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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11:29:24

이호석(축구선수)

이호석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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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2020이호석.png
이름 이호석
李鎬碩 / Lee Ho-Seok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1991년 5월 21일 ([age(1991-05-21)]세)
전라남도 광양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177cm, 67kg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학력 광양제철남초 - 광양제철중 - 광양제철고 - 동국대
프로 입단 2014년 충주 험멜
소속팀 충주 험멜 (2014)[1]
경남 FC (2014~2016)
대전 시티즌 (2017)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8~2020)
상주 상무 FC (2018~2020 / 군 복무)
밴율 시티 SC (2022~)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U-14 / 2005)
등번호 경남 FC-44번, 4번, 17번
대전 시티즌-17번
인천 유나이티드-37번, 30번

1. 개요2. 클럽 경력3. 근황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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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윙어이며,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자주 경기를 소화한다.

2. 클럽 경력

2.1. 유소년 시절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고, 이에 따라 전남 드래곤즈의 유스 시스템에 들어가서 광양제철남초등학교, 광양제철중, 광양제철고를 모두 거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동국대학교에 진학했다. 2005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연 프리미어컵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빛나는 재능을 입증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 이호석은 지동원, 이종호와 공격을 이끌었고, 대학에서는 덴소컵이나 VFF 대회에서도 활약하였다. 이 시절 광양제철고에는 김영욱, 지동원, 이종호, 이호석, 이중권 등 유망주들이 다수 포진했고 그 중에서도 주목받던 자원이었다. 특히 동기인 김영욱, 지동원, 황도연과 후배 이종호와 함께 광양제철고를 고교축구 천하로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동국대 시절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윙어,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고루 소화하면서 팀 내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2.2. 경남 FC

파일:윤거일20160630경남FC6월맑음사진10.jpg

2014년 드래프트에서 이호석은 충주 험멜에 2순위로 지명되면서 충주에서 데뷔를 할 것으로 보였지만 정성민이 충주에 임대되는 대신 본인은 경남 FC에 입단하며 프로 데뷔도 경남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이전 시즌 충주에서 임대 생활을 하며 정성민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결과였다.

첫 해부터 이호석은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를 아우르며 신인치고는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해 고전하였다. 특히 이차만 감독 시절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수비적인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기에 이호석에게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다음 시즌부터 공격수 역할을 맡으면서 이호석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고, 김종부 감독이 부임한 2016 시즌에는 크리스티안 더널라케와 위협적인 공격 조합을 완성하며 맹활약을 했다. 이 시즌 그는 9골 10도움을 기록했고, 9월 고양 자이크로 FC를 상대로 1경기 4어시스트의 진기록도 남겼다. 이는 K리그 출범 이래 한 경기 최다 어시스트 기록으로 남았다. 이호석은 2016 시즌 K리그 챌린지 도움왕도 차지했다. 이 때의 활약은 이호석이라는 선수를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린 계기였다.

2.3. 대전 시티즌

파일:01414140.jpg

2017 시즌을 앞두고 경남의 수석코치였던 이영익 감독의 부름을 받고 팀 동료 크리스티안 더널라케와 대전시티즌으로 이적하였고, 장원석과 팀의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크리스찬과 이호석의 조합이 2016 시즌 경남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보여주며 리그를 뒤흔든 만큼매우 큰 기대를 받고 영입된 선수였지만, 대전에서의 활약을 요약하자면 대전 시티즌의 계륵이자 양날의 검.[2]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리그 개막전서 특유의 번뜩임으로 중거리포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대전의 리그 첫 득점자가 되었지만 후반 막판 수비수 김진규의 어이없는 실책에 팀은 패배하였다. 성남 FC과의 홈개막전에서도 자신 특유의 센스와 테크닉을 바탕으로 공격진에서 활약하며 두경기 연속골을 기록, 팀을 패배의 위기로부터 구해냈었다. 이후 이어진 서울 이랜드와의 홈경기에서도 추가골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골을 기록, 팀의 리그 첫승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공격수 크리스찬과 공격수 레반과의 호흡이 맞지 않으며 큰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였다. 특히 아산과의 홈경기에서 이호석은 기존의 측면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답답한 공격력에 활기를 불어 넣었으나,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호석은 대전 공격에 있어 답답한 경기력에 번뜩이는 패싱과 테크닉으로 보탬이 되긴 했으나, 주변 선수들과의 호흡 부재에 따른 답답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특히 경기를 뛰는 도중 짜증을 내는 장면도 자주 나오면서 멘탈이 쉽게 무너진다는 평을 들었다.

6월 서울 이랜드전에서 모처럼 골을 성공시키며 18라운드 베스트일레븐에 오르며 반등하는 듯 했지만 이후에도 앞선 단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7월 아산과의 홈경기서는 후반 막판 교체로 아웃되었는데, 팀이 비기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라운드 밖으로 빠르게 나가지 않고 천천히 걸어나가면서 대전팬들의 상당한 비난을 샀다. 이런 모습에 대해 경기 종료 후 버스 앞에서 팬들이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9월 28일 아산 원정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팀의 중심이 되어 상대 진영 측면을 활발히 공략하며, 후반 막판 만회골을 성공시키며 그동안의 모습을 만회하였다. 이호석은 1년 동안 대전에서 27경기에 출장해 5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내 득점 2위와 도움 1위에 등극하였다. 확실히 실력이 있는 선수이기에 기록은 꽤 좋지만, 2017 시즌은 명백히 본인에게 있어 명암이 도드라졌던 시기였다. 그리고 저 정도의 스탯을 쌓았음에도 이호석은 2017년 한 해 대전팬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선수였는데, 상술한 양면적인 장단점이 그 이유였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FC

2.4.1.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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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이호석은 박명수와 트레이드되어 인천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최대 의문의 영입이 되고 말았다. 시즌 시작 이후 계속 2군 경기에서만 모습을 드러냈고, 1군에서는 서브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채로 세월을 보냈다. 팬들은 이호석의 기용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문선민이 초반에 굉장한 공격포인트 개수를 기록하고 콰베나 아피아-쿠비, 김진야도 그럭저럭 좋은 플레이를 보인데다가 이호석 자체도 R리그에서 그리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명단에 들어올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입단한 지 얼마 안 되어 상주 상무 FC 추가 합격자로 박용지, 송시우와 함께 공시되면서 입단한지 반년도 안돼서 군입대로 팀을 이탈하게 되었다.

2.4.2. 상주 상무 FC 입대

2018년 5월 28일에 송시우, 박용지와 함께 상무 입대가 확정되었다.

입대 이후 FA컵에서 교체로 출전하면서 2018 시즌 첫 출전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원 소속팀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인업에 들어오지조차 못하고 있다. 심동운, 송시우, 김경중, 김민우 등에 비해 좀처럼 우위에 서지 못하는 게 문제. 결국 2018 시즌 내내 리그에서는 단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다.

2019 시즌에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이호석은 이번에는 서브에 포함되는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출전이 불발되었다. 최종적으로 2019 시즌 1년 내내 단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봐야했다. 같이 입대한 송시우와 박용지가 상주 공격의 선봉장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

2.4.3. 2020년

일단 송시우, 박용지와 함께 2020년 1월에 전역이 예정되어있으나, 인천 팬들에게는 거의 없는 선수처럼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지역지에서 나온 기사에조차 송시우, 박용지의 전역을 다루면서 이호석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상황이라 구단에서 아예 이적시키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구단 관계자가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의 계약이 남아있다는 점을 상기시켰고[3], 전지훈련에 송시우, 안진범과 더불어 실제로 합류하면서 일단은 팀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직후 이어진 서울 이랜드 FC와의 연습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출전하면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주장 완장을 찬 모습에 모든 팬들이 놀라움의 환호성을 질렀다. 인천 생활을 하면서 전역 시즌만큼 이호석이 관심을 많이 받은 적도 없었다.

태국 전지훈련이 종료된 뒤 진행된 남해 전지훈련에서 신인급 선수들, U22가 적용되는 어린 선수들을 제외한 성인급 선수들 중에서는 김동민과 함께 유이하게 2군으로 분류되어 남해 전지훈련을 따라가지 못했다. 팀 내에서의 전망도 여전히 어두워보이는 상황. 그러나 전지훈련 종료 후 선수들이 인천으로 복귀한 뒤에는 나이가 비슷한 김도혁, 이우혁, 이상협, 송시우와 함께 다니면서 팀에 적응해나가고 있고, 훈련에서도 다시 기회를 받으며 1군 진입을 노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리그가 미뤄지면서 새로 부임한 임완섭 감독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는데, 여전히 전망이 밝진 않지만 입지를 약간이나마 끌어올린 듯.

훈련에는 계속 모습을 보였지만 리그 초반 라운드에는 역시 명단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4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서브에 포함되며 인천 이적 후 2년 반만에 처음으로 K리그 출전 명단 포함을 달성했다. 이 경기에서 인천은 빈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윙어 둘, 스트라이커 하나를 공격진에 배치하는 3-4-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꾀했는데, 출전 가능한 윙어 수가 많지 않아서 서브에 전문 윙어인 이호석을 데려온 것. 그리고 서브 내에 공격적으로 효과가 있는 카드는 최범경과 이호석이 유이해서 데뷔전 성사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결국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되면서 2년 반만의 리그 출전까지 이뤄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팀이 포항에게 완전히 박살난 상황이라 무언가 하기는 어려웠지만, 나온 시간동안 2패스 2성공을 기록해 패스 성공률 100%를 달성했다. 여전히 확실한 1군 멤버는 아니지만, 이 출전을 통해 이호석이 여전히 인천에서 가능성을 가진 선수라는 점은 입증되었고 이를 발판삼아 더 나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해당 경기 이후로는 훈련에는 참여했으나 다시 명단에서 밀려났는데, 지언학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그의 자리가 애매해진 점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송시우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공격진에 변화가 생겨야 한다는 여론이 나타나면서 이호석까지 출전 후보군으로 언급되었고, 4-2-3-1로 전환한 9라운드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며 2년만에 프로 무대에서 선발 명단에 포함됐다. 해당 경기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는데, 공백에도 불구하고 센스 있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전개를 돕고 팀 공격을 풀어줬다. 활동량이 부족하고 몸이 무거운 모습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공백을 감안하면 훌륭한 플레이라는 평이 나왔으나, 후반 초반에 근육이 올라오면서 조기 교체되었다. 이 날 경기는 이호석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팀이 포백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으나, 결국 윤주태에게 실점을 내주며 연패를 이어갔고 임완섭 감독까지 자진사퇴를 선택했다. 앞으로도 1군 명단에 들기 위해 경쟁할 기회는 돌아오겠지만, 입지가 올라오려는 찰나에 당한 부상과 감독 교체는 변수가 될 듯.

3. 근황

결국 인천에서는 더 이상의 기회를 받지 못한 채 2021시즌을 앞두고 상호 계약 해지로 팀을 떠났다. #

인천을 떠난 후에는 해외에 가서 언어를 배우는 등 선수 생활과는 거리를 둔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가 2022년 중순 호주 5부리그 격인 밴율 시티 SC에 입단하며 오랜만에 소식을 알렸다. 해당 팀에서 이호석은 등번호 10번을 배정받고 활동했는데, 무대 레벨을 감안하면 사실상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기보다는 축구를 취미로 즐기는 차원으로 보인다.

4. 플레이 스타일

윙어로 갖춰야 할 테크닉, 스피드가 좋은 선수로, 돌파력도 좋고 어시스트를 쌓는 능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패스도 날카로운 편이다. 슈팅의 템포가 빨라서 수비수가 예측하기 힘든 선수고, 공격의 선봉장으로 활약할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센스가 좋은 편이라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준수한 모습을 보이는 편. 일대일 돌파가 이호석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잘 풀릴 때는 자신의 개인 기량을 이용해 밀고 들어간 뒤 공간이 열리면 간결한 판단을 통해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호석을 제일 잘 활용했던 김종부 감독은 이호석의 축구 지능이 매우 좋다고 칭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호석은 커리어 내내 양날의 검이라는 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의 아델 타랍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호석의 최대 단점은 매우 약한 멘탈, 그리고 공격 템포의 단절이다. 경남에서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시절에도 이런 단점은 종종 부각되었는데, 혼자 돌파를 시도하다가 템포를 잡아먹고 갑작스럽게 잡기 힘든 패스를 찔러주는 패턴이 자주 보였다. 대전에서는 더더욱 심해져서 팬들에게 끊임없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호석의 개인 기량은 탁월하지만 피지컬이 그만큼 좋은 선수는 아닌지라 상대의 마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공을 잡으면 쉽사리 장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공을 끄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4] 그리고 이런 류의 선수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수비 가담 문제, 활동량 문제 역시 이호석에게는 치명적. 체력적으로도 강인하지 못하고, 판단력이 약한지라 플레이의 질에 기복이 있는데 거기에 멘탈도 자주 흔들리는지라 경기가 막히고 잘 안 풀리기 시작하면 짜증이 늘어나고 플레이에 초조함이 묻어난다. 종합하자면 분명 실력 자체는 좋은 선수지만 정신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팀에게 번뜩이는 모습과 부담을 동시에 주는 선수. 그리고 이런 특성은 특히나 공격수의 활동량, 투지를 중시하는 인천과 전혀 맞지 않았기에 인천에서는 2군 멤버에 머물러야 했다.

거의 2년에 달하는 공백기를 거친 후 돌아온 뒤에는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으나 복귀 후에도 스타일 자체는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신 돌파보다는 패스를 많이 선택하는 플레이를 보여줬고, 주변으로 빠르게 패스를 공급해주며 전반적인 경기를 조율했다. 이기적인 플레이가 줄어들었고, 피지컬은 다소 개선되어 상대 수비와 경합하는 모습도 종종 나왔다. 다만 공백이 길었던 만큼 신체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고, 그래서 무거운 모습이 간간히 나오고 있다. 활동량[5]과 체력 문제도 여전히 지적받는 부분인데, 이호석이 앞으로 입지를 다시 다지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줄이고 강점을 살리는 모습이 필요하다.

5. 여담


[1] 입단하자마자 바로 트레이드로 이적했다.[2] 확실히 실력이 있는 선수인 것은 맞다. 그러나 팀원과의 조화가 부족하고, 멘탈이 쉽사리 무너지는 기색을 자주 보여준 것도 사실.[3] 이 당시 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이호석의 존재를 까먹을 정도로 이름이 많이 잊혀져있었다. 김현회가 전지훈련지에 가서 전역자들 합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박용지, 송시우의 이름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구단 관계자가 이호석을 추가시켜줄 정도...[4] 이 부분이 대전에서의 부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경남에서 한창 좋던 시기에 비해 대전에서는 좋은 패스가 많이 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이호석은 상대의 마크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채로 공을 잡게 되었다.[5] 공격 상황에서도 공을 받아주기 위한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말이 종종 나왔다. 그러나 뛰어난 위치 선정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서 마냥 장점, 단점으로 구분하기는 애매하다. 공간 인지 능력도 있고 센스도 있지만 적극적인 관여는 부족하다는 쪽에 가까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