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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忠敏생몰년도 미상
고려의 관료로 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의 11대조이다. 부친은 이경영, 모친은 최오헌(崔五憲)의 딸이다. 생전 관직은 장사(長史)였다. 《동국세기》와 《충효전》에선 이름을 이후경(李厚慶)으로 기록하고 있다.
집안 사정이 매우 가난했으나 청의동자(靑衣童子)라는 존재로부터 활과 화살을 받은 후로 그릇을 굽는 동안 고품질의 그릇이 나오자 그것을 내다 파니 집안 형편이 나아져 말년에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충민의 몰년은 전해지지 않으며 선원선계의 당주(當主) 지위는 이화가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