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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니치렌 [ruby(日蓮, ruby=にちれん)] | Nichir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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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명 | 니치렌(日蓮) |
| 속명 [1] | 누키나 젠니치마로(貫名善日麿) 누키나 야쿠오마로(貫名薬王麿) 누키나 야쿠오마루(貫名薬王丸)[2] |
| 출생 | 1222년 2월 16일 (조오(貞応) 원년 2월 16일) |
| 일본 아와국 나가사군 도죠노사토 헨카이 (現 일본 치바현 카모가와시 일대) | |
| 사망 | 1282년 10월 13일 (향년 60세) (고안(弘安) 4년 10월 13일) |
| 일본 무사시국 이케가미 일가 저택 (現 일본 도쿄도 오타구 이케가미 본문사)[3] | |
| 본관 | 누키나(貫名) 일가[4] |
| 국적 | |
| 신체 | 불명 |
| 가족 | 아버지 누키나 지로 시게타다(貫名次郎重忠)(? ~ 1258)[5] 어머니 누키나 우메기쿠(貫名梅菊)(? ~ 1267)[6] |
| 종교 | 불교(일련종)[7] |
| 직업 | 승려 |
| 위(位)[8] | 일련대보살 日蓮大菩薩 |
| 시호[9] | 입정대사 立正大師 |
1. 개요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이자 불교 사상가이다.법화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불교 종파인 일련종을 창시했다. 니치렌은 당시 사회의 혼란과 백성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무묘법연화경([ruby(南無妙法蓮華經, ruby=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라는 경문을 외워야 함을 강조했다.
2. 생애
2.1. 출생
1222년 아와국 나가사 군에서 아버지 누키나 지로 시게타다(貫名次郎重忠)와 어머니 누키나 우메기쿠(貫名梅菊)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세이초지(清澄寺)에서 출가하여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16세에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이후 교토의 히에이산(比叡山) 등에서 다양한 불교 경전을 연구하며 수행에 매진했다. 그는 특히 법화경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법화경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1253년, 니치렌은 세이초지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불교를 창시한다고 선언하고, 나무묘법연화경을 외우는 것을 강조했다.
2.2. 포교 활동과 탄압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일면 일련종을 창시한 후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는 당시 권력자들과 다른 종파의 승려들을 비판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눈에 띄는 활동으로 인해 니치렌은 반대파들을 비롯한 여러 인물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며, 유배를 가거나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이후 1260년 '입정안국론(立正安国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법화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했다. 그는 당시 일본 사회의 혼란과 재난을 법화경에 대한 믿음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3. 사망
하지만 그동안의 행동에 죄를 물어 1271년 사도 섬으로 유배되었으나, 이후 1274년 사면받고 가마쿠라로 돌아와 가르침을 전파하며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다. 이후 1282년, 병세가 악화되어 가던 니치렌은 이케가미 무네나카의 저택에 도착한 후, 그해 10월 13일 병환으로 향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3. 평가
법화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일불승(一仏乗)' 사상을 주장했다. 그는 '나무묘법연화경([ruby(南無妙法蓮華經, ruby=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라는 주문을 외우는 것을 통해 누구든지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니치렌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러한 그의 사상은 사후 일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련종 계열의 종교는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일련종은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독자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 니치렌의 사상은 일본 사회의 변혁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여담
- 천하오검 중 쥬즈마루 츠네츠구와 관련된 일화로도 유명한데, 당시 아오에 츠네츠구(青江恒次)라는 도공이 만든 검을 신자가 니치렌에게 호신용으로 선물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자가 이 검을 준 이유는 도적떼 등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라고 준 것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의 승려였던 니치렌은 칼을 아예 염주로 묶어두고 한번도 쓰지 않은 채 지팡이 대용(...)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지팡이마루
[1] 속명에 대해서는 기록 및 저서에 따라 의견이 여럿으로 갈린다, 그나마 확실한 것은 누키나 일가의 사람이라는 것뿐이다.[2] 백가계고도 2권의 저술.[3] 소재지 : 도쿄도 오타구 이케가미 1가 1-1, 당시 이케가미 무네나카의 소유였다.[4] 현재의 일본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 일대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일가였다.[5] 교토의 귀족 가문과 관련이 있었던 명망높은 가문의 자제로서 미쿠니 대부(三国大夫)라는 호칭으로도 불렸으나, 조큐의 난에 휩쓸린 여파로 인해 나가사 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어민으로써 일생을 살아왔다고 한다.[6] 혼전성은 기요하라(清原), 무로마치 시대의 관리 기요하라노 가네요시(清原兼義)의 딸로, 도네리 친왕의 먼 후손인 기요하라(清原氏) 일가의 사람이다. 1253년 아들 니치렌의 가르침을 듣고 아들의 제자로 들어간 것으로도 유명하며, 이때 니치렌으로부터 묘렌(妙蓮)이라는 법명을 받았다고 한다.[7] 일련은 니치렌의 법명을 한국 한자음으로 음독한 것으로, 니치렌종으로도 불린다.[8] 1358년 일련종의 승려 다이카쿠가 기우제를 통해 비를 내리는 것에 성공하게 되자 고코곤 천황이 일련종의 종조 니치렌에게 일련대보살이란 위를 추증했다.[9] 1922년 혼다 닛쇼 등 일련주의자들의 탄원으로 다이쇼 천황에게 입정대사라는 시호를 추증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