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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20:16:12

임조영

신조협려의 등장인물
임조영
林朝英 / Lín Cháoyīng
파일:신조협려 드라마 2014 임조영.jpg
드라마 〈신조협려 2014〉의
임조영(동쉬안(董璇) 분)
<colbgcolor=#9CA5AA,#021D2D><colcolor=#053D5F,#F0F0F0> 성별 여성
민족 한족
자택 활사인묘(活死人墓)
(몽골제국 칸울루스 장안 남방 종남산[1] 북쪽 기슭)
소속 고묘파 (장문인)
기술 옥녀심경
등장작품 - 소설 《신조협려(원작)
- 각종 2차 창작 작품
1. 개요2. 특징3. 작중 행적4. 논쟁
4.1. 임조영의 무공 수준에 대한 의문4.2. 임조영의 무공 수준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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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林朝英

소설 《신조협려》의 등장인물.

고묘파의 개파조사(開派祖師) 겸 장문인. 옥녀심경을 만들었다. 연인은 전진교를 만든 '왕중양'.

왕중양과 마찬가지로 소설상으로는 사망 이후 시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언급을 통해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2차 창작물에 따라서는 과거 시점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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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양과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소용녀가 임조영의 제자의 제자가 된다. 임조영은 직접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고 소설 시작 시점에 이미 죽은 과거의 인물로 언급될 뿐이지만, 당대의 천하제일인 왕중양과 경쟁할 정도로 강력한 무공을 갖고 있었다고 나오기에 독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다. 본인 스스로도 매우 자고자대하여 왕중양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고수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무공만 탁월한 것이 아니라 고묘파의 창시자답게 각종 기예와 잡학에 밝았고, 미모 또한 천하절색이라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재주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괴팍하고 상당히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왕중양과 친했고, 그를 사모했으면서도 천하제일인을 칭하는 그를 자신보다 위에 두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모든 방면에서 한평생 그를 이기고자 골몰했다. 스승을 통해 임조영에 대한 내력을 잘 아는 구처기는 왕중양과는 정말로 잘 어울리는 천하의 한 쌍의 남녀였으나 결국 함께 하지 못한 사연에 안타까워했다.

3. 작중 행적

무림에서 일어나는 속된 일들을 좋아하지 않고 뽐내는 일도 좋아하지 않아서 이름을 널리 떨치지는 않았다. 왕중양이 세상을 버리고 은거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아, 며칠 밤낮 동안 고묘 밖에서 욕설을 퍼부어 그를 끌어낸 후 함께 천하를 종횡했다. 이후 돌에 지력으로 글자를 새겨서 무공을 겨루는 내기를 하여 이기고[2][3] 왕중양이 은거하고 있던 '활사인묘(活死人墓)'를 얻었다.

이후 활사인묘(活死人墓)에서 살면서 고묘파를 창시했다. 당시 시점에서는 중병을 앓은 탓에 자신의 무공이 왕중양에게 처지게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활사인묘에서 왕중양이 무공을 연습하던 흔적을 보고 그의 무공을 깊이 연구하여 전진교의 모든 무공을 파해할 수 있는 옥녀심경을 창안하게 된다. 이 옥녀심경은 그 자체로 뛰어난 무학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익힌 도가사상을 비롯한 각종 학문을 녹여넣어 양생술과 주안술까지 포함된 매우 심오한 신공절학이 되었다. 임조영은 단순히 무공만 앞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동빈의 종통을 이어 당시 도가 내단사상의 불세출의 인물로 꼽히던 왕중양의 선학까지 의식하고 전진교를 능가하는 수행체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왕중양을 이기겠다는 그녀의 무서운 집념을 느낄 수 있다.[4]

그녀의 거친 성격은 고묘파의 규율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입문할 때 왕중양의 초상에 침을 뱉게 하는가 하면[5] 전진교 무공을 파해할 수 있는 무공을 개발하는 등 이래저래 전진교왕중양에게 원한이 많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사실 그 정체는 '일편단심 왕중양 츤데레'. 왕중양과 의기투합했음에도 끝내 활사인묘를 두고 내기를 걸어 결별하게 된 까닭은 그녀가 왕중양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왕중양 역시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는데 자신이 처자를 얻을 수는 없다 여겨 애써 거절했으며, 자신에게 매번 거칠게 구는 임조영을 부담스러워 했다. 결국 활사인묘 사건 이후 고묘파는 전진파와 철천지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며 입문자에게 왕중양 초상에 침을 뱉게 시키고, 전진파 무학의 철저한 상극인 옥녀심경을 창안하는 등의 츤츤함을 보여주지만, 그 와중에도 왕중양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6]

여로모로 실로 비범한 인물인데,그 왕중양에게 경쟁심이 생기게 할 정도의 수준이니만큼 천하오절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가 화석단의 일화에서 보이듯 지혜와 임기응변 또한 무척 뛰어나다. 여동빈의 제자로 당시 도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히던 왕중양과 함께 지내며 공부를 한 경위 때문인지 그녀가 전반적으로 세운 체계는 전진교의 것과 구조적으로 흡사하다. 그러나 세세히 들어가면 하나 하나 왕중양의 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무너뜨리는 식으로 상반되는 방향성을 취하고 있다. 그녀의 무학사상의 정수가 담긴 것은 옥녀심경으로, 전진교의 무공을 하나하나 파훼하도록 이루어져 있다. 후일 왕중양 역시 옥녀심경의 파해법을 창안했으나, 직접 무공을 창안한 임조영의 지혜에 비하면 그는 옛 선인의 가르침인 구음진경의 원리를 빌렸기에 스스로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자존심이 하늘처럼 높았던 왕중양은 이 일을 계기로 겸손의 도를 깊이 깨치게 되었고, 전진파 제자들에게도 고묘파와 마주치면 양보하도록 타일렀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임조영을 향한 전하지 못하는 마음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파격적인 그녀의 기질답다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비전인 옥녀심경 최후반부에 최종결론격인 옥녀소심검법에 이르러, 얼핏 배척하는 것 같은 전진교의 무학사상을 유정有情이라는 주제로서 포용하여 자신의 체계와 전진교의 체계를 융합시키는 대담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가 이 무공을 창안한 데에는 자신이 강적을 만나 위기에 처하면 왕중양이 구하러 와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대에 임조영을 위기로 몰아넣을 만한 강적은 높은 확률로 왕중양 정도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선도를 추구함에 있어서 왕중양이 끝까지 전통적인 동자공을 지향한 반면에, 임조영은 얼핏 똑같이 동자공을 지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면에는 음양의 합덕, 남녀 한 쌍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옥녀심경의 수행편을 보면, 아예 남녀가 옷을 벗고 서로의 몸을 맞대어 운기행공하는 거의 방중술에 가까운 수련법도 나온다. 임조영은 사랑을 부정한 왕중양과 달리, 도리어 사랑을 긍정하는 것에 진수를 깨쳤던 것이다.

이렇게 실상 정이 넘치던 그녀였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왕중양으로 인해 결국 깊은 한을 품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나중에 그녀가 죽은 것을 알게 된 왕중양은 그녀의 주검을 보고 슬피 울며 석실에 안장했다. 두 사람의 깊은 한은 나중에 양과와 소용녀의 중양궁에서의 결혼식으로 비로소 풀어지게 된다.

4. 논쟁

vs놀이를 좋아하는 무협 팬들은 임조영의 무공이 얼마나 강했나에도 관심이 많다.

소용녀의 말에 의하면 왕중양이 금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있을 때 임조영은 수련을 계속하여 더 뛰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왕중양이 활사인묘에서 은거하고 있을 때는 병을 두 번 크게 앓아 무공이 왕중양보다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옥녀심경을 창안하고 전진검법을 모두 파해했으니 더 높게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구처기 또한 임조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대종사보다 윗급이라고 했으니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임조영은 천하오절급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용 무협의 묘사 부분에 있어서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4.1. 임조영의 무공 수준에 대한 의문

김용 무협에서 등장인물의 예상이나 표현이 과장된 경우가 있기에 임조영에 대한 평가를 믿을 수 없다. 따라서 무공수위를 평가할 때는 말보다 실전을 우선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데 문제는 임조영은 과거의 인물이라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평가하기가 난감하다. 왕중양은 나머지 사절과 붙어본 전적이 있지만 임조영의 대결 상대는 왕중양 뿐이었고 둘이 썸타는 사이였음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대결로는 제대로된 실력을 측정할 수가 없다. 곽정이 황용과 연애하던 시절 대결할 때마다 맞아주기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제자가 스승을 과장해서 띄워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 구처기 입장에서도 임조영은 자신의 사부와 매우 친밀한 선배인데 비해 나머지 사절은 별 관계가 없거나(홍칠공, 일등대사) 원한마저 있다(황약사, 구양봉).

만약 임조영의 무공으로 오절급에 오른 제자가 있다면 증거가 되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양과는 18살에 독고구패로 갈아탔고 소용녀가 강한 이유는 주백통의 좌우호박 때문이다. 그러나 임조영 역시 한 문파의 조사로서 옥녀심경이라는 심오한 무학을 창안했고, 왕중양도 대적하지는 않아도 재주에 대해 질투에 가까운 경쟁심을 품었을 정도이니 분명 당세를 풍미할만한 절정 고수임에 틀림없다.

4.2. 임조영의 무공 수준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김용 무협 소설에서 전지적 작가의 표현이나, 등장인물의 표현 모두 작가가 생각하여 작성한 것이다. 따라서 문맥을 보면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신조협려에서 양과와 홍칠공은 금륜법왕의 제자들을 보고 금륜법왕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수준을 평한 적이 있는데 양과의 예상은 틀렸고 홍칠공의 예상은 맞았다. 홍칠공의 입을 빌어 금륜법왕을 표현했으나 작가의 의도는 홍칠공의 입을 통해서 금륜법왕의 수준이 강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것을 과장된 표현이라 하여 정확하지 않다고 매도할 이유가 없다. 또한 등장인물의 예상이 틀린 경우는 김용 무협 소설 특징상 후에 밝혀지게 되며 대체로 무공이 뛰어난 자의 평가는 맞는 편이다.

이에 따라 작품을 살펴보면 임조영이 창안한 옥녀심경을 파해하기 위하여 왕중양이 구음진경의 힘을 빌렸는데 이와 유사한 장면을 구양봉과 홍칠공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이 둘은 양과의 중재하에 의해 직접 대결이 아닌 서로 초식을 양과를 통해 보여주고 더 강한지 비교하는 식으로 대결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즉, 이런 식으로 직접 대결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서로 대결을 하여 우위를 비교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임조영의 수준이 오절급도 아니고 썸타는 사이라 봐준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왕중양이 굳이 구음진경을 꺼낼 이유는 없었다. 문맥상 신조협려는 작품에서 고묘파가 처음 등장했고 고묘파가 꽤 강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왕중양이 구음진경의 힘을 빌어 옥녀심경을 파해는 방안을 석벽에 새겨놓은 것, 그리고 스스로 연구한 임조영과는 달리 왕중양은 선조가 남긴 구음진경을 빌렸다는 점에서 패배를 시인했다는 점에서 고묘파 조사의 실력이 오절에 못지 않음을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임조영과 비문을 쓰는 내기를 할 때에도 임조영이 돌에 글씨를 쓰자 놀라워하며 그녀의 재주와 무공의 수준에 감탄했지만, 나중에 황약사가 나타나 같은 방식으로 비문을 쓰자 비로소 자기가 술수에 속았다고 탄식했다는 과거 일화를 통해 왕중양은 오히려 황약사보다 임조영의 무공 수준이 더 높다고 여긴 것 같다.

임조영의 무공 수준에 의문을 제기한 쪽에서는 제자들의 수준을 보고 평가해야 된다고 하며 임조영의 후인 중 오절급에 속한 이가 있어야만 증거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성립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오절급에 속한 이들이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 오절급에 오른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왕중양의 제자들 중에서 오절급에 오른 인물이 없었고, 황약사의 제자들 중에서도, 일등대사의 제자라 할만한 어초경독 중에서도 없었고, 구양봉의 후인에게서도 없었다. 홍칠공의 제자인 곽정의 경우 오절급은 맞지만 그는 구음진경의 도움을 받았기에 온전히 홍칠공의 무공만을 익혀서 오절급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다. 즉, 임조영을 포함하여 오절급이라 부르는 인물들의 제자들 혹은 후인 중에서 그들이 남긴 무공만으로 오절에 도달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고 오절급과 그에 준하는 급에 이르는 인물들인 곽정, 양과, 소용녀의 경우도 결국 곽정은 구음진경의 영향, 양과는 독고구패가 남긴 검총의 영향, 소용녀는 주백통의 쌍수호박이라는 것을 통해 강해졌기에 이 경우 제자의 수준이 오절 여부인가를 두고 스승이 오절급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가 없다.

종합적으로 보면 임조영의 수준은 천하오절급이라는 범위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맞아보인다.




[1] 終南山[2] 이때는 사실 돌을 무르게 하는 화석단을 사용해 왕중양을 속여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구처기 왈, 지력으로는 천하 으뜸갈 일등대사의 일양지로도 맨손가락으로 나무에도 글을 새기지 못할 것인데 바위에는 어떻겠느냐고.... 하지만 왕중양은 임조영이 화석단을 사용한 것을 몰랐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임조영을 보고 지레 GG를 치고 만다(...).[3] 이때 부끄러워서 직설적으로 결혼하자고 말은 못하고 '내가 이기면 당신이 사는 집(활사인묘)에 들어가 살고 싶어요' 라고 말했는데 왕중양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고, 본인도 그러길 원했지만 결국 활사인묘만 줘버리고 떠났다. 결국 왕중양 노사께서 다 잘못한것이다...[4] 특히 옥녀심경 마지막인 옥녀소심검법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상승의 내공을 익히기 위해서 남녀의 정을 금하는 전통적인 동자공을 지향한 왕중양에 대해 완전히 반대로,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옷을 벗고 운공을 한다는 상당히 방중술같은 수련법을 비전으로 남겨놓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녀의 관계를 멀리하는 전통적인 도가 수행자들의 입장에서 임조영의 수행체계는 가히 충격을 금할 수 없는 파격 그 자체이다.[5] 그러나 특이하게도 뒷모습이 그려진 초상이기 때문에 입문자는 왕중양의 면전에 침을 뱉지는 못하는 셈이다.[6] 김용 문학작품에서는 이렇게 사나움 뒤에 강렬한 사랑을 감춘 인물들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이 작품의 구양봉이나 곽부, 《천룡팔부》의 이추수천산동모, 《의천도룡기》의 조민주지약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