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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6827B><colcolor=#ffffff> 임성은 Lim Sung-eun | |
출생 | 1971년 9월 19일 ([age(1971-09-19)]세) |
서울특별시 성북구 직할 노해출장소 (현 서울특별시 노원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필리핀 보라카이[2] 경기도 양평군[3] |
가족 | 1남 1녀 중 장녀 아버지 임병겸(1943년생)[4][5] 어머니 이숙현(1946년생) |
신체 | 160cm |
학력 | 염광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
소속그룹 | 영턱스클럽 |
포지션 | 메인보컬, 리더 |
데뷔 | 1992년 이렇게 슬픈 마음으로 1996년 영턱스클럽 1집 "정" 데뷔일로부터 [dday(1996-07-09)]일째 1997년 임성은 정규 1집 앨범 '미련' |
수상 | 1996년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
경력 | 포세이돈 스파 대표[6]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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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가수로 90년대 영턱스클럽과 투투의 멤버로 활동했다.
2. 활동 내역
2.1. 투투, 영턱스클럽 시절
임성은은 그룹 데뷔 이전에 '이렇게 슬픈 마음으로'라는 음반을 1992년에 낸 적이 있는데, 활동 도중 한 드라마에 일회성으로 출연하기까지 했음에도 기획사의 홍보 부족으로 무명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1995년에 투투 2기의 객원 멤버로 영입되어 투투 2집 TWO TWO 2의 음반 녹음에 참여했고, 1995년 7월부터 1996년 1월[7]까지 활동했다. 1996년에는 영턱스클럽의 리더로 활동했다. 투투 활동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영턱스클럽의 데뷔곡인 '정'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면서 팀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할 수 있는 큰 공헌을 했다. 데뷔 직전 그룹 구성은 박성현, 한현남, 송진아, 임성은, 지준구, 최승민으로 6인조 혼성으로 데뷔 하려고 다같이 연습했으나 프로듀서 작곡가들 의견에 따라 회의 결과 6명 그림보다는 5인조 그림이 더 좋지 않냐는 의견들로 자연스레 박성현이 빠지고 5명으로 데뷔 했다. 1996년 12월부터 1997년 2월 고별무대때까지는 '못난이 컴플렉스'도 불렀었다.
1집 활동 이후에는 솔로 데뷔를 위해 탈퇴했으며[8] 그로 인해 앞서 빠졌던 박성현이 메인보컬로 합류해서 남성 3인, 여성 2인의 혼성그룹이 되었다. 임성은이 나간 이후에도 영턱스클럽은 2집에서 '질투', '타인' 등을 계속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다만 임성은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약간의 힘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그녀가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소속사 실장이 정산을 제대로 안 해줘서 항의를 했다가 탈퇴를 요구받았다고 하며 그래도 탈퇴 후에 발매된 2집에서 피처링을 해주는 등 전 멤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1월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2에서는 자신이 직접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의 정산 문제를 해결해 보려다, 돈을 밝힌다는 악성 루머가 생겨서 탈퇴를 요구 받고, 자진 하차했다고 고백했으며 1집 활동 시기 때도 데뷔를 위해 연습 중인 다른 멤버들이 투투 2집 활동 후 맏언니 겸 메인 보컬로 들어온 임성은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다'며 은근히 싫어했다고 한다.[9] 다른 인터뷰에서도 다른 멤버들과의 춤 실력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열심히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3. 솔로 활동
팀 탈퇴 이후 1997년 10월, 윤일상 작곡에 본인 작사한 곡인 '미련\'이라는 곡으로 활동했다. 영턱스 시절의 음악과 연장선인 트로트를 차용한 곡으로 활동한 결과 가요 프로그램에서 10위 권 안에 드는 등 제법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갔다.3.1. 음반
자세한 내용은 임성은/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4. 활동
현재 이 영상은 MBC에서 유튜브에 업로드한 90년대 음악 다시보기 영상들 중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영상 중 하나로, 립싱크로 활동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에 댄스와 풀 라이브를 하는 모습에 댓글창에 호평이 가득하다.[10]
원래 임성은은 영턱스 이전 보컬 위주의 활동을 한 가수였기 때문에 "영턱스클럽을 준비하던 초기에는 기본 댄스 스텝인 '다이아몬드 스텝'도 몰랐다"라고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후 연습을 통해 영턱스클럽에서는 나이키까지 선보이고 솔로 1집으로 댄스 가수 활동을 하게 된 것을 보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후속곡으로는 영턱스클럽 정규 2집에도 수록됐던 '아쉬움'으로 활동했다.
1998년에 발표된 정규 2집에서는 임성은이 작사·작곡하고 힙합 풍을 접합한 'My Love'로 활동했으며 영턱스 때 보여준 비보이 댄스 실력을 선보이면서 신나는 무대를 연출했지만 1세대 아이돌로 인기가 넘어가는 시대였던데다가 갑작스럽게 이미지를 급전환해서 그런지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후속곡으로 임성은이 작사에 참여한 '짝사랑'[11]으로 활동을 했으며 트로트 댄스 풍의 곡으로 돌아와 타이틀곡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노래방이나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가 많이 불려졌었다.
3집에서는 성인층에게 어필할 만한 트로트 쪽으로 전환해서 '마지막 배려'[12]로 활동했으며 과거를 기억하고 있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사랑을 받았다. 이 음반에는 박미경의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의 리메이크도 실려 있다.
3.5집에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1집 '미련'의 작곡가 윤일상과 작사가 윤사라와 다시 의기투합한 테크노 곡인 'Set Me Free (Remix)'로 활동했으며 본인도 의상 이미지를 바꾸는 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별 다른 반응을 얻진 못했다.
'Miz'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미즈 정규 1집 앨범 타이틀곡 'That's Alright'과 야인시대 O.S.T.로 발탁됐던 후속곡 '용서'로 활동한 게 그녀의 마지막 솔로 앨범이다. 사실상 임성은의 정규 4집이라 봐도 무방. '용서'는 후에 야인시대 O.S.T. '박인애 테마곡'으로 삽입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4.1. 이후
2006년에 다이빙강사와 결혼해,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다가 이혼 뒤에는 홀로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2015년 KBS 1TV 콘서트 7080에 영턱스클럽 멤버들과 함께 출연한 임성은은 '정' 무대에서 변함없는 가창력 뿐만 아니라, 나이키 춤을 선보였다. 그 뒤 멤버들하고 콘서트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이며 2017년 불타는 청춘에 나오면서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2020년 12월 4일부터 임성은일기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2022년 2월 14일 프리한 닥터M에 출연해 본인이 운영하는 보라카이 리조트와 양평군에 있는 대저택이 공개되었는데, 세련된 인테리어와 냉장고만 4대 있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한달뒤 3월 11일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를 통해 위 사진과 같이 임성은의 현재 모습을 공개했고 또 7달 후인 10월 18일 유튜브 근황올림픽에서도 근황을 전했다. [13]
영턱스클럽 활동 당시 멤버들의 정산 문제 해결에 나섰다가[14] 본의 아니게 탈퇴해야 했던 사연이 공개되면서 사람 좋은 면모가 알려지는 등 전성기를 지난 시점에서 좋은 의미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15] 또, 임성은이 당시 소속사를 나온 후에 영턱스클럽에 합류했던 팝핀현준이 근황올림픽에서 연습생 시절 병으로 고생할 때 임성은이 챙겨줬던 일화를 밝히면서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객원멤버] [2] 실 거주지[3] 한달에 한번 정도 양평 부모님댁에 왔다 갔다 한다고 한다.[4] KBS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2022년 3월 11일 방송분 내 궁금해요 후앤후 코너에서 공개.[5] 경기도 양평군 거주.[6] 보라카이[7] 김지훈의 입대로 투투 해체[8] 실제로는 솔로 데뷔를 위한 것이 아님이 밝혀졌는데, 이유는 후술.[9] 탈퇴 이후, 1집보다 못 하다는 혹평을 들으면서, 그 때부터 리더였던 임성은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집의 '타인'은 애초 윤일상이 임성은 음색에 맞춰서 만든 노래이니까...[10] 참고로 1997년 이전에는 립싱크가 만연했다. 오죽하면, 밴드였던 Y2K조차도 립싱크를 했었으니... 퍼포먼서냐 댄서냐 등으로 PC통신에서 난리가 났던 시기였다. 그래서 가요 프로그램이 라이브 비율을 높이던 시기였으며 필수 라이브인 MBC 쪽은 보이콧했던 가수가 몇 몇 있었다.[11] 이철원 작곡.[12] 임성은 작사, 류명기 작곡.[13] 그때 당시 3번의 출연 영상들과 맨위 프로필 사진을 보다시피 50 대 임에도 상당한 동안에 이외로 여전히 귀염상이다.[14] 1990년대 당시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의 계약은 불공평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당시 아이돌을 포함한 가수들 중 제대로 된 정산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였다. 그마저도 소속사가 주는 대로 받아야 했으며, 임성은처럼 항의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자기 문제도 아닌 동료의 정산 문제에 대해 불이익을 무릅쓰고 항의한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15] 영턱스클럽 탈퇴 이후에도 소속사를 나오기 직전이었던 정규 3집까지 피처링이나 코러스로 참여하는 등 멤버들과 인연을 쭉 이어간 점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