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1:47:41

윤호솔

윤형배(1994)에서 넘어옴
윤호솔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31528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NC 다이노스
역대 1차 지명 선수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노성호(1)
이민호(1)
윤형배(1)
이성민(1)
강민국 이호중 박준영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김태현 김시훈 박수현 김태경 김유성(2)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박성재 신영우(1) 김휘건(1) 지명권 양도
(1) 전면 드래프트 시행연도 | (2) 지명 후 미입단 / 지명철회
}}}}}}}}} ||

윤호솔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대통령배고교야구심볼.png
2011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임찬규
(휘문고등학교)
윤형배
(휘문고등학교)
하영민
(진흥고등학교)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8_r2_500.png 2012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NC 다이노스 등번호 61번
정성철
(2012)
윤형배
(2013~2013.5.31.)
손민한
(2013.6.1.~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54번
손민한
(2013~2013.5.31.)
윤형배
(2013.6.1.~2014)
강구성
(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14번
테임즈
(2014~2016)
윤호솔
(2017~2017.9.29.)
유영준
(2017.9.30.~2017)
NC 다이노스 등번호 01번
결번 윤호솔
(2017.9.30.~2017)
결번
한화 이글스 등번호 20번
정범모
(2012~2017)
<colbgcolor=#000><colcolor=#fff> 윤호솔
(2018)
송창현
(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01번
채기영
(2018)
윤호솔
(2019~2019.5.7.)
박준범
(2020)
한화 이글스 등번호 59번
문재현
(2018)
윤호솔
(2019.5.8.~2020)
한승주
(2021~202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8번
박주홍
(2020)
윤호솔
(2021~2022)
류희운
(2023)
LG 트윈스 등번호 28번
류원석
(2021~2022)
윤호솔
(2023~2024)
결번
}}} ||}}} ||
파일:23LG 윤호솔.png
윤호솔
尹豪率 | Yoon Hosol
[1]
출생 1994년 7월 15일 ([age(1994-07-15)]세)
충청남도 아산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온양온천초 - 온양중 - 북일고
신체 183cm, 110kg[2], AB형[3]
포지션 중간 계투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13년 신생팀 우선지명 (NC)
소속팀 NC 다이노스 (2013~2018)
한화 이글스 (2018~2022)
LG 트윈스 (2023~2024)
병역 사회복무요원[4] 소집해제
(2015년 3월 9일 ~ 2017년 3월 8일)
등장곡 NCT 127 - 《영웅 (英雄; Kick It)
{{{-2 {{{#!folding [ 이전 등장곡 보기 ]
소속사 스포네이션[5]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기록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전자거래 금융법 위반
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NC 다이노스,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소속 우완 투수이며, 개명 전 이름은 윤형배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윤호솔/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13년 2014년 군 복무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아마추어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파워피처 스타일의 우완투수.

고등학교 때부터 최고구속 153km/h의 빠른 공을 던졌으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후에도 평균구속 145km/h, 최고구속 151km/h을 던질 정도로 구속은 타고났다. 두툼한 몸무게에서 나오는 직구의 구위 역시 일품이다.

그러나 프로에 들어온 아마추어 선수들이 다 그렇듯 제구력이 좋지 못한 편이며, 변화구 역시 슬라이더와 스플리터 등을 던지지만 어느 것 하나 인상적이지는 못하다. 실제로 첫 1군 풀타임 시즌인 2021년에 홈런을 7개 맞았을 정도로 피장타가 많은데 이는 소위 행잉 슬라이더라고 불리는 밋밋한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들의 특징. 그래서 그냥 스트라이크 존 안에 직구를 쑤셔넣는 식으로 투구를 하는데, KBO 수준에서는 1이닝 정도는 힘으로 찍어누르기엔 충분한 수준의 직구인지라 어찌저찌 잘 먹혀서 한화 이글스에서 주축 불펜 중 하나로 활약할 수 있었다.[6]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듭된 수술과 재활로 공을 많이 던지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타고난 직구의 위력으로 1군 불펜 한 자리는 쉽게 얻어내는 것을 보면 "야구는 원래 잘 하는 놈이 잘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선수. 그러나 패전조에 두기에는 아까운 구위지만 심각한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능력으로 패전조와 필승조 사이 그 어딘가에 낀 정도의 선수로, 아직까지는 재능만으로 야구를 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잊을 만하면 잔뜩 찌는 살 때문에 자기관리가 굉장히 부실하다는 평가가 있다. 조상우처럼 힘을 키우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몸을 불린 것과는 차이가 있어 2023년 8월 24일 기사에서 염경엽 감독이 '아직 살을 더 빼야한다'고 언급할 정도. 안 그래도 살 때문에 자기관리 못 한다는 소리 듣는 마당에 양팔 가득히 문신이 채워져 있어 더더욱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평범한 선수라면 1군에 계투로 계속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하겠지만 이 선수는 당시 드래프트 전체 1픽[7]으로, 고등학교 때 오타니 쇼헤이와 비교되고 메이저리그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의 초특급 유망주였기 때문에 1군 선발도 아니고 1군 불펜 한 자리에 만족하기에는 잠재력이 너무 아까운 투수였다.

프런트라인 선발을 기대할 정도의 재능을 지닌 선수인데 그러려면 살을 빼고 체력을 붙이고, 변화구를 연마할 필요가 있는, 아직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미완의 대기라고 할 수 있는 선수지만, 평소 자기관리도 엉망인 데다 나이도 [age(1994-07-15)]세로 30대에 접어든 만큼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특히나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조상우가 팀의 핵심선수이자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고 세이브왕 타이틀을 획득하고 연금점수로만 평생 먹고 살아도 될 정도에 비해서 윤호솔은 너무나도 처참하게 망했다. 지금에서야 조상우 거르고 윤형배라며 NC 스카우트들을 가루가 되도록 까지만 당시엔 윤형배를 뽑는 게 당연했다. 어느 스카우트라도 백이면 백 윤형배를 픽했을 것이다.

총평하자면 분명 재능은 뛰어나지만, 부실한 자기관리로 인해 본인의 기량을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이다.

4. 연도별 기록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윤호솔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 경기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3 NC 1군 기록 없음
2014 2 0 0 0 0 3⅓ 13.50 8 3 0 1 3 2.40 268.07 -0.10
2015 군 복무
2016
2017 1군 기록 없음
<rowcolor=#fff> 연도 소속 경기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8 한화 1군 기록 없음
2019 3 0 0 0 0 3⅔ 17.17 8 1 3 0 2 3.00 420.87 -0.11
2020 6 0 1 0 0 6 10.50 8 2 6 0 4 2.33 225.50 -0.25
2021 55 3 0 0 8 48⅔ 4.62 41 7 30 3 42 1.46 106.33 0.05
2022 52 3 5 0 7 42⅓ 4.04 43 2 28 0 33 1.68 99.59 0.01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23 LG 4 0 0 0 0 3⅔ 2.45 3 0 3 0 4 1.64 61.67 0.07
2024 7 0 0 0 0 4⅓ 4.15 4 0 8 0 5 2.77 87.15 0.11
KBO 통산
(7시즌)
129 6 6 0 15 112 5.30 115 15 78 4 93 1.72 123.07 -0.23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전자거래 금융법 위반

2018년 8월 11일, 전자거래 금융법 위반으로 참가활동 자격을 정지당했다. 정지 이유는 시기는 불명이지만 자신과 알고 있던 친구에게 체크카드와 통장을 빌려줬는데 애당초 이러한 행위는 대포통장 관련 문제이기 때문에 KBO 측에서는 참가활동 정지 및 무급 조치를 내렸다. 후일 야구 선수 활동 여부는 법원 판결 이후 KBO에서 처벌 연장 또는 처벌 종료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위반 시기는 한화 이적 후라고 한다.

8월 27일 징계 결과가 나왔는데 KBO 징계는 2개월 자격 정지 + 사회봉사 80시간, 구단 징계는 사회봉사 120시간이 나오면서 총 2개월 자격정지 + 사회봉사 200시간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엠스플뉴스에 따르면 KBO에서 밝힌 것과 달리 윤호솔이 "지인이 하루 9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스팸문자를 보고 윤호솔에게 제안하여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크카드와 통장을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의 해석은 저 말이 사실이라면 윤호솔은 범죄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한 범죄연루자로 봐야 한다고 한다. 또한, 범죄사실을 구단에 실토한 시기도 사건 발생 즉시가 아니라, 검찰로부터 징역형을 구형받은 이후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KBO와 한화에서 사건을 축소하고 솜방망이 징계를 한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관련기사

엠스플의 추가 기사에 따르면, 규정 상 '자격 정지' 징계는 성립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 KBO는 '자격정지'가 아닌 '참가활동정지'라고 수정 발표하였다. 자격정지가 이루어지려면 구단인 한화에서 요청해야 하는데, 한화에서는 이를 요청한 적이 없다. KBO의 해명을 수용한다고 쳐도 '참가활동정지'는 정식 제재가 아닌 임시 제재라는 문제점도 있다. 상벌 위원회에서 정식 제재를 내기 전에 임시로 '참가활동정지'라는 제재하는 것인데, 상벌위원회에서 참가활동정지라는 제재를 내렸다면 이 또한 이상한 상황인 것이 된다. 제대로 하려면 다시 상벌위원회를 열어서 정식 제재를 내려아 한다. 관련기사

검찰은 징역 8개월을 구형했지만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벌금 300만원이 선고되었다. #

6. 여담

7. 관련 문서


[1] 2017년 3월 16일 윤형배에서 개명했다.[2] KBO 홈페이지 기준[3] 다음 프로필 기준[4] 32사단 신교대 출신으로 아산시청에서 복무를 마쳤다.[5] 구.이서컴퍼니[6] 이런 스타일의 투수가 꼭 윤호솔만 있는 건 아니고, 각 팀마다 1~2명씩은 꼭 있다. 장점인 구속과 구위로 단점인 제구를 덮어버리는 것이다.[7] 전체 1라운더라고 하면 모두가 그럴 순 없지만 박병호, 최정, 조상우, 김광현, 오지환 등 국가대표나 골든글러브를 탈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를 기대하기 마련이다.[8] 유감스럽게도 강재민은 전반기 막바지부터 부진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9월 말에 부진의 원인이기도 했던 팔꿈치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군복무는 덤.[9] 고교시절 완성형 투수로 평가, 다양한 변화구가 장점이나 라이벌과 비교대비 약한 구위, 투수치고 작은 체격인 사이토와 윤호솔, 그리고 고교 시절 강력한 패스트볼의 구위가 장점이고 상당히 큰 체격이지만 당대 활약상은 비교열세였던 다나카와 조상우 등 공통점과 단점이 상당히 유사하다. 2020년까지 전체 1번 지명치곤 변변찮은 커리어를 보냈던 윤호솔과 국가대표 필승조로 자리매김한 조상우의 커리어 편차 역시 혹사 여파&체격의 한계로 은퇴 전까지 2군 티켓&유니폼팔이 투수로 전락한 사이토와 MLB 진출 이전 단일 시즌 무패 20승, 이후 메이저리그 최강팀인 뉴욕 양키스로 진출했으며 일본 국가대표 에이스 역할이었던 다나카의 커리어 편차와 유사했다.[10] 참고로 이러한 라이벌과의 상반된 위상에 대한 비교는 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이다. 당장 제 2의 다나카와 사이토로 평가받는 오타니 쇼헤이후지나미 신타로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