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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李潤福
1952년 ~ 1990년 1월 25일
1. 개요
1964년 개봉된 김수용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원작 일기를 쓴 저자.2. 생애
1952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아버지 이정희(李正熙)와 어머니 박차옥(朴叉玉)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1] 일찍이 대구시로 이주하였다.[2] 대구명덕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평소 알코올 의존증 및 도박 중독이던 아버지의 구박과 생활고를 못 이겨 가출하였다. 이에 어머니를 대신해 구두닦이, 신문팔이, 껌팔이 등으로 돈을 벌면서 아버지의 술값 및 노름 밑천을 대는 한편, 두 여동생과 남동생을 극진히 보살펴왔다.4학년 때이던 1962년 봄, 담임 이명자(李明子) 교사가 일기를 검사하던 도중 이러한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동료 교사들에게 사정을 알린 후, 그가 쓴 일기들을 모아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면서 급속히 화제를 모으게 되면서 더 이상 구두닦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등 인생이 점차 달라졌고, 2년 뒤에는 김수용에 의해 '저 하늘에도 슬픔이'로 영화화될 정도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 뒤 헤어졌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되었고, 여러 사람의 후원으로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안지랑의 판잣집을 떠나 서구 내당동의 집 한 칸을 마련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경구중학교[3]와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1978년 효성알미늄에 취직해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사는 듯하였다. 그러나 생활능력이 없는 부친 대신 자신이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었고, 1980년에 자택이 빚쟁이들에게 넘어간 후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방랑하였다. 1982년에 대구직할시에서 이병숙(李炳淑)을 만나 결혼한 뒤 다시 재기하여 1984년 유한킴벌리에서 근무하였고, 딸 이가영(李佳煐), 아들 이명진(李明鎭)과 함께 150만 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부족하면서도 단란하게 살았다.
1990년 1월 9일 지병인 만성 간염이 악화되어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2가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으나 16일 만인 1월 25일 오후 4시에 사망하였다.
[1] #[2] 1990년 1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경상북도 대구시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3] 1990년 1월 26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경북중학교로 오기되어 있으나, 1965년 12월 14일 조선일보 기사에 분명하게 경구중학교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