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상민 · 2 이동훈 · 4 최동렬 · 5 조위제 · 6 이동수 · 7 페신 · 8 임민혁 VC · 14 이승기 · 18 이현규 · 20 이한도 C · 30 김희승 · 31 이승규 · 39 허승찬 · 47 손휘 · 50 정성우 · 77 김도현 |
조성환 · 유경렬 · 조성진 · 최재수 · 최현 · 최준혁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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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 2005 |
유경렬의 기타 정보 |
부산 아이파크 수석 코치 | ||
Busan I Park | ||
<colbgcolor=#DD0129><colcolor=#ffffff>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유경렬 柳俓烈 | Yoo Kyoung-Youl | |
출생 | 1978년 8월 15일 ([age(1978-08-15)]세) |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 |
학력 | 한양중 - 한양공고 - 단국대 | |
프로 입단 |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 | |
소속 | <colbgcolor=#DD0129><colcolor=#ffffff> 선수 | 상무 축구단 (2001~2002 / 군 복무) 울산 현대 호랑이 (2003~2010) 대구 FC (2011~2013) 천안시청 축구단 (2014~2015) |
감독 | 천안시청 축구단 (2014~2015 / 플레잉 코치) 광주 FC (2017~2020 / 수석 코치) FC 서울 (2021 / 수석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B (2022 /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B (2022 / 감독 대행) 부산 아이파크 (2024 / 감독 대행) 부산 아이파크 (2023~ / 수석 코치) | |
기타 | 천안시청 축구단 (2016~2017 / 트레이너) FC 서울 (2021 / 스카우트) | |
국가대표 | 17경기 (대한민국 / 200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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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선수 시절 울산 현대와 대구 FC에서 큰 활약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로서는 주로 박진섭 사단으로 활약하며 광주 FC,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B, 부산 아이파크에서 수석 코치를 지냈다.
2. 선수 경력
2.1. 울산 현대
단국대학교 시절부터 올림픽 대표팀 상비군에 뽑히는 유망주였고,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상무로 입대했으며, 전역 후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데뷔했다. 등번호는 18번.
프로입단 동기인 김정우, 이호와 함께 루키 3인방으로 묶이며 첫 시즌에 바로 주전을 꿰찼고, 김정남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아래 김정남 감독 재임 동안 리그와 리그컵에서 시즌 평균 35경기를 뛸 만큼 붙박이이자 울산 수비의 핵으로 군림했었다. 또한, 2년 차부터 등번호 5번을 달며 활약했는데, 5번을 닮과 동시에 2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에 선정됐고, K-리그와 K리그 수퍼컵 A3 챔피언스컵 등 여러 우승컵을 휩쓸며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러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자리했다.
2009년 김호곤 감독이 부임과 동시에 팀 레전드였던 현영민을 서울로 보내고 김치곤을 데려올 만큼 중앙 수비진에 구멍이 난 상황이었고, 유경렬은 다시 주장에 선임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5월 한 달동안 부상을 당한 것을 제외하곤 전 경기에 출전하며 변함없이 주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10년이 돼서 이재성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고, 팀도 우승에 실패하자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결국, 울산은 곽태휘와 강민수를 영입하며 센터백 세대교체를 실행했고, FA로 풀린 유경렬은 팀을 떠나게 됐다.
울산에서 거의 매시즌 최소 30경기는 뛰었으며 울산 역대 출전 기록 2위일 만큼 붙박이 센터백이었고, 김정남부터 김호곤에 이르는 동안 구축된 울산의 축구 스타일에 크게 기여를 한, 팀 역사상 손에 꼽힐 수비수 레전드이다. 또한 그의 등번호 5번은 그 이전에 박정배, 이후 곽태휘가 잇는 팀 수비의 상징적인 번호가 됐다.
2.2. 대구 FC
대구에서도 등번호 5번을 달게 됐다.
대구에서도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변병주가 구축했던, 팀이 닥공으로 인해 수비가 계속 최다실점을 기록했는데, 베테랑으로서 경험과 안정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 수비진을 이끌며 대구 수비진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특히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당시 팀 수비진의 미래라고 평가받던 이상덕이 전력에서 이탈하자, 사실상 후반기 주장으로서 팀 수비진을 거의 홀로 이끌었다.
2012시즌에는 드디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입단 2년 만에, 팀 창단 1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대구FC 10주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
2013 시즌에도 주장으로 선임됐고, 주장으로서 분투했으나 대구는 결국 2부로의 강등을 맞이했고, 재계약 없이 대구와의 계약이 마무리되면서 대구를 떠났다.
2.3. 천안시청 축구단
대구를 떠난 뒤 울산, 대구 시절 스승이었던 당성증 감독의 부름을 받고 실업팀 천안시청의 플레잉코치로 입단하였다.이후 2년간 소속된 뒤 은퇴했다.
2.4. 국가대표
본프레레호에서 3백의 중앙 수비수로 중용받았다. 본래 유상철의 자리였으나, 노쇠화로 인해 유경렬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박재홍, 김한윤, 박동혁 등과 함께 주전 수비수로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특히, '본태자'라고 불릴 만큼 조 본프레레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그러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하며 4백 체제로 전환을 꾀하였고, 김진규의 성장과 최진철의 복귀가 맞물려 주전자리에서 멀어졌고, 김영철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후보 자리에서도 밀려나 2006년 1월 전지훈련 중 칼스버그컵 덴마크전을 끝으로 대표팀 경력은 끝났다.
3. 지도자 경력
은퇴한 뒤에도 천안에 남아 트레이너 신분으로 당성증 감독을 보좌했다.2017 시즌을 마친 후 울산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1년 선배 박진섭이 감독으로 부임한 광주 FC의 수석 코치로 합류, 구단의 1부 리그 승격, 우승을 보조했으며 승격 이후에도 광주의 파이널 그룹 A 진입에 공헌했다.
2021년부터는 박진섭 감독을 따라 고향 구단 FC 서울의 코치로 부임했다.
시즌 중반 박진섭 감독이 물러나고 안익수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서 떠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구단에 잔류하는 대신 수석 코치에서 스카우터로 보직을 변경했고 공석이 된 수석 코치 자리는 2020 시즌 감독 대행으로 구단을 이끈 바 있던 박혁순 코치가 승진해 채웠다.
2021 시즌을 끝으로 1년 만에 FC 서울을 떠났고 2022년 2월 8일 박진섭 감독이 있는 전북 현대 모터스 B의 코치로 합류했다.
시즌 중반 박진섭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6월 5일 남동 FC전을 시작으로 감독 대행으로 팀을 지휘했으며 K4리그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2년 9월 26일, 자신의 선수 생활 마지막 구단이자 2023 시즌부터 K리그2에 참가하는 천안시 축구단 감독에 내정됐다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천안시 고위층에서 천안 지역 축구계가 선정한 유경렬 감독을 배제하면서 결국 창원시청 축구단의 수석 코치였던 박남열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천안시 축구단 부임은 없던 일이 되었다.#
한편 이를 두고는 천안 구단 단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2023 시즌을 앞두고 박진섭 감독이 있는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2024년 7월 8일 박진섭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진사임하며 감독대행직을 맡게 되었다.
7월 14일 구단이 조성환 감독을 선임하였지만 이날 FC 안양전은 감독 대행으로 팀을 지휘했다. 선두 안양 원정에서 2:0로 승리를 거두며 부산의 7경기 무승을 직접 끊어냈다.
4. 여담
4.1. 짤방
위의 두 짤방은 2006년 10월 22일에 열렸던 울산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K리그 경기에서 나왔다.
유경렬의 실연.
일명 유경렬 간질설 짤방. 2005년 1월 2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나온건데, 상대 공격수인 호세 카르도소와 몸싸움을 벌여 심판에게 주의를 받은 후 특유의 장난끼가 발동해서 들이대다가 발생한 해프닝. 짤방에는 안 나오지만 카르도소가 유경렬의 하복부를 쳤다.[1] 물론 접촉의 강도에 비해 유경렬의 반응이 지나치게 다이나믹했지만. 참고로 이 날 카르도소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유경렬의 파울이었다.
4.2. 여담
- 2005년 8월 동아시안컵 중국과의 개막전에서도 유경렬 특유의 깐죽거림이 빛을 발했는데, 전반 6분 중국의 프리킥 상황에서 리웨이펑을 상대로 도발하자[2] 빡친 리웨이펑이 얼굴을 밀쳤고 이에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져서 안 일어나는 등의 매우 훌륭한 할리우드 액션으로 레드카드를 소환해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주심이 못 보는 바람에 2부심에게 가서 확인했고 그 결과 퇴장시킨게 그냥 리웨이펑 옆에 서 있었을뿐인 가오린이었던 것. 심지어 이 경기 주심은 일본의 니시무라 유이치, 가오린을 지목한 2부심은 북한의 최해일이었다. 경기 자체는 중국이 후반 7분 순시앙의 선제골을 넣었고 27분에 김진규가 프리킥 동점골을 넣으며 1:1 로 비겼다. 후반 38분 김동진이 쇄도하다가 차오양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얻어냈는데, 이동국이 찬 볼을 중국 골키퍼가 정확히 막아내면서 무승부에 그쳤다., 또한 이 페널티킥 판정에 격분한 리웨이펑이 주심을 상대로 격하게 어필하면서 퇴장당했다.
- 'K리그의 카드 캡터'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수비 시 커버 플레이가 정말 매끄럽지 못한 선수다. 그래서 파울을 많이 유발했고 국대 시절에도 노란 딱지를 자주 받기 일쑤였다.
- 'K리그의 헐리웃 배우'라는 또 다른 별명이 있듯 오버액션에 능(?)해 안 받을 옐로 카드를 수집한다. 덤으로 보기에도 구타 유발을 일으키는 웃긴 표정이 포인트다.
[1] 짤방 중간에 카르도소가 살짝 유경렬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 시점.[2] 나중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 뒤로 이미지가 나아진거지, 그 전에는 성질 더러운 중국 축구 선수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