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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21:12:13

미나모토노 요리미츠

원뢰광에서 넘어옴
源頼光
944년 ~ 1021년

1. 소개2. 개요3. 요리미츠 사천왕4. 대중 매체 속의 요리미츠5. 관련 항목

1. 소개

일본 헤이안 시대의 무장으로 세이와 겐지의 3대 당주다.

일본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미나모토노 요리미쓰가 되며 한자를 한국식으로 그대로 읽으면 원뢰광이 된다. 다만 이름을 음독한 라이코우라는 호칭이 가장 유명하고 사용 빈도 역시 높다. 어릴 적 아명은 '분쥬마루'(文殊丸)였다.

2. 개요

미나모토씨의 중흥을 이끈 인물로 무수히 많은 요괴 퇴치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에 산의 오니(鬼) 슈텐도지 퇴치와 츠치구모 퇴치 설화다.

이렇게 설화를 접하다 보면 요리미츠가 전형적인 무인(武人)이었다고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 사적에 기록된 요리미츠의 행보를 살피면 뛰어난 무력으로 적을 사살하던 무사보다는 여러 지역을 관리 담당하며 조정의 명을 받들어 움직였던 정치가에 훨씬 가깝다. 사실 요리미츠가 각종 요괴를 퇴치한 설화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부분 그가 조정으로부터 명을 받아 이민족이나 도적들을 토벌한 기록이 윤색된 것이며, 요리미츠가 활약하던 헤이안 시대 중엽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요리미츠가 겐지의 무사단을 이끌기는 했어도 우리가 오해하는 것처럼 이들을 지휘하며 정규군끼리 충돌하는 식의 전투는 치른 적이 없다.

그러나 정규군이 아니긴 해도 이민족이나 도적들을 여러 번 토벌한 기록을 보면 나름 군사적 능력이 준수했던 것 같고 헤이케 이야기에서 그를 정예 무사 중 한 명으로 꼽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체에서의 모습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또 귀족 가문의 경호 역을 담당했던 전력도 있어서 완전히 문약한 인물이라고도 평가할 수는 없다. 정리하자면 능력치가 골고루 잡힌 육각형 인물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아무튼 숱한 요괴 퇴치 설화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라 요리미츠는 요괴를 퇴치하는 무사의 전형으로 상당히 많은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3. 요리미츠 사천왕

미나모토 요리미츠를 따르던 네 명의 가신으로 요리미츠의 요괴 퇴치 설화에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중 필두라고 할 수 있는 와타나베노 츠나와 아명인 킨타로로 유명한 사카타노 킨토키는 별도의 일화도 가지고 있다.

4. 대중 매체 속의 요리미츠

파일:源頼光.jpg 파일:源頼光2.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5. 관련 항목



[스포일러] 벤케이가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검은 사람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힘을 발하는 칼로, 오니의 우두머리인 아베노 세이메이를 베기 위해 자신의 몸통을 그 칼로 찔러 자살하면서 자신의 생명력을 칼에 불어넣는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검집에서 뽑지도 못했던 칼이 라이코우의 손에 뽑히고, 녹슨 것처럼 검던 칼날이 라이코우의 생명을 빨아들이면서 예리하게 반짝이는 칼날로 재생된다. 그리고 죽기 직전 료마에게 칼을 건네주어 세이메이를 베도록 한다. 세이메이를 베어낸 뒤 료마와 벤케이는 그녀의 시신 위에 칼을 올려놓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