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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0:47:47

이종욱/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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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유니콘스2. 두산 베어스
2.1. 2006 시즌2.2. 2007 시즌2.3. 2008 시즌2.4. 2009 시즌2.5. 2010 시즌2.6. 2011 시즌2.7. 2012 시즌2.8. 2013 시즌2.9. 1차 FA
3. NC 다이노스
3.1. 2014 시즌3.2. 2015 시즌3.3. 2016 시즌3.4. 2017 시즌3.5. 2차 FA3.6. 2018 시즌
4. 국가대표 경력

1. 현대 유니콘스

1999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2순위로 지명받았다. 3순위가 이택근 이었으니... 굉장히 장래성을 높게 친 지명이었다. 당시는 대학교 진학 이후에도 프로 지명권이 유효하던 시절이라 영남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1군에는 오르지 못하고 현대 유니콘스 2군에서 1년을 보낸 후 2003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상무에서 제대하고 소속 팀 복귀를 앞두던 때, 갑작스런 방출 통보를 받게 된다. 이는 당시 포텐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던 정수성과 포지션이 겹쳐서라는 해석이 있다.[1] 하지만 당시 현대 유니콘스 코칭스태프는 이종욱의 방출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아마 부쩍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현대 구단 사정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대 구단은 그를 방출시키고 두 달 가까이 쉬쉬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현대 팬북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이종욱의 사진을 본 유저들이 있을 것이다. 현대 시절 이종욱 거기서 나오는 캐치프레이즈에는 심정수보다도 강한 강견이라고 적혀있다. 이종욱은 어깨가 좋은 선수다.

현대에 있다 방출 통보를 받은 후 이종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던 두산 베어스의 유격수 손시헌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동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굳히고 있었던 손시헌[2]은 팀에 이종욱의 입단 테스트를 주선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입단 테스트에 합격함으로써 이종욱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된다. 만약 그 입단 테스트가 없었다면 고등학교 코치로 갔을 거라고 본인이 말했다. 그리고 둘은 NC 다이노스로 훗날 같이 이적한다.

이러한 입단 과정 때문에 이종욱을 '신고선수'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종욱은 분명히 현대 유니콘스가 정식으로 지명해서 입단한 선수이다.[3] 다만 방출당한 후 두산에 처음에 입단했을 때는 신고선수 신분이 맞고,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시즌 시작 전 정식 선수로 등록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4] 이 과정이 와전되어 아예 선수경력 자체를 신고선수로 시작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 것이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은 대표적인 사람이 김은식 작가였으나, 이후로는 오해를 풀었다고.

2.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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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39
이종욱
李鍾旭 / Lee Jong-Wook
''두 발로 야구계를 평정한 사나이. 공수주에서 이종욱은 최고였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의 플레이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2007 시즌 결산중 캐스터의 이종욱 소개멘트 中

'종박 베어스'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베어스의 리드오프로서 두산 팬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으며, 두산의 팀컬러인 '허슬두'의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두산을 떠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그의 허슬플레이를 그리워하는 두산 팬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은 물론, 베어스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이종욱 본인으로 인해 두산을 좋아하게 된 팬도 상당했었다.
▲ 이종욱 두산 시절 응원가

이종욱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두산 시절 응원가.

2.1. 2006 시즌

정식 선수로 승격된 후 1군 엔트리에서 시즌 개막을 맞는다. 스프링캠프에서 성실한 훈련 태도로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1군 경험이 전무했던 신인급 선수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미숙한 점을 보였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좌익수로 나서 뜬공을 잡으려다 만세를 불러 2군행을 통보받기도 했었다. 현재의 귀신같은 외야수비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화이다.

하지만 빠른 발[5]과 성실한 태도를 무기로 정수근의 FA 이적 이후 확실한 주인이 없었던 1번 리드오프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해 기습번트에 의한 내야안타를 주무기로 삼으면서 5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올라, 고영민과 함께 김경문 감독 특유의 '발야구'의 선봉장이 된다. 그러나 그 해 역대급 괴물이 나타나는 바람에 신인왕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2.2.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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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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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의 지나친 내야안타 의존도로 인하여 견제를 받아 고전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한 시즌만에 완벽하게 스윙을 가다듬어 외야수 사이로 빠른 타구를 날릴 수 있게 되면서 3할 타율에 등극한다. 시즌 초에는 좌익수로 나오다가 갓 프로 2년차가 된 이름 흔한 좌타자가 좌익수에 정착하며 중견수로 자리매김했고[6], 이후 수비도 일취월장해서 잠실 야구장의 광활한 외야를 책임지며 숱한 호수비를 선보인다. 여기에 시즌 47도루로 도루 2위에 랭크되며 지난시즌에 이어 육상부의 명성을 이어갔다. 한화 이글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공-수-주 모두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MVP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생애 첫 KBO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이 때 무려 350표를 받았는데, 이는 17년이 지난 2024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골든글러브 역대 최다 득표수이다.

2.3. 20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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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BO 리그 득점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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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08)
여전히 리그 최고급 리드오프의 면모를 과시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2년 연속 플레이오프 MVP를 받았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박경완을 위시한 SK 와이번스 배터리의 집중견제 속에 고전하였다. 어쨋든 정규시즌의 맹활약으로 2년 연속 KBO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다만 이 때 성적이 조금 더 나았다고 볼 수 있는 박재홍 대신 이종욱이 수상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4. 2009 시즌

본 시즌 직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하지만 6월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 경기에서 수비 도중 김재호와 충돌하여 턱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커리어 로우의 성적을 기록한다. 하지만 시즌 말미와 포스트시즌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9회초 정상호의 장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 더블아웃을 만들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었다. 하지만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하여 입단 후 처음으로 연봉이 삭감되었다.

2.5.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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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10)
타격 폼을 좀 더 간결하게 수정하겠다고 밝혔고, 시즌 내내 좋은 결과를 낳았다. 3월에 딸 예소가 태어나 분유버프가 예상되기도 했다. 특히 간결하게 폼을 수정했는데 홈런을 5개나 기록하며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새로 썼다. 손목 부상으로 타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데뷔 이후 최고 타율을 기록중이다. 특히 시즌 초반 득점권 타율 1위를 달리면서 리그 최고인 두산 타선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7] 2010시즌 최종 기록은 득점권 타율 0.359로 7위.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2타수 11안타 1홈런 3볼넷 1도루 4타점 3득점, 타율 .500, 장타율 .727, 출루율 .560으로 맹활약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5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도루 2타점 4득점, 타율 .294, 장타율 .353, 출루율 .3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결국 2010시즌 2년 만에 다시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을 수상했다. 다만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다소 부진해 결승전에서 이용규에게 선발 자리를 뺏겼다.

2.6. 2011 시즌

2011 시즌에도 3할 타율에 6년 연속 20도루를 달성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

타율 0.303으로 3할을 넘겼지만 도루 숫자가 뚝 떨어졌다. 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121경기 20도루는 이종욱답지 않은 활약이었다. 도루 실패도 15개나 됐는데, 시즌 초반 엄지손가락 부상을 시작으로 옆구리, 발목 등 성한 곳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즌을 치르며 특유의 허슬플레이가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롯데를 상대로 기록한 5할 타율의 좋은 타격감은 시즌 내내 이어져 롯데 상대로 0.410의 타율을 기록했다. 테이블 세터로서 주자가 없을 때 타율 0.314는 역시 이종욱답지만 출루율 0.377은 아쉬운 성적이다.

2.7. 2012 시즌

2012 시즌 여러모로 부진에 빠지며 타율 0.240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1번 타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공을 무조건 퍼올리는 일이 많아 팬들의 비난을 샀다.

그러나 풍부한 경험이 어디 가지 않아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 합쳐서 6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몰린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첫 타석에서 롯데의 선발 투수 사도스키의 투구에 종아리를 맞고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투혼을 발휘하여 도루와 득점까지 올렸지만 결국 다음 타석에서 임재철로 교체되었고, 팀이 스코어 7:2로 승리하여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렸지만 이종욱은 부상 때문에 4차전도 출장하지 못했는데, 팀이 4차전을 스코어 3:4로 패하면서 이종욱은 더 이상 2012년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했다.

이종욱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에 선발 중견수 겸 1번타자로 출장하여 6타수 3안타(2루타 1개 포함) 1타점 3득점 1도루 1볼넷 1사구(死球), 타율 .500, 장타율 .667, 출루율 .625를 기록했고 팀은 1승 3패로 탈락했다.

2.8.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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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절.

2.9. 1차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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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6일까지 FA 시장에서 두산과의 우선협상에 실패하여 손시헌, 최준석과 함께 FA 시장에 나왔다. 이후 손시헌과 함께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무려 8월부터 창원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썰이 나오더니 우선 협상 과정에서 NC 관계자와 사진을 찍었다거나 하는 얘기가 나오면서 템퍼링 의혹이 퍼졌다. 다만 물증이 없고 해서 흐지부지 된 편. 4년간 총액 50억 원으로 알려졌는데, 같은 날 정근우, 이용규, 이대형의 FA 대박으로 묻혔다.

3.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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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욱 NC 시절 응원가

3.1. 2014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중견수가 아닌 우익수로 출장했다. 원래 우익수로 전향하려 했던 나성범이 우익수 자리에 영 적응을 못해 이종욱이 우익수로 들어온 듯하다.

4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결승타를 쳤다.

4월 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이전까지는 3타수 무안타 였지만 기어이 9회말에 끝내기 안타를 쳤다!

4월 9일 한화 이글스전 5회말에서 역전 적시타로 2루에 있는 손시헌을 홈으로 끌어들였다. 영상 그리고 이날에도 결승타를 때렸다!

4월 12일 LG 트윈스전에서 땅볼로 결승타를 쳤다.

시즌 초반이고 타율이 높은 편이 아닌데 알게 모르게 결승타를 챙기고 있다.

4월 16일에는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연장 12회 선두타자 출루로 결승득점에 성공했다. 경기 내내 죽을 쑤다가 결승득점을 한 것이 포인트. 이날 경기로 타율은 .196이 되었다. 현재 타율이 멘도사 라인도 못가는 리드오프지만 팬들은 경기마다 '결승'의 뭔가를 이뤄내는 이종욱을 보고 깔지말지 고민하고 있다.

4월 23일 SK 와이번스전 7회초에서 전유수를 상대로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쳤다. 다음날에는 여건욱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렸다.

4월 2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5회초 몸을 사리지 않는 호수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날 희생플라이로 결승타를 쳤다.

5월 17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4타수 무안타 4땅볼로 타율이 .206, 출루율은 .263으로 더 떨어졌다. 슬슬 먹튀 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른 외야 경쟁자 권희동, 박정준 역시 타격감이 괜찮은 상황이었다. 본인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5월 18일 5경기만에 안타를 쳐내면서 개인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또한 노경은의 슬로커브 관련 기사를 통해 '장난하는줄 알았다' , '연마했는지 모르겠다'며 따끔한 한마디를 전한 기사가 전해지면서 두산팬은 물론 타팀 야구팬들로부터 실망감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농담으로 한마디 한 것이 기레기 때문에 와전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5월 27~29일에 벌어진 한화와의 3연전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올라오면서 타율이 2할 8푼대에 근접했다.

6월 4일 넥센 히어로즈 2차전 1회말에 헨리 소사를 상대로 솔로포, 시즌 4호 홈런을 쳤다

6월 10일 두산 베어스 1차전 4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우중간 3루타로 팀승리에 기여했다. 참고로 이 3루타가 결승타였다!

7월 7일 LG 트윈스와의 3차전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7회 박민우와 함께 더블 스틸을 성공하며 9년째 연속 두자릿수 도루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8회 2사 만루 상황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호수비(네이버 버전), (NC 유투브 버전)를 보여주며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 연장 11회말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 이종욱 본인도 이번이 커리어 첫 만루홈런이라고 한다.

10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 경기에서 4:4 상황에서 8회 결승 홈런을 때려 팀을 4:5 승리를 이끄는데 크게 기여를 했다.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이미 LG쪽으로 상당히 기운 상태였긴 하지만 이혜천과의 합작으로 1사 만루에 안타 후 송구를 3루로 한다는게 그만 덕아웃으로 들어가버려 싹쓸이와 함께 이후 이어진 대량실점으로 경기를 완전히 LG가 가져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2차전에선 손주인의 타구를 환상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이 날 안타는 없었다. 특히 타격면에서 매우 부진했는데 1, 2차전에서 7타수 무안타 1볼넷 2삼진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박민우와 함께 공격의 흐름을 끊어먹으면서 1, 2차전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3차전에선 급기야 파울 타구에 발등을 맞아 발목에 타박상을 입었고, 권희동과 교체되었다. 나성범이 중견수를 보는 상황이 됐는데, 나성범은 5회에 홈 보살을 기록하며 승리를 견인했고, 교체된 권희동도 2타수 2안타로 활약했다. 이 여파로 4차전에선 선발 출장하지 못했고, 7회에 선두타자 대타로 출장해 신정락과 상대했다. 결과는 4구만에 헛스윙 삼진. 그런데 NC는 이 이닝에 2득점하며 LG를 1점차까지 쫓아가서 이종욱의 삼진이 더욱 아쉽게 되었다.

이종욱은 201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0타수 0안타 1볼넷 3삼진으로 타율 .000을 기록했다. 이는 이태원보다도 낮은 수치.

이적 첫 시즌 이종욱은 생애 처음 맡은 주전 우익수 보직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타고투저 광풍 속에 각종 공격지표들이 하락한 부분은 아쉽다.[8] 외야가 좁아 단타와 3루타를 생산하는 데 불리한 마산 야구장의 특성도 이종욱에게 불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익숙한 리드오프 대신 중심타선에 자주 포진된 부담감도 컸을 것이다.

3.2.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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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에 이어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NC는 주장 임기가 2년이라 이종욱은 2016시즌까지 주장을 맡는다.

5월까지의 모습은 영 좋지 않다. 테이블세터 자리에서는 완전히 밀려난 상태고, 주로 6번 중견수로 출전하는데 타율이 2할 초중반에서 왔다갔다하는 중.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3번 타자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타격능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받던 걸 보면 그야말로 세월이 무상하다. 한때 국대 붙박이 중견수로써 클래스를 자랑했던 수비력도 흔히 외야수비 라이벌로 꼽히는 김강민 등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 모양새다.

5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쳤다 이종욱이 데뷔후 처음으로 밀어서 담장을 넘겼다. 이 두산 3연전에서는 그야말로 친정에 비수를 꽂는 맹활약을 펼쳤고, 벤치 클리어링 사태를 앞장서서 수습하는 모습으로 주장으로써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6월 18일 경기가 공교롭게도 자신의 생일임과 동시에 1100경기 출장시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먼저 달아나는 점수를 냈다.

6월 26일 경기에서 1500루타를 돌파했다. 1499루타에서 과감한 3루타를 성공시킨 것. 이어서 이동현의 공이 튀었을 때 과감하게 승부해서 추가득점까지 올렸다.

10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다. 일단 5월 말부터는 뭔가 삽질하다가도 한두 시리즈마다 적재적소에서 한번씩 활약해주는 모습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타율을 .270정도까지 올려놓고 '부활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 하면 도로 두자릿수 타석 연속 무안타를 찍으면서 팬들의 혈압을 올리는 중이라는 것.

10월 2일 염증 치료를 위해 일본 요코하마로 출국하면서 정규시즌을 마쳤다. 최종성적은 0.268 5홈런 52타점 17도루.

10월 18일 친정팀 두산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병살타 하나를 포함한 4타수 무안타로 매우 부진해서 손시헌과 함께 패배의 주요원인으로 꼽혔다.

10월 19일 2차전에서도 3타수 무안타 1볼넷 3삼진으로 부진했지만 팀은 이겼다.

10월 21일 3차전에서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 하였다.

10월 22일 4차전에서 2타수 1안타 기록. 7회말 수비에서 허경민이 친 중견수 옆으로 흐르는 타구를 슬라이딩으로 막고 빠르게 던지는 동작에 어깨 통증을 느껴 김준완과 교체되었다.

4차전의 어깨 통증으로 출전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10월 24일 5차전에 선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2014년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최악의 활약을 보여주며 2016년에 대한 기대감이 땅바닥을 뚫었다. 현 2년 동안 리더십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야 어쩔 지 몰라도, 4년간 총액 50억 원의 성적은 절대 아니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반등할 여지가 보이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래서야 2013 시즌 두산을 멱살잡고 끌고가던 그 모습은 FA 로이드 아니었냐며 팬들의 의심을 받았다.

3.3.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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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민의 합류로 타순이 한 칸 밀리게 되었다. 시범경기때부터 불안불안하더니 역시 1할대 타격을 보여주고있다. 장거리 타자가 아니면서 폭삼은 예사에 추격상황에서의 결정적인 병살까지 선보이면서 흐름을 끊어먹는 중으로, 세대교체 겸해서 김성욱이나 김준완을 주전으로 쓰라는 팬들의 성토가 쏟아지는 상태.

2번 타순으로 나온 4월 8일 한화전에서는 그나마 멀티출루를 기록했고, 9회에 3루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1번타자로 고정되면서, 놀라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작은 5월 27일~29일 KIA와의 3연전에서 깜짝 1번타자로 선발 출전해 11타수 7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한 것이었다. 그 시리즈를 통해 타율도 2할 8푼 5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6월 5일까지 부진으로 2할 5푼 9리 까지 내려왔다. 기량의 노쇠화가 점점 빨라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1번타자로 선발 출전하고 있어서 NC팬들은 속이 타는 중이었다. 하지만 체감과 달리, 1번타자 이종욱은 괜찮았다.

6월 8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3회에는 우중간 3루타를, 4회에는 우익수 뒤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쳤다. 총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6월 1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앞서던 9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바뀐 투수 진해수를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치며 팀의 12연승을 이어가는 데에 기여하였다. 이 날 성적은 5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팀이 12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1번 타자 자리에 고정되어 3할 8푼 5리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즌 타율도 2할 9푼 가까이 까지 올랐다.

7월 6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자신의 신인 시절 포지션인 좌익수로 포지션을 이동했다. 김경문 감독은 김준완의 성장된 실력과 이종욱의 나이를 고려해 앞으로는 둘의 포지션을 전환시키겠다고 설명했다.[9]

7월 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7회 2사 2루 상황에서 1타점 역전 적시타를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8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시즌 100안타 째를 쳐내며 역대 30번째 7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25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회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역대 8번째 11년 연속 두자릿 수 도루를 달성했다. 또한 4타수 3안타로 활약하며 시즌 타율을 0.301까지 끌어올렸다.

8월 30일 kt wiz전에서는 4타수 3안타로 활약했다. 타율은 0.304까지 올랐다.

9월 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9월 9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1회 선두 타자 홈런을 쳐냈다. 또한 2회 안타를 쳐내며 멀티 히트를 달성했고, 무려 4경기 연속 멀티 히트 중이다.

10월 9일 kt wiz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타수 3안타 1도루의 활약을 펼쳤다. 이로써 시즌 타율 0.305을 마크하게 되었고, wRC+도 FA 계약 이후 처음으로 100을 넘긴 104.1을 찍었다.

5월부터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며 반등하면서 이름값을 어느정도 해낸 시즌이 되었다. 특히 NC의 12연승 기간 중 1번타자 자리에서 타율 0.385를 기록, 8월 23일 시즌 100안타를 쳐내며 7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한 것은 압권이었다. 역대 8번째로 11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한 것 또한 대단한 기록. 허나 우측 타구가 점차 줄고 좌측으로 가는 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나이가 들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3.4. 2017 시즌

파일:이종욱170830.jpg
김경문 감독의 리빌딩 선언에 의해 주전 자리를 후배들에게 맡기고 줄곧 2군에 박혀 있다가 개막 후 14경기가 지난 4월 18일에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그동안의 고양 다이노스에서의 성적은 23타수 9안타 2홈런 5타점 1볼넷, . 타출장 .391 .400 .696.

1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시즌 첫 타석에서 곧바로 안타를 쳐냈다. 그러나 이후 두 번의 득점권 타석에서는 안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7회 선두 타자로 안타를 치고 나간 이후 나성범의 우전 안타 때 혼신의 주루와 슬라이딩으로 결승 득점을 만들어냈다.

4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4월 29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는 5회 1사 만루 상황에서 권희동의 대타로 들어셨다. 그리고 볼넷을 골라내면서 밀어내기 1타점을 올렸다. 이후 두 타석에는 안타를 때려내지 못하다가 5대5로 팽팽한 12회초에 결승 쓰리런 홈런을 쳤다!!

5월 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5타수 4안타를 쳐내면서 2년만에 4안타 경기를 만들어냈다. 팀은 12-1 승리!!

5월 7일 경기에서는 두 번의 만루 찬스에서 모두 적시타를 뽑아내면서 4타수 2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5월 1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5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4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5월 2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5타석 3타수 3안타 2볼넷으로 전 타석에서 출루하면서 승리에 보탬이 되었다.

6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는 4회부터 대타로 출장해 2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6월 3일 경기에서는 타석에서는 5타수 2안타 1타점, 수비에서는 두 차례의 호수비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6월 4일 경기에서도 4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의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6월 16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만루 상황에서의 싹슬이 2루타를 포함해 4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이종욱의 활약에 힘입어 11-5로 승리했다.

6월 2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시즌 2호 홈런을 비롯하여 3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7월 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2번의 2루타를 포함해 4타수 4안타 1득점으로 활약했다. 타율도 .345까지 상승했다.

7월 1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3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7월 28일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1군에서 말소되었다가 8월 8일 복귀 했다.

그런데 복귀 이후 3경기에서 총 8타수 무안타 2삼진을 기록하면서 아직까지도 감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월 13일 잠실 두산전에서 8회초 스퀴즈 개구리 번트로 팀의 유일한 득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9회말 박민우-손시헌의 어처구니없는 실책 끝에 오재원의 끝내기 안타로 팀이 패해 아쉽게 되었다.

8월 1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6회 중전 안타를 때려내면서 8월 첫 안타를 신고했다.

8월 18일 경기에서는 4회 안영명을 상대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 홈런을 쳐냈다. 시즌 3호 홈런. 하지만 팀은 불펜진의 방화 끝에 역전패했다.

8월 29일 kt wiz전에서는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활약하며 팀의 13-2 대승을 이끌었다.

8월 30일 경기에서는 리드오프 홈런을 포함해 5타수 2안타를 기록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9월 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리드오프 홈런을 쳐냈다. 그러나 이 득점이 팀의 마지막 득점이 되면서 1-6으로 패배했다.
10월 8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쳐냈다. 그러나 팀은 0-1 패배.

10월 11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로 나왔지만 3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고 물러났다.

10월 13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도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으나 3타수 무안타에 수비에서도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10월 15일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는 5회 이호준의 대주자로 출전한 이후 3타수 무안타 1득점 1병살을 기록했다. 시리즈 총 10타수 1안타에 그치는 눈이 썩는 타격을 보여주었는데 다행히 팀은 3승 2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더불어 5차전 출전으로 KBO 통산 준플레이오프 최다 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시즌 최종 성적은 총 107경기에 나서 318타수 98안타 5홈런 9도루 34타점 .308/.371/.403 OPS 0.774이다. 지난 시즌과 비슷한 비율 스탯을 찍었지만 김성욱김준완의 가세와 함께 권희동이 완벽하게 주전 좌익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규정 타석 진입에도 실패했고, 9년 연속 100안타 달성에도 실패했다. 후반기 들어 체력이 부치는 모습이 보이면서 장타 대신 컨택 비율을 극단적으로 높이며[10] 경쟁력을 높이려 애썼다.

3.5. 2차 FA

4년간 성적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490 1649 480 92 10 21 221 261 176 241 26 56 .291 .359 .397 .756
시즌 종료 후 개인 두 번째 FA 자격을 취득했다. 이번에는 손시헌이 이종욱의 덤이었다는 4년 전의 평가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오히려 손시헌은 매 시즌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커리어하이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는 반면 이종욱은 공격과 수비 모두 노쇠화로 인한 하락을 겪으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마도 괜찮은 계약은 따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손시헌이 2년 15억의 계약을 따낸 것에 비해 적은 규모인 1년 5억이라는 계약으로 NC 다이노스에 잔류했다. 이종욱은 “아쉬움보다는 1년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3.6. 2018 시즌

파일:이종욱180428.jpg
4월 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1점차로 지고 있던 9회 1사에서 대타로 등장했으나 손승락에게 허무하게 삼진을 헌납하고 말았다. 팀은 그대로 패배해 롯데에 시즌 첫 승을 내주었다.

초반 행보는 그야말로 최악. 팀이 13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타율은 .176, OPS는 0.435에 불과하다. 최악의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권희동마저 허리 디스크 증세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좌익수는 강진성이나 심지어 내야 유틸리티인 이상호로 돌려보고 있는 실정이다.

4월 21일까지 성적은 타출장 .172/.186/.224. 6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중 이보다 나쁜 성적은 없다. 월간 팀 타율이 단 .216에 그치고 다른 타자들도 전부 개판인 이 팀 수준 때문에 근근히 1군 엔트리에 붙어있지만 다른 팀에 있었으면 은퇴나 하라는 소리가 나올 수준이다. 승리기여도인 WAR이 -0.60으로 2군에서 아무나 올려도 할말없을 수준.

5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동점 투런포를 포함해 3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4월 22일 이후부터는 선발 출전한 7경기에서 모두 안타를 기록하는 등 이전보다는 나아진 타격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시 타격감이 식어버렸고, 5월 13일까지 타율 .215, OPS 0.533의 기록을 남기며 2군으로 내려갔다. 무릎 통증도 있다고 한다.

결국 5월 28일 양 무릎 연골 수술을 했다고 한다. 복귀까지 예상 기간은 2개월. 복귀 후 어떤 성적을 찍을지는 모르지만 빠른 발이 주무기인 선수가 그것도 나이 40을 코앞에 두고 양 무릎에 칼을 댔으니 주력 회복은 사실상 힘들어보이고 김경문 전 감독도 경질된 데다가 애초에 1년 단기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올해를 끝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재활을 끝낸 후 9월 17일 고양 다이노스로 복귀했다. 세 경기에서 7타수 3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했고, 9월 20일 이재율을 대신해 1군에 합류했다.

9월 2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8번 좌익수로 나서며 오랜만에 선발 출전을 했다. 그리고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한 이후 이우성과 교체되었다. 팀은 5:6으로 패배.

시즌 최종 성적은 43경기 122타수 28안타 1홈런 8타점 타출장 .230/.252/.311. 무릎 수술과 재활 등으로 인해 단 43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타격 기록 역시 신통치 못했다. 손시헌은 한 술 더 떠서 1할대의 타율을 기록. 시즌 막판 부상에서 복귀하며 여전히 선수 생활에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과연 그것이 구단에게도 전해질 지... 팀의 외야 뎁스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닌 상황이기 때문에 1년 정도는 더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리빌딩의 바람에서 크게 자유로워 보이지는 못한다.

시즌이 끝난 10월 24일 공식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으며, 은퇴와 동시에 2군 주루코치로 선임되었다. #
NC에서의 5년간 성적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533 1771 508 99 10 22 229 273 180 257 28 57 .287 .355 .391 .746

4. 국가대표 경력

4.1.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
파일:이종욱 2007.jpg

2006시즌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자마자 도루 1위[11]와 뛰어난 수비력으로 허슬두 신드롬을 일으킨 이종욱은 2007시즌 공수에서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본 대회는 본래 아시아 지역대회에 불과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하며 그 중요도가 급등했다. 또한 4년전 동 대회에서 대만에게 패한 삿포로 참사를 설욕해야 한다는 여론 역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부담 속에서 이종욱은 첫 A국가대표팀 참가임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빠른 발은 상대 수비진에게 늘 위협요소 였고, 수비력 역시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공격력까지 폭발했다. 난적 대만을 상대로 홈런까지 때려내며 펄펄 날았다. 지난 2시즌간, 245경기에서 단 2개의 홈런을 기록한 이종욱에게 홈런을 허용한 대만 벤치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비록 대한민국일본에 패하며 올림픽 본선 직행에는 실패했지만, 이종욱 개인으로서는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한 대회였다.

4.2. 2008 베이징 올림픽 플레이오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과 플레이오프에 모두 출전했던 이종욱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최종 엔트리에 역시 선발됐다. KBO리그에서의 성적과 종전 2번의 예선에서의 활약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내에서 입지를 굳힌 이종욱은 대한민국이 치른 본선 9경기에 모두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다.

4.3.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8회에 기습번트를 댔는데 무라타 슈이치가 잡지를 못해 내야안타를 쳐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사실상 이 공은 무라타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4.4. 2009 WBC

2009 WBC
파일:이종욱 wbc.jpg

4.5.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1] 하지만 전준호의 후계자가 될 거라 기대받았던 정수성은 2005년 한해 반짝 이후 만성 간염과 온갖 잔부상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정수성은 97년도에 입단했다.... 거의 9년차에 커리어를 달성한거였고 나이에 이른 부상, 결국 2013 시즌 후 은퇴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재정 상태가 이 둘 모두에게 연봉을 줄 수 없어서 경력이 짧은 이종욱을 방출했다는 설도 있다.[2] 이 당시 김재호는 타격이 도무지 안 되어서 손시헌에게 밀려 2군 신세였다.[3] 심지어 2차 2라운드로 상위픽이었다.[4] 서건창넥센 히어로즈에 이적했을 때도 비슷하다. 단지 LG/넥센 입단이 모두 신고선수인 것만 다를 뿐. 그래도 2012년 시즌 전 서건창은 박흥식 코치의 눈에 들어와 정식선수로 시작하는 데 성공한다.[5] 상무 제대를 앞두고 경쟁력있는 무기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스피드 강화 훈련에 매진했다고 한다.[6] 시즌 초에는 이종욱이 좌익수를 맡고 민병헌이 중견수, 유재웅이 우익수를 맡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유재웅이 거하게 삽질을 하면서 좌익수 수비만 가능했던 김현수의 콜업이 다소 빨라졌고 이에 따라 이종욱이 중견수로, 민병헌이 우익수로 가는 연쇄이동이 발생한 것.[7] 포스트시즌에는 3번 타자로 기용되기도 했다. 이종욱 대신 1번을 맡은 선수는 정수빈.[8] 다만 그 와중에 데뷔 후 최다타점을 기록했다.[9] 기사[10] 컨택%이 90%로 김선빈에 이은 리그 2위였다.[11] 5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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