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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축구)

이정수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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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코치
파일:1644460867_0.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이정수
李正秀 | Lee Jeong-Soo
출생 1980년 1월 8일 ([age(1980-01-08)]세)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조도마을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78kg
학력 용인포곡초등학교 (졸업)
태성중학교 (졸업)
이천제일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1] / 은퇴)
축구 코치
프로 입단 2002년 안양 LG 치타스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안양 LG 치타스 - FC 서울 (2002~2004)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200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08)
교토 상가 FC (2009)
가시마 앤틀러스 (2010)
알 사드 SC (2010~201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2017)
샬럿 인디펜던스 (2018)
코치 동국대학교 (2017 / 코치)
용인시축구센터 (2019 / 총감독)
호찌민 시티 FC (2020~2021 / 코치)
수원 FC (2021~2022 / 수석 코치)
수원 FC (2023 / 수석 코치)
기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4~ / TSG 위원)
국가대표 54경기 5골 (대한민국 / 2008~2013)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코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수비수.

인천 유나이티드, 수원 삼성, 알 사드 등 여러 구단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

2. 클럽 경력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조도마을 출생으로 용인 포곡초등학교, 태성중학교, 이천제일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차례로 졸업했다.

경희대 시절 동기 정성훈과 대학 무대 최고의 투톱으로 활약하며 2학년인 1999년 전국체육대회 남자대학부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경희대를 춘계연맹전 정상으로 견인했다. 졸업반인 2001년에는 전국대학축구대회 준우승을 했다.

2.1. 안양 LG 치타스

파일:k-20101005-789157_lzmania.jpg

2002년 신인 자유계약으로 안양 LG 치타스와 공격수로 입단했다. 안양 시절 조광래 감독이 조커로 중용하며 2년 간 29경기에 나섰다.

R리그에서는 주전 공격수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1군 무대에서 공격수로 두각을 보이지 못하자 서울 연고 이전 후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R리그에서 간간히 센터백으로 출전했다.

그때 인천 2군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본 당시 인천 안종복 단장이 이정수의 잠재성을 눈여겨보고 빠르게 영입을 추진해 2004년 중반 서울을 떠나게 된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파일:boriwool_237027_1[333689].jpg

2004년 중반 아직 신인임에도 무려 이적료 2억 5천만원에 신생 팀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팀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인천 입단 후 처음에는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였으나 장외룡 감독의 조련 아래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포텐이 터져서 리그의 준수한 멀티수비자원이자 인천 수비의 핵심 역할을 했다.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듬해 9억원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팀을 옮겨 인천 유나이티드 특유의 선수 키워팔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남게된다.

곽희주, 마토와 함께 3년간 수원의 수비진을 이끌며 2006년 리그 준우승, 2008년 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2007년에는 부주장을 맡았으며 2008년에는 마토를 뛰어넘은 팀의 No.1 수비수로써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활약으로 일본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2016년 2월 22일, 8년만에 K리그 수원 삼성에 복귀했다.

2.4. 교토 상가 FC

2008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한 그는 때마침 불어닥친 K리거들의 J리그 진출 러쉬속에 교토 상가 FC와 1년 계약을 맺으면서 일본으로 진출하는데 이 이적은 대박을 치게 되었다. 한때 일본을 이끌 것이라는 절찬을 받은 젊은 센터백 미즈모토와 함께 교토의 수비 라인을 이끌면서 다소 거친 스타일로 옐로카드가 많았다는 점을 빼고는 대체자를 찾을 수 없는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 실력을 인정받아 한일 올스타전인 조모컵에 J리그 대표로 출전해 수비수임에도 골을 기록했으며, 한국어로 쓴 응원문구와 태극기를 경기장에 가져오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 MVP를 수상했다.

2009 시즌 32경기 5골을 기록했다.

2.5. 가시마 앤틀러스

2009년 12월 22일,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게 된다.

인천, 수원, 교토에서 달던 등번호 14번을 달았다.

2월 23일 창춘야타이와 홈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가시마 데뷔전이자 ACL 데뷔전을 무실점으로 치렀다.

3월 27일 가시마 소속 J리그 데뷔전에서 헤더골로 결승골을 기록했다.#

7월 17일 가시마 고별전인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홈경기에서 헤더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리에 기여했다.

월드컵 이후 7월 22일 알 사드 이적이 발표되며 약 반 년만에 팀을 떠났다.

2.6. 알 사드 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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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을 마친 후 2010년 7월 카타르 스타즈 리그 팀인 알 사드 SC로 이적하면서 이적료 2억엔(28억원), 연봉 22억 원의 대박을 쳤다. 말년에 돈도 벌고 참 대박친 듯. 더구나 연기자 한태윤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니.... 인생의 승리자

2011년 3월 16일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팍타코르와의 홈 경기에서 선취골을 기록, 알 사드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꾸준한 모습으로 팀의 챔스 우승에 기여했으나, 정작 결승전 승부차기에서는 골대를 맞추며 실축하였다.

2016년 1월 28일 알 사드와 계약해지 발표가 나왔다. 이정수가 장기 부상으로 빠지면서 수비진이 흔들리자 급하게 대체자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알 사드는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이정수의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해서 상호 합의하에 계약해지한 것.

이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행 확정 기사가 나왔다.

2.7.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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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아쉬운 마무리였던 수원 삼성 시절과 본인의 말년 선수 시절

메디컬 테스트를 거쳐 2월 29일 수원 삼성 입단을 공식 발표했다. 등번호는 과거의 14번이 아닌 카타르 시절부터 달고 다니던 40번을 택했다. 선수 생활의 연속성과 40세까지 뛰고 싶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긴 번호라고.#

7월 31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1호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6시즌 K리그 클래식 최종 기록은 27경기 3골.

하지만 FA컵 결승 2차전에서 석연찮은 퇴장을 당하며[2]끝은 좀 아쉬웠고 당시 김성호 주심에게 “아니 아무짓도 안했다니까!”라고 소리지르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3]

그런데 2017시즌 초반이었던 4월 16일 광주전 이후 갑작스레 팀을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은퇴까지 선언을 했다. 당시 팀의 부진으로 인해 속이 타는 상황에서 악질 서포터들이 심한 욕설을 하고 맥주캔 등을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문제는 이정수가 거기다 대고 똑같이 욕설을 내뱉으며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물론 사람들에게 욕설을 내뱉은 이정수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법이지만 먼저 욕하고 이물질을 투척한 어처구니 없는 팬들의 몰상식함이 면죄부를 받지는 못한다.

이 사태로 인해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다고 한다. 이에 20일에 팀 코칭스태프와 면담을 했지만 이정수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에는 쉽지 않았고, 21일 재면담에서도 끝내 이정수는 결정을 뒤집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그의 의사를 수용해 은퇴를 하게 된다. 이에 대부분의 축구 팬들과 수원 삼성 팬들은 백의종군까지 하며 온 팀 레전드를 이렇게 보내버리냐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울트라스 서포터들인 난적을 전방위로 비난했다.

2.8. 샬럿 인디펜던스

2018년에 대전 시티즌의 플레잉 코치로 현역 복귀를 한다고 보도되며, 2차 터키 전지훈련에 이미 합류도 했다고도 보도되며 대전 입단이 확실해지는 듯 했으나 대전 입단 대신 미국 프로축구 2부 리그인 USL 챔피언십 클럽인 샬럿 인디펜던스에 입단하여 잠시 현역에 복귀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박용호, 이천수, 최태욱, 조재진등이 주역으로 있었던 2000년 아시아 청소년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의 활약에 주목한 조 본프레레 감독에 의해 동아시안컵 대표 상비군으로 첫 발탁 되어 훈련까지 참여했으나 하필 부상이 생겨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국가대표 감독이 바뀌면서 가끔씩 발탁될 가능성의 소문이 났으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진에 깜짝 발탁 등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방침으로 나가서 2006 독일 월드컵 명단에도 결국 이름을 올리지 못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 뒤 핌 베어백 감독도 그를 아시안컵에선 커녕 평가전에서도 부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허정무 감독 부임 후 발탁되어 2008년 3월 26일 월드컵 3차 예선 북한전에서 드디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8년 6월 1일 요르단 전에서 팀 동료였던 곽희주와 함께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장해 2-0으로 앞서다 2골 연달아 실점하며 2-2로 비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중용되며 경험을 쌓았고 국가대표 주전으로서 강민수, 곽태휘, 황재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본격적으로 조용형과 짝을 맞추면서 대표팀 수비진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남아공 월드컵의 대표팀에 승선하여 그리스와의 32강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전반 7분 세트 피스로 대한민국의 첫 골을 장식[4][5]하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끌었으며, 나이지리아와의 32강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세트 피스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안정적인 수비뿐만 아니라 골까지 2개나 넣으며 한국의 원정 첫 2라운드 16강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다.[6]

특히 나이지리아전에서의 골은 분명히 헤딩을 노렸는데, 헤딩을 못맞추고 동시에 슛모션으로 나간 다리에 맞아 골이 되어, 동방예의지국슛, 헤발슛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7][8]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조용형 대신 곽태휘홍정호와 호흡을 맞추며 꾸준히 조광래호 부임 이후에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3위에도 기여했다.

최강희 감독 재임 시기에도 여전히 곽태휘와 주전조로 나섰고, 대표팀 부주장에 선임됐다.
2012년 2014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쿠웨이트전에 출전. 상대팀의 반칙을 유도하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크로아티아전에서 곽태휘랑 동반으로 호러쇼를 연출하면서 수비진의 불안함을 가중시켰는데 이정수도 이제는 한물갔다, 노쇠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경기는 대표팀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이후로는 김영권홍정호 등 올림픽 대표팀 출신들의 젊은 수비수들이 중용받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부름을 받지 못했다.[9]

4. 지도자 경력

파일:2017081812390818684_1.jpg

수원 삼성을 떠난 이후 안효연 감독의 부름을 받아 동국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잠시 활동했었다.

2020년부터 베트남 프로팀인 호찌민 시티 FC의 코치를 맡게 되었는데 정해성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수비 전담 코치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2021년 7월 16일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팀 수원 FC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2022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23년 여름, 다시 수원FC에 코치로 돌아왔고 잔류에 기여했다. 2024년 1월 2일에 이정수를 제외한 다른 코칭스태프 모두가 팀을 떠나는 발표가 나왔기 때문에 김은중 감독과 함께 가는 듯했으나, 1월 9일 발표된 2024시즌 코칭스태프 명단에 없었고, 1월 14일 계약 만료로 수원을 떠나게 됐다는 구단 발표가 나왔다.

5. 플레이 스타일

신장 185cm의 탄탄한 체격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과 맨마킹 능력이 탁월하다. 발이 상당히 빠른 편이며 이를 살린 커버링, 풍부한 경험을 활용한 노련한 수비 리딩도 돋보인다. 09 시즌 리그에서 5골을 뽑아냈을 정도로 공격 가담에도 적극적이다. 2009년 9월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 감각적인 힐킥으로 공격수 출신다운 득점 능력을 뽐냈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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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이트백도 가능했다.[2] 경고 한 장 씩으로 경고 누적 퇴장을 당했는데 파울의 강도나 유형으로 봤을 때 둘 중 하나만 카드를 줘도 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3] 물론 이 날 김성호 주심를 포함 심판진들의 판정이 전반적으로 아쉬웠는데 서울 다카하기의 퇴장도 이정수의 퇴장과 마찬가지로 오심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수원의 선제골 상황에서 김치우의 명백한 파울에 어드밴티지를 줬는데 사후제재가 없던 데다가 서울 아드리아노의 동점골은 애매했던 저 상황들과는 전혀 다른, 명백한 오프사이드 오심이 맞다.[4]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성공시킨 골이다. 그 후로 13년 후 조소현이 전반 6분 만에 득점에 성공함으로서 대한민국 남녀 축구 대표팀을 통틀어 월드컵 최단시간 득점에 성공했다.[5] 또한, 역대 대한민국 선수 중 월드컵 무대 데뷔 후 가장 빠른 시간(7분)에 골을 넣은 선수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다.[6] 공교롭게도 두 골 모두 이영표가 파울을 얻어내고, 기성용이 찬 프리킥을 이정수가 마무리한 골이었다.[7] 여담으로 4년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비슷하게 마리오 괴체도 비슷하게 넣었다.[8] 재밌는 것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정수가 대한민국의 1, 4호 골을 넣었는데 공교롭게도 남아공 월드컵과 같은 해에 열린 겨울스포츠 잔치에서 동명이인의 쇼트트랙 선수가 대한민국의 1, 4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또한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총 6득점(이정수, 박지성, 이청용, 이정수, 박주영, 이청용)을 올렸고,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총 6개의 금메달(이정수, 모태범, 이상화, 이정수, 이승훈, 김연아)을 획득했다.[9] 곽태휘와 사이가 안 좋다는 루머도 있고 크로아티아전에서 보듯 호흡은 확실히 안 맞아서 곽태휘가 국대 베테랑으로 남으면서 이정수는 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10] 이정수 아내의 외삼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