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우범곤 禹範坤 | Woo Bum-kon | |
출생 | 1955년 3월 18일[1] |
경상남도 부산시 초량출장소 초량동 245-8[2] | |
사망 | 1982년 4월 27일 (향년 27세) |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단양 우씨 (丹陽 禹氏) |
본적 |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 문산리 537 (現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우박길 70-1) |
신체 | 174cm, 86kg |
학력 | 금성고등학교 (졸업) 경남공업전문학교 (중퇴) |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
사인 | 폭사 (수류탄 자살) |
범죄 | 대량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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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직접적으로 가장 많이 죽인[3] 대량살인마[4]로 범행 당시 직업은 경찰관, 계급은 순경이었다.통칭 우 순경. 이에 따라 그가 1982년에 저지른 대량살인 사건을 '우순경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2명[5]을 연달아 살해해 대한민국 최다 살인 기록을 남긴, 연쇄살인과는 다른 연속살인범[6]이다.
당시에는 해당 사건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이 기록은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의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갱신했지만 기네스에서는 우범곤은 물론 브레이비크가 갱신한 기록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기록을 갱신하겠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지를 흉악범이 나타날 가능성 때문이다.[7]
2. 생애
경상남도 부산시 초량출장소 초량동(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245의 8번지[8]에서 경찰관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적은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 문산리 537[9]이다. 어린 시절은 별다른 말썽 없이 평범하게 보냈으며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차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처럼 권총을 차고 일하겠다고 뽐내기도 했다고 한다.하지만 중학교 진학 후부터 내성적이던 성격이 두드러지고 학업에도 흥미를 잃어 무단결석[10]이 2년 동안 30일이나 되었으며 고교 시절에는 졸업 당시 반에서 65명 중 63등으로 열등생이 되고 말았다. 고교 재학 시절에는 분을 이기지 못해 유리창을 깨고 그 파편으로 배를 긋는 등의 자해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특히 고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병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우범곤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했으며[11] 특등사수로 뽑일 정도로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초임지는 부산직할시 남부경찰서 감만3파출소[12]였다. 이후 태권도 3단과 유도 3단을 보유한 무술 유단자였던 그는 서울특별시 101경비단에 선발되어 청와대 경호에 근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음주와 관련된 문제로 중도에 좌천성 전출당하여 경상남도 의령군의 의령경찰서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후 또 좌천당하여 궁류 지서[13]로 전출되었다.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피의자들을 함부로 다루거나 윽박지르는 등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고 하며 당시 동료 순경에 따르면 평소 유순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져 꼭 무슨 사고를 낼 사람 같았다고 한다.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된 것도 성격이 너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전출된 후에도 술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3. 총기 난사 사건
자세한 내용은 우순경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관련 자료
5. 같이 보기
[1] 음력 2월 24일[2]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부산에 구제가 실시된 시기는 1957년도이고 직할시로 승격한 시기는 1963년이다.[3] 한 사람이 저지른 최다 연속 살인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었다. 현재는 유사 사건 및 사고를 막기 위해 범죄나 사고 관련 기록은 등재하지 않는다.[4] 간접적인 살인까지 포함하면 첫 번째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선장 이준석(미필적 고의 및 부작위로 인한 살인), 두 번째는 대구 지하철 참사의 범인 김대한(방화로 인한 살인)이다.[5] 정확히 집계되지 않아 언론마다 숫자가 다르며 55명에서 62명까지 제각각이다.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팀에서 경찰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답변에 따르면 56명이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는 사망자 명단에 추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56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6] 연쇄살인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연속살인은 냉각기가 없다는 점이다. 연쇄살인은 처음 살인 이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년간의 신체적, 정서적 냉각기를 거치지만 연속살인은 냉각기 없이 단일 사건 내에서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해 1일에 사람을 죽이고 2~3일을 쉰 뒤 4일에 죽이면 연쇄살인, 1일에 사람 4명을 한 번에 죽이면 연속살인으로 이해하면 된다.[7] 기우가 아닌 것이, 흉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다른 흉악범에게 경쟁 심리를 갖는 사례는 비교적 흔한 편이다. 실제로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다른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에게 경쟁 심리를 보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연쇄살인범 온보현의 경우 살인 집단 지존파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요한 경쟁 심리를 보인 사례가 있다.[8] 나훈아의 생가와 고작 한 블록 떨어져 있다.[9] 現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우박길 70-1(문산리 537). 단양 우씨 집성촌이다.[10] 아무 사유가 없거나 합당하지 않은 사유로 결석하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무단결석이 더 크게 문제시되었다.[11] 병역 1978년 8월 30일 해병대 병장 제대, 군번: 9408941. 어차피 범죄자라 기수열외 대상이겠지만 해병대 기수는 305기이다.[12] 현재는 감만치안센터로 통합되었다.[13] 현재는 궁류치안센터로 명칭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