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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21:49:42

이건국

파일:이건국.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이종국(李鍾國)[1]
출생 1918년 2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 (現 대구광역시)[2]
사망 1951년 1월 7일 (향년 32세)[3]
경기도 가평군[4]
학력 보성전문학교 (졸업)
중화민국 군관학교 (기병과 20기 / 졸업)
임관 육군사관학교 (4기)
복무 한국광복군
1944년 8월 ~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육군[5]
1947년 9월 10일 ~ 1951년 1월 7일
최종 계급 대령 (대한민국 육군)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54묘역-4판-2039호 (2행 2열)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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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군인. 6.25 전쟁 중에 전사했으며,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이건국은 1918년 2월 8일에 경상북도 대구부 동인동 398번지에서 태어났다. 출생지에 관해서 장철부의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는 경상북도 대구부로 되어있고,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2023년 6월까지 마산부 거제리로, 다른 출처에선 부산부 거제리(현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으로 기록될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찍이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징용을 피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였으나, 1943년 독립운동사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광복군 관련 서류를 몰래 찾아보다가 고등간첩 혐의로 구속되어 가택연금 처분을 받았다. 이후 중국으로 탈출할 것을 결심하고 하남성 북평시로 탈출하고자 했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 후 조선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탈출하였고, 산해관을 넘어 조동린(趙東麟)에게 포섭되어 1944년 8월 문상명, 박용운, 유익배, 정희섭 등과 함께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이후 1944년 12월부터 하남성 개봉시(開封市) 지구 등 화중 지방에서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며 국민혁명군 유격대와 함께 일본 제국 육군 소속 비행전대 기지를 기습해 폭파시키고, 기관단총 등 무기 20여 정을 노획하는 전과를 달성했다. 1945년 3월 일본군에 체포된 조선인 사병의 자백으로 지하 조직망이 발각되자 책임자인 장호강과 함께 탈출해 광복군 제3지대 본부가 있는 안휘성 부양현(阜陽縣)[6]으로 탈출했다. 1945년 8월에는 OSS 작전 준비 차 김학규를 수행해 중경시(重慶市)로 연결해주는 임무를 수행했고, 중경시에서 제3지대 본부 훈련교관을 역임했으며, 그곳에서 8.15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 후 장철부, 강홍모, 김중진과 함께 백범 김구의 추천으로 중화민국육군군관학교 20기로 입교하고, 장철부와 기병과 교육을 받은 후 1946년 11월 졸업하고 귀국했다. 1947년 5월 16일 육군사관학교 4기로 입교했고, 4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강홍모 등과 함께 1947년 9월 10일 임관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제2보병사단 부연대장으로 복무하다가 1951년 1월 7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제124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던 중 전사했다. 장철부 중령의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는 1951년 2월 13일 횡성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하나, 전쟁기념관 전사자 정보 및 서울현충원묘적부에서는 각각 1951년 1월 1일 또는 1월 7일에 제2사단 소속으로 전사한 것으로 나와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사한 것이 가장 유력하다. 전사 당시 계급은 대령이었으나, 당시 32연대장 권동찬(육군사관학교 2기, 1951년 1월 가평 전투 중 전사)이 대령[7]이었음으로 보아 전사시 중령 계급이었다가 사후 대령으로 추서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한국광복군 활동 및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68년 10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 54묘역 4판 2039호 (2행 2열)에 안장되었다.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3. 여담

광복군 복무 당시 장철부 중령과 함께 임시정부 추천으로 중화민국 군관학교 20기에 입교해 기병과 교육을 받았다. 장철부 중령의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 전반적인 생애와 광복군에 복무하게 된 과정이 서술되었다.

4. 참고자료

끝없이 가는 길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사 제6권


[1] 전쟁기념관 전사자정보 검색에는 이종국으로 기재되어 있다.[2]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이건국의 본적이 '경상남도 마산부 거제리(巨堤里)'로 기재되어 있으나, 거제리는 마산부가 아닌 경상남도 부산부(現 부산광역시)의 한 지명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을 말한다. 또한 장철부 중령의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 따르면 경북 대구 출생으로 기록되어 있고, 황포군교제20기동학록에는 이건국의 본적이 '한국(韓國) 대구(大邱)'로 되어 있었다. 본적과 태어난 곳이 다른 경우도 있어 태어난 곳을 기준으로 서술한다.[3] 전쟁기념관 전사자정보 검색에는 1월 1일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고, 장철부 중령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는 2월 13일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 문서에서는 서울현충원묘적부를 기준으로 서술한다.[4] 장철부 중령 전기인 《끝없이 가는 길》에는 강원도 횡성군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5] 군번 10679[6]중화인민공화국 안후이성 푸양시.[7] 사후 1952년 준장으로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