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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4:22:23

우키타 나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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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타 나오이에의 목상

1. 개요2. 생애3. 평가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宇喜多直家
(1529년 ~ 1581년)

일본 전국시대 비젠(備前)국의 다이묘. 통칭은 사부로우에몬노조(三郞右衛門尉). 일명 비젠의 효웅. 조부의 복수를 위해 시마무라 모리자네를 암살한 것을 비롯, 원수인 나카야마 노부마사(中山信正)나 사이쇼 모토쓰네(穝所元常) 등을 모살하는 등 모략의 달인으로 평가된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항상 승자의 편에 서기 위한 줄타기 외교와 처세에도 능수능란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문의 앞날을 위해 책략을 꾸몄던 대단한 모략가다.

2. 생애

1529년 우키타 오키이에(興家)의 아들로 태어났다. 1534년 조부 요시이에(能家, ? ~ 1534)가 시마무라 모리자네(島村盛實, 1509 ~ 1562) 등에 의해 암살당해 아버지와 함께 도주하였다. 성인이 된 후에는 지역의 다이묘인 우라가미 무네카게를 섬겼다. 이때 우라가미 가는 무네카게와 무네카게의 형 마사무네가 서로 다투고 있었으며, 우키타 가문 역시 나오이에와 마사무네를 섬기는 구니사다로 분열되었다. 나오이에는 구니사다를 무찔러 죽이고 우키타 가문의 가독을 탈취했다.

나오이에는 책모에 뛰어나 우라가미 씨의 세력확대 와중에도 자신의 영지를 차곡차곡 넓혀갔다. 그리고 조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부를 살해한 시마무라 모리자네를 암살한 것을 시작으로, 나카야마 노부마사(中山信正)의 딸과 결혼해 그를 장인으로 모신 후 안심하고 있을 때 암살하거나, 다쓰노구치 성(龍口城) 성주 모토쓰네(穝所元常)를 살해하는 등의 모략을 여러번 꾸몄다. 이후로도 자기 딸을 암살 대상에게 시집보내 인척관계를 맺은 후 상대가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을 때 암살하는 수법을 자주 썼으며, 이 과정에서 자기 가족도 망설임 없이 같이 살해했다.

1566년 2월에는 우라가미 가문 영지 북쪽의 미마사카국으로의 진출을 시도한 빗추의 미무라 이에치카(三村家親)를 호소카와 가문의 로닌을 기용하여 철포로 암살하고, 다음해 7월에는 묘젠지 전투로 그때까지 비젠 국 서부에 진출해 있던 빗추 군세를 몰아내는데 거의 성공하였다. 그 뒤에도, 인척관계였던 가나가와 성 성주 마쓰다 모토테루(松田元輝)·모토카타(元賢) 부자와 오카야마성 성주 가나미쓰 무네타카(金光宗高)등을 몰락시키고, 그 영지를 자신의 지행으로 삼는 등 세력을 확대하여, 우라가미 가문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1569년 결국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아카마쓰 마사히데(赤松政秀, 1510 ~ 1570)와 결탁하여 주군인 우라가미 무네카게에게 반기를 든다. 하지만 아카마쓰의 패배와 오다의 회군으로 무네카게에게 항복하여 용서를 빌게 된다.

이후 모리(毛利) 가문과 손을 잡고, 1574년에 무네카게의 어린 조카손자, 곧 마사무네의 손자 히사마쓰마루(久松丸)를 옹립하여 다시 반기를 들었다. 이때 우라가미 가문의 무장들과 주군 사이를 이간질시켜 전력을 크게 약화시킴으로서 무네카게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결국 비젠 국을 손에 넣었으며 .빗추의 미우라 가문을 공격하는 등 지속적으로 세력을 넓혀 빗추와 미마사카국 일부까지 확장에 성공한다. 필요가 없어진 히사마쓰마루는 독살되었다. 이후 우라가미 잔당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힘을 쏟는다.

1578년 12월 비젠국 내부의 우라가미 잔당과 하리마에 피신한 우라가미 가문 일원들이 일제히 봉기해 침공하자 고지마 지방을 점령당하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결국 진압하는데 성공하였고 우라가미 가문의 뿌리를 뽑는다.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가 진격해오자, 나오이에는 저항 끝에 노부나가에 복종하게 되었다. 이후 각지를 전전하며 모리씨와 전투를 되풀이했다.

1581년 12월에 오카야마 성에서 사망한다. 이때 그의 나이 53세였다. 사인은 출혈성의 항문질환으로 대장암아니면 치질이었던 것 같다. 평생 말안장 위에 있다 보니 항문이 남아나질 않았겠지만, 효웅의 말로로서는 뭔가 웃프다.

후사는 어린 아들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모략을 사용한다. 당시 아들은 너무 어렸고 자신은 여러 과정에서 적을 영 많이 만든지라 가문이 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후사의 후견인이 될 만한 인물을 고민한 끝에 하시바 히데요시를 불러들여 그에게 아내와 아들의 후견을 부탁하고 죽는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걸 받아들였는데... 그 방법이 과부가 된 나오이에의 아내를 자기 첩으로 삼고 히데이에를 자기 양자로 들인 것이었다. 그래도 히데이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방에서 후손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으니 자기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 마지막까지 영악한 효웅이었다.

3. 평가

일개 도망자에서 다이묘로 오르기까지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암살·모살해나간 탓에 일명 비젠의 효웅이라는 이명이 붙어 있다. 이 시기 효웅 소리를 듣는 인물인 사이토 도산(齋藤道三)이나 마쓰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 등을 보면 알겠지만, 비정한 책략가의 이미지로 기록에 남았다. 또 뛰어난 모략으로 인해 이즈모(出雲)의 아마고 쓰네히사(尼子經久), 아키(安藝)의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와 나란히 주고쿠(中國) 지방의 3대 모장(謀將)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오이에는 다른 모략가들보다도 무시무시한 인물로 평가된다. 모략가들이 악명을 떨치는 이유는 주로 주가를 뒤엎고 권력을 찬탈한 것이나 암살, 계략 등 음흉한 수단을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나오이에는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직계 가족, 자식마저 계략의 도구로 쓰거나 배신해서 죽게 만드는 등 훨씬 잔혹한 수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장인을 죽인 것을 시작으로, 딸을 시집보내 안심시켜둔 후 기습공격해서 딸과 함께 사위 집안을 쓸어버리는 행동을 수 차례나 저질렀다. 이게 친족을 배신하는 패륜행위임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결혼은 엄연한 동맹관계 수립이므로 사위를 공격한 건 같은 편의 뒤통수를 쳐서 죽인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모략을 수도 없이 사용했기에 끝내는 가족에게까지도 두려움을 사서, 동생 타다이에(宇喜多忠家, 1533 ~ 1609)는 "형은 뭘 생각하는 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므로 형을 만날 때는 항상 속에 사슬갑옷을 껴입었다."라고 했을 정도.

한편으로는 가신을 아끼고 권농과 절약을 통해 병량을 비축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계략을 꾸미더라도 되도록 나오이에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고 가신단에게 피해를 강요하거나 숙청하는 일은 없었으며, 계략만이 아닌 전투에도 능했기 때문에 가신단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조카마치(城下町)를 활성화했고, 나오이에와 히데이에 2대의 노력으로 오카야마(岡山) 성[1]이 상업의 중심지가 되기에 이르렀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고바야카와 가문에게 넘어갔으며 나중엔 이케다(池田)가문이 최종적으로 차지하게 된다.

4. 대중 매체에서

캐릭이 캐릭이다보니 주인공으로 다루어진 적은 전혀 없고,[2] 문학작품이나 게임에서 주인공이 직접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다. 다만 '난세의 효웅이었다'라고 설명하고 넘어가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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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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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비교적 높은 능력치를 자랑하며, 특히 지력과 정치력에 특화되어 있다. 당연히 야망이 높다. 책략가에 걸맞은 능력치와 얼굴 그림을 가지고 있다. 무장풍운록, 천상기, 열풍전, 람세기에서는 얼굴 그림이 위의 목상과 똑같이 생겼다. 그러나 다이묘로서는 우라가미 가문에서 막 떨어져나온 허약한 시절도 있는데다 우라가미 가문을 집어삼킨 뒤에도 가신 수만 많지 능력치는 고만고만해 어려운 편이다. 이즈음이면 모리 가문과 오다 가문이 주고쿠의 패자를 놓고 다툴 때라 주변 상황도 안 좋다. 역사적으로도 둘의 휘하 세력에 가까웠으니.

창조에 와서도 85/74/96/89 의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어 일급 무장인 점은 여전하다. 개인 전국전으로 우라가미 가문을 무너뜨리고 하극상을 일으키는 것과 가문 재흥 이후 영지인 오카야마 성을 본성으로 발전시키는 이벤트가 존재한다.

이미지가 아직도 확립되지 않았는지 창조, 대지, 신생의 일러가 전부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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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NHK 대하드라마 군사 칸베에에도 등장하였다. 마침 히메지와 가까운 비젠 지방이기 때문에 나름 비중있게 등장. NHK 대하드라마에서 특이한 인물이나 기벽이 있는 인물을 즐겨 연기하던 진나이 타카노리가 열연했다. 독살의 달인이라는 점이 유감없이 묘사되었는데, 주인공인 구로다 간베에와 면담하는 도중 가신이 갑자기 독을 마시고 쓰러져 죽어버리는 등[3] 계략가로 유명한 칸베에조차도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만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병으로 죽으면서 아들 히데이에를 도요토미 가문에 맡긴다.


[1]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에 있는 평산성[2] 소위 천하인이라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등과의 접점이 적다는 점, 게다가 친척이나 가신의 딸을 양녀로 삼아 적에게 보낸 뒤, 방심하면 암살+독살로 제거하는 그의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환영받은 적이 없다. 에도시대 초기 히데요시의 생애를 다룬 전기 '태합기'에서도 사이토 도산이나 마쓰나가 히사히데에 버금가는 악당으로 묘사되었다.[3] 그러고 하는 말이 "저 녀석은 위험인물이라 이 참에 제거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