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1:01:01
[clearfix]대한민국의 교수.1932년 황해도 재령군의 유복한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다 8.15 광복 후 38선 이북지역이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되자 그녀의 가족은 월남을 단행했다.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났고, 가족은 피난길에 올라 경상북도 김천에 정착했다. 김천여자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을 졸업했으며, 이후 대구여자중학교와 대구효성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체육교사로 일했다. 효성여고에 있을 때 1962년 제43회 전국체전 개회식 매스게임 안무를 맡은 것을 계기로 1965년 설립된 상명여자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로 초빙됐다. 그리고 1967년 전국 걸스카우트·보이스카우트 전진대회 퍼레이드 공연을 기획한 걸 계기로 미국 연수 기회를 얻었고, 1975년 미국에서 병원을 개업한 남동생 이영수를 통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에어로빅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렇게 1975년 미국 타우슨주립대에 가서 에어로빅을 접하였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한국여성체육학회가 주최한 전국 체육·무용교사 강습회를 계기로 에어로빅 개발자 재키 소렌슨이 만든 '건강을 위한 에어로빅댄스' 12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녀가 이 당시 소개한 에어로빅은 춤 형식이 아니라 준비운동과 6가지 운동, 정리운동으로 이뤄졌고, 걷기, 가볍게 뛰기, 무릎 들기 등 동작으로 이뤄져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통로를 거쳐 확산되며 학생과 가정주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1981년 타우슨주립대가 새롭게 개발한 '리드믹에어로빅댄스' 12주 프로그램을 배워 국내에 보급했다. 그녀는 리드믹에어로빅댄스를 통해 'MBC 아침방송 변웅전입니다'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8시마다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와 상명여대 학생들이 3개월 동안 출연한 방송은 3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에어로빅을 전국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부터는 대학에어로빅스 축제를 개최하였고, 이는 2000년부터 중국 연변대학 학생들이 참가하며 국제대회로 발돋움했다. 또한 2003년 대구 U-대회 국제대학 에어로빅스 축제를 진두지휘 하였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도 2012년 자서전을 내거나 2015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된 ‘광복 70년 기념 특별전(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2023년 3월 26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