
"지휘관은 명령을 최소화해야 한다. 지휘관은 전체 작전을 상상해야 하고 만약 너무 많은 명령을 내리면 예하부대들은 자신들의 전체 개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명령이 너무 많으면,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리게 된다. (중략) 지휘관은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명령을 짧고 간단하게 내려야 한다. (중략) 이 개념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이 명령들은 동기, 예상, 추측이 되면 안된다. 하위부대들이 작전 목표를 이해하는 건 극히 중요하고 그래서 작전 목표가 실제 명령에 대치되더라도 실행시켜야 한다. 고위 사령부의 관점에서 하위부대들에 왜 목적의 달성이 필요한지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 몰트케는 전투와 작전을 구분지어 인식하였다. 몰트케가 생각한 총참모장과 고위 지휘관의 할 일은 현장에서 전투지휘를 하기보다는 어디에서 전투를 실행하도록 계획하고, 어느 지점에서 유리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작전술과 전술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의 관점은 철도, 전신, 화력 등 기술의 발전[3], 그리고 분진합격을 통해 실현되었다. 몰트케가 작전적 수준이나 작전술 자체를 교리화, 위계화하지는 않았으나 전략과 전술 사이의 개념을 인식하고 이를 작전적 지도로 표현한 사실은 분명하다.
한동안 정체된 작전술 개념은 소련에서 다시 발전되었다. 스베친 등 소련의 군사이론가들은 러시아 내전, 1차 세계대전 등의 전훈으로부터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스베친(Svechin)은 1923년과 1924년에 적군 군사대학에서 전략에 대한 일련의 강연을 하였고, 여기서 작전술이라는 전쟁의 중간 범주를 최초로 제안했다. 그가 제시한 작전술은 "전역의 특정 기간에서 최종상태로 설정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시된, 군사 행동 전구의 지정 부분에서의 기동과 전투의 총체"이며, 작전술은 전략의 재료, 전술은 작전술의 재료로 제시했다. 스베친의 작전술 개념은 다룬 소련 군사사상가들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미군 또한 작전술을 받아들였다. 미군은 작전술은 꽤 오랜 기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였으나, 베트남 전쟁의 교훈, 그리고 적극방어 교리로 인한 전략과 전술의 단절(전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점차 작전술 개념을 받아들였다. 미육군이 1983년 작전술을 공식 군사교리로 도입하면서 용병술 체계는 군사전략-작전술-전술 3단계로 분화되었다.
물론 미육군의 작전술 도입에는 꽤나 격한 반대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작전술이나 작전적 수준을 부정하는 주장이 존재한다.
3. 현대의 용병술 체계
이론적으로 현대의 용병술은 일반적으로 군사전략 - 작전술 - 전술 3단계로 나뉜다. 용병술의 단계를 구분짓는 이유는 '용병술의 발달' 문단에 서술된 바와 같이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에 따라 군사력 운용 시 특성과 고려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 군사력 운용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군을 지휘통제하는 차원, 실제 전장에서 전투력을 운용하는 각 수준이 맡는 역할이 구분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군사력 운용을 위해 용병술 체계도 여러 단계로 나뉘었다.
3.1. 군사전략
3.2. 작전술
3.3. 전술
4. 용병술 체계의 대체: 전쟁(수행)의 수준
2020년대 미군은 용병술 체계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1] 합동참모본부, 합동교범 10-2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 2020b, p. 205.[2] 이러한 한국군의 무력충돌의 수준에 대한 인식은 다소 낙후되어 있다.[3] 철도는 전략적 기동성을 증가시켰고 공세작전 수행을 도왔다. 전신은 전장으로 오는 부대들에 지시를 내리게 도와주었다. 강화된 화력은 전술적 방어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