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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9:44:48

일본삼대원령

日本三大怨霊


1. 개요

일본 역사상 사후 가장 강대한 원령이 되었다고 일컬어지는 3명을 의미한다. 일본삼대악귀와 자주 혼동되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셋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반면 일본 특유의 원령 사상으로 신으로 숭배받기도 한다. 3인 모두 헤이안 시대의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도 삼대원령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1]

2. 목록

2.1. 스토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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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98px-Sotoku_invoking_a_thunder_storm.jpg

이 분야의 사실상 정점. 일본 최고의 대텐구이자 일본삼대원령의 수장이다. 천황이 대체 왜 원령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출생부터 인생 전반이 굴곡진 터라 황실의 멸망을 운운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본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의 동정과 재앙으로 인한 높으신 분들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쪽에 가깝고 후대의 황실 일원들을 도와줬다는 설화도 있다.

당시 일본은 천황의 아버지가 조코(태상황)로 즉위하여 인세이를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질적으로 천황은 황태자 정도의 지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스토쿠 덴노의 아버지인 도바 상황후지와라노 도쿠시/나리코를 총애하여 그 자식인 고노에 덴노를 즉위시키고 스토쿠 덴노를 상황으로 밀어올린다. 하지만 스토쿠 덴노는 명목상의 상황일 뿐, 자신의 자식이 천황이 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권은 전혀 없었다.

대신에 스토쿠 덴노는 자신의 아들인 시게히토 친왕(重仁親王)을 도쿠시의 양자로 들여보내서 차기 황태자, 천황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고노에 덴노가 급사했을 때, 궁중에서는 스토쿠 덴노가 시게히토 친왕을 천황으로 만들고 싶어서 당시 조정의 집권자이던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와 결탁해 고노에 덴노를 저주해서 죽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기에 분노한 도바 법황은 시게히토 친왕 대신에 자신의 넷째 아들[2]인 마사히토 친왕(雅仁親王)을 천황으로 책봉한다. 바로 고시라카와 덴노이다.

원래 고시라카와 덴노는 즉위하기 전까지 황태자로 책봉받지도 못했으며, 노래 연습에나 몰두하는 한량이었다. 고시라카와 덴노도 사실은 그 다음 천황으로 예정된, 자신의 아들이자 계모 토쿠시의 양자인 니조 덴노가 황위에 오를 때까지의 중계 역할로 즉위한 것이었지만, 아무튼 이것은 스토쿠 덴노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으며 권력에서 더욱 멀어지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스토쿠 덴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사실은 도바 상황의 아들이 아니라 시라카와 덴노가 늘그막에 본 사생아 출신이었다는 소문이었다. 시라카와 덴노는 희대의 난봉꾼이라서 젊어서부터 굉장히 주색을 밝혔는데, 시라카와 덴노의 장남인 호리카와 덴노가 불쌍한 자신의 막내 동생을 늘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장남인 도바 법황에게 스토쿠를 양아들로 삼으라고 명하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바 법황은 스토쿠가 자신의 친아들을 황태자로 내세운 데 반발하여 자신의 넷째 아들인 고시라카와를 차기 천황으로 지지했다. 즉 스토쿠는 고시라카와에게는 형님이지만, 사실은 막내 할아버지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도바 법황이 사망하자 스토쿠 덴노는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서 후지와라노 요리나가와 결탁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스토쿠는 고시라카와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후에 일으킨 쿠데타도 실패하여 정권을 완전히 탈취당해 버린다. 이후 절에 유폐된 후에는 불교에 귀의해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절에서 전념하여 사경한 경전을 조정에 바쳤지만 '반역자'가 올린 경전은 불경하다는 사유로 거절당했다. 이때에 분노와 자기비애의 정점을 찍게된 스토쿠는 완전히 돌아서고 만다. 자신의 혀를 씹어 잘라 흘러내린 피로 사경했던 경전 위에 저주를 쓰게 된다.
[ruby(日, ruby=にっ)][ruby(本, ruby=ぽん)][ruby(国, ruby=こく)]の[ruby(大, ruby=だい)][ruby(魔, ruby=ま)][ruby(縁, ruby=えん)]となり、[ruby(皇, ruby=おう)][3]を[ruby(取, ruby=と)]って[ruby(民, ruby=たみ)]とし[ruby(民, ruby=たみ)]を[ruby(皇, ruby=おう)]となさん!
この[ruby(経, ruby=きょう)]を[ruby(魔, ruby=ま)][ruby(道, ruby=どう)]に[ruby(回, ruby=え)][ruby(向, ruby=こう)]す!
일본의 대마연이 되어, 황제를 잡아서 백성으로 하고 백성을 황제로 만들리라!
이 경을 마귀의 세계에 회향[4]하노라!

이후 스스로를 '일본대마왕(日本大魔王)'이라고 칭하였고 손톱과 머리카락이 계속 뻗어가더니 야차와 같은 모습이 되어 그 상태로 죽은 후 바로 귀신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대마왕이 된 상황은 대텐구가 되어 일본 전국의 텐구를 다스리며 여러 시대에 걸쳐 전란과 불안을 일으킨다. 전설에 의하면 텐구들은 보통 수많은 악귀와 요괴들의 장(長)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스토쿠가 일본의 모든 요괴와 귀신을 다스리는 것이 되므로 정말 '일본대마왕'으로서 군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헤이안쿄의 대화재, 요사스러운 별의 출현, 겐지(源氏)헤이지(平治)의 대결전,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괴이한 사망[5], 14세기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반역도 그가 배후에서 모든 일을 공작한 것이라고도 한다.

메이지 유신 후에도 조정은 상황의 원령이 막부군에 힘을 실어줄까 두려워 스토쿠 덴노의 신령을 쿄토로 맞이하는 의식을 거행하며 시라미네 신궁(白峯神宮)을 창건했다. 그 후로도 천좌 때의 호우, 1964년의 사후 800주년 기념 제사에서의 대화재, 대화재 직후의 뇌우 등을 보며 사람들은 아직도 스토쿠 대텐구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

1963년 쇼와 덴노1964 도쿄 올림픽 개최에 임하여 가가와현 사카이데 시에 있던 스토쿠인의 능에 칙사를 보내 스토쿠 덴노 식년제(崇徳天皇式年祭)를 거행했다. 이는 올림픽을 하는 동안 진정하라는 의미로 한 일이었다고 하며, 현대에서도 일본 황실에서 그에 대한 공포가 내려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세기 사람인 쇼와 덴노가 이런 미신 같은 걸 따른 이유는 히로히토도 이래저래 겪은 일이 많은 사람이었을뿐더러[6] 위에 말한 것처럼 스토쿠 덴노 사후 800주년을 기념하는 제에서 큰불이 나고 천둥번개가 내리쳤으며 비가 쏟아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세간에 유포되는 원령담[7]과 위와 같은 무시무시한 일면과는 달리, 의외로 스토쿠 덴노는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에게 기원을 한 사람들을 잘 챙겨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8] 시코쿠 전체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며, 고시라카와 덴노 즉 자기 정적의 증손자인 츠치미카도 상황이 조큐의 난(承久の乱)에서 패배한 후 토사로 유배를 갔을 때 스토쿠 천황의 묘에서 혼령을 위로하는 비파연주를 한 날 밤의 꿈에 스토쿠 천황이 나타나 수도에 남은 가족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상황의 유아는 나중에 가마쿠라 막부의 추천으로 고사가 덴노가 되었다. 또한 무로마치 막부의 관령(管領)인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시코쿠의 슈고(守護)가 되었을 때 스토쿠 덴노에게 기원한 후 시코쿠 평정에 성공한 이래로 호소카와 가의 수호신으로 받들여졌다고 한다. 시라미네 신궁은 축국의 종가 터에 자리잡은 연고로 인해 구기종목 전반의 수호신사로 떠받들어지는데다가, 1950년에 스토쿠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에서 불꽃 속에서 출현한 용신을 모시는 부속 신사의 우물물은 악연 절단과 질병 치유에 효과가 높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일본 서브컬처 업계 내에서도 이 인물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인 언급조차 피하고 있다. 지금도 천황제가 유지되는 일본에서 천황의 입지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보니 잘못 다루면 큰 논란을 빚을 수 있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2.2. 타이라노 마사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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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7218131952.jpg

헤이안 시대 간토 지방을 호령하던 무사로, 새로운 천황이라는 뜻의 신황(新皇)을 자처해 조정에 반기를 들어 난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으며, 본인은 참수당해 몸은 버려지고 머리는 수도인 헤이안쿄(현재의 교토)로 이송되어 효수되었다. 그러나 그는 패배감과 깊은 원한 때문에 잘린 머리가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찬 채 아래와 같이 며칠 밤낮으로 울부짖었다 한다.

스토쿠 천황에는 위상이 밀리는 감이 있지만 사실 죽을 때의 원한 만큼은 스토쿠 덴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다.

파일:cMgBN3vq.jpg
斬られた私の胴体はどこにあるのか。持って来い。首をつないでもう一戦しよう。
잘려나간 내 몸은 어디에 있는가. 가져와라. 내 몸을 찾아 몇 번이고 다시 싸워주겠다.

이후 그의 머리는 몸을 찾아 날아가 홀연히 사라졌고, 현재의 원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타이라노 마사카도는 목이 잘려 죽은 후 원령이 되었다는 전승 때문에 몸을 찾아 머리만 돌아다닌다거나 몸과 머리가 분리된 듀라한같은 유령 사무라이로 묘사되기도 하며, 이외에도 타키야샤히메라는 요술사가 마사카도의 딸로 전해진다.

2.3.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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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ugawara-Michizane-Yoshitoshi.jpg

헤이안 시대에 활동하던 문인으로, 신라에서 건너온 왕자 천일창이라는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야사가 전해진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본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지만 출신성분의 벽에 가로막혀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당대의 실세였던 후지와라 가문의 모함을 받아 헤이안쿄에서 규슈의 다자이후로 좌천당했다. 이때 그가 떠나기 전 심경을 담아 남긴 와카가 전해진다.
東風吹かば
동풍 불거든
匂ひおこせよ
꽃향기 보내다오
梅の花
매화꽃이여
あるじなしとて
주인이 없더라도
春を忘るな
봄을 잊지 말지니

그는 규슈로 좌천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으로써 원한이 맺혀 귀족들을 저주하는 원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뇌우를 다스리는 뇌신이 되어 귀족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고, 특히 자신의 몰락에 가담한 이들이 각종 수난을 당해 죽어나가면서 당대의 귀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전해진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 원한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이들이 사라지고, 후대인들이 그를 텐만다이지자이텐진(天満大自在天神/천만대자재천신)이란 천신으로 섬기며 위로하면서 분노가 가라앉아 원한이 해소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배경 때문에 위의 둘과는 달리 현재는 원령에서 신령으로 정화되었다고 보며, 뇌신이자 학문의 신으로 섬긴다. 그래서인지 대중매체에서도 삼대원령 중에선 가장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편으로, 원령이라기보단 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원령으로 묘사되더라도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면이 강하다.

2.4. 번외: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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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00205001001e6d.jpg

17세기에 활동했던 키리시탄[9]으로, 에도 막부의 기독교 박해와 지역 다이묘의 착취에 저항해 시마바라의 난을 일으켰지만 결국 처형당한 인물이다.

과거에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삼대원령에 걸맞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의 분노가 가라앉은 현재는 신령으로 정화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스가와라를 대신해 세 번째 삼대원령으로 종종 거론된다.

사실 아마쿠사가 반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 원인이 에도 막부의 종교 탄압이였던지라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참수되기 직전에 100년 후에 부활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유언을 남긴데다, 이후 가부키를 포함해 매체에서 아마쿠사를 악령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원령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린 것. 심지어 기독교 주술로 거대 두꺼비를 소환해 부린다(...)는 황당한 설정의 가부키도 나왔는데, 이게 덴지쿠 도쿠베 모쿠소, 지라이야의 원안이 되었다.


[1] 이쪽은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수백년 후인 에도 시대 사람이다.[2] 둘째, 셋째 아들은 일찍 죽었다.[3] すめらぎ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4] 불공을 드려 죽은 이의 명복을 빌음.[5] 심각한 고열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말라리아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는 모양.[6]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고 폐위(최악의 경우 사형)를 각오해야 했었다. 결국 미국이 그를 놔두는 게 더 이익이라 판단해서 자리는 보전 했지만 대신 많은 일본 황실 일원들을 평민으로 강등시켜서 후사부족 문제를 겪게 된다.[7] 이것 자체가 고토바 상황 원령담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8] 스토쿠 외에도 신으로 모셔지는 원령이 다수 있는데, 신토 신앙 자체가 생전에 강한 원념이나 집착을 풀지 못하고 죽어서 성불하지 못한 악령은 현세에 대한 집념이 강한 만큼 현세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강하기 때문에 자기 원한과 상관이 없는 소원을 비는 자에게는 강한 영험을 보인다고 믿는다. 스토쿠 덴노와 함께 삼대원령으로 일컬어지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나중에 텐만구의 천신님이라는 강대한 신으로 모셔지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9] 전근대 일본의 기독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