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의 왕자 이성수 李盛壽 | ||
본관 | 전주(全州) | |
이름 | 성수(盛壽)[1] | |
생부 | 숙종 | |
생모 | 희빈 장씨(禧嬪 張氏) | |
형제 | 2남 중 2남(동복), 형 경종 | |
생몰 기간 | 음력 | 1690년 7월 19일 ~ 1690년 9월 16일 |
양력 | 1690년 8월 23일 ~ 1690년 10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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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제 19대 왕 숙종과 후궁인 희빈 장씨의 차남이자 숙종의 유일한 적자(嫡子).[2]조선 제 20대 왕 경종의 동복동생이다.[3] 태어날 당시에는 생모인 희빈 장씨가 왕비로 재위하던 시절이므로 그의 공식적인 호칭은 ‘대군 아기씨’이다.
2. 생애
동복 형인 경종과 2살 터울로, 숙종 16년(1690년) 음력 7월 19일에 태어났다. 사실상 숙종이 왕비에게서 얻은 첫 적자(嫡子)이기 때문에 부왕인 숙종의 기쁨은 더더욱 컸다.[4] 그러나 생후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같은 해 9월 16일 요절했다. 만약 성인 이후까지 생존해서 장수했다면 경종 사후 왕위에 올라 영조는 등극하지 못했을 것이다. [5][1]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성수라는 신생 대군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1700년(숙종 26년)에 보수된 《선원기략》에 적힌 이름이다.[2] 경종은 장씨가 후궁일때 태어난 서출이며, 이영수, 영조, 연령군 등의 아들은 전부 서출인데다가 숙종의 세 왕후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3] 숙종의 자녀 6남 2녀 중 출생순서 상 넷째.[4] 경종은 옥정이 후궁이었을 때 낳은 서출 왕자이며, 성수는 아직 책비례를 올리지 않았을 뿐 이미 왕비 명호를 받은 옥정이 회임하여 낳은 적통 왕자이다. 이 점 때문에 왕비인 옥정의 회임이 분명해지자 경종의 왕세자 책례를 서둘러 치렀던 것.[5] 만일 이럴 경우 경종-성수 모두 차례대로 후사없이 요절하여 영조까지 왕위에 가는 경우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