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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3:09

잉여인간(소설)

책 표지
파일:2IA0cba.jpg

1. 개요2. 상세3. 영화화

1. 개요

손창섭이 지은 단편소설. 1958년 9월 〈사상계〉에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전후소설의 하나로 평가되며, 195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2. 상세

손창섭의 소설 중에선 〈〉과 함께 그나마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는 소설이다. 능력 있는 치과의사 서만기, 입으로 사회를 비판하기만 하지 그 안에서 뭔가를 이뤄 낼 의욕 따윈 없는 '비분강개파' 채익준, 항상 무기력한 채로 있는 '실의의 인간' 천봉우를 주인공으로 한다. 사실 서만기를 제외하고 남은 두 사람은 손창섭의 소설에 즐겨 나오는 함량 미달의 인간이다. 손창섭의 소설에선 항상 이런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손창섭 스스로가 기구하고 불안하게 살아와서 이런 '잉여인간'의 삶 말고 다른 방식의 삶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이 작품에서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고, 완전무결하게 그려진다고 생각하기 쉬운 서만기도 그리 결백한 캐릭터는 아니다. 사실 작중에서 서만기의 행적을 잘 살펴보면 나름대로 먹고 살 능력[1]을 가진 그도 결국 자력으로 일을 해결한 적이 없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제시되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유부남인 그를 사모하는 여자의 손을 빌려야 한다.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다). 자기 판단으로 일을 결정내린 적도 없다. 그 역시 오로지 상황에 따라 흘러가기만 한다는 점에서는 친구 두 명과 다르지 않다. 그는 현실 앞에서 무력한 지식인의 롤모델 격 캐릭터인 셈이다. 또한 소설 결말부쯤에 그가 도덕적으로 타락할 것이라는 암시를 남김으로써(그런 장면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니지만, 봉우의 처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묘사가 있다) 그 역시 현실을 이겨내지는 못하는 인간임을 알리고 있다.

손창섭은 항상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함량 미달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평단에서 지나치게 음울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평단의 평가를 의식하고 쓴 작품인 〈잉여인간〉은 제 4회 동인문학상의 영예를 손창섭에게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손창섭은 이 작품 이후에 다시 원래의 음울하고 기괴한 작품 세계로 돌아갔다. 그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긍정적인 인물이 고군분투하는 작품인 〈길〉을 남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문단 자체를 버렸다. 흠좀무.[2]

다만 이후 발표한 〈길〉에서는 상경한 시골 소년의 서울 정착기를 소재로 해서 성적인 타락[3]을 목도했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암울한 현실[4]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봉우의 처에 해당하는 캐릭터인 여관주인이나 채익준에 해당하는 캐릭터인 약국 아저씨가 나오지만 전반적으로 음울한 부분은 많이 없어졌다. 결말도 원금을 돌려받고 얼마뒤 모친의 사망소식을 듣고 내려가서 동생들을 데리고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2010년 8월 말, 손창섭이 6월달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기사화되었다. 이에 각종 잉여들이 몰려들어 "잉여력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애도를 표하는" 댓글"당신의 소설 때문에 내가 잉여소리를 듣는다."며 원망하는 댓글을 달면서 병림픽을 벌였다.

참고로 작품이 발표된 1958년 당시 설립된 치과대학은 서울대 치과대학이 유일하다. 따라서 서만기가 동네에 있는 치과의사 아저씨처럼 서술되지만 서울대 출신이다. 거기다 간호조무사, 부인, 처제, 건물주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으며, 고객 중에서도 종종 을 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건물주가 갑질하려고 내쫓으려고 하자 간호조무사가 전재산 다 털어드릴테니 다른 데 가서 재기하자고 제안하기까지 한다.[5]

여담으로 이 중에선 채익준이 가장 비참한데 묘사로 볼 때 일하러 나갔다가 머리를 다쳐서 뇌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선다고 하지만 그런 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의미일지도.

3. 영화화

1964년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김진규 주연. 잉여인간(영화) 문서 참고.


[1] 현재의 관점에서, 개원까지 한 치과의사가 부유하지는 못할망정 식구나 간신히 건사할 정도의 형편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의사는 현재처럼 고소득 직종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의사나 약방 주인이 의사나 치과 의사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는데, 이는 그때까지도 잔재해 있던 양의학에 대한 불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후 복구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대부분의 국민들이 하루하루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중병이 아니면 병의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구완하며 약이나 해다 먹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충치 등의 치과 질환은 그냥 방치하거나 심지어 생니를 빼 버리는 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2] 이 점은 일단 논란이 심하지만 10월 유신 체제와 곧이어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에 따른 회의라는 시각도 있고 그의 자전적 소설에서 보듯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살았지만 해방 공간에서 사기를 크게 당해서 극빈층으로 떨어지고 일본에서 오래 있어서 한국문단과 거리를 두었던 고립감이 원인이기도 하다.[3] 그가 일하는 곳이 어르신들 애인 데리고 자주 찾는 여관이다.[4] 여관주인은 노골적으로 주인공을 유혹하고... 거기서 나온 다음 만나는 아가씨들은 창녀들... 여친은 딴 사람과 결혼하고 모아 놓은 돈은 누구 빌려줬다가 원금만 겨우 돌려받는다. 원금이라도 받았으니 양반이다[5] 실제 치과병원에서 치과의사들이 간호조무사에 대해 하는 고민은 간호조무사와 치위생사 사이의 알력, 간호조무사 사이의 괴롭힘, 무단결근, 갑작스런 퇴사 등을 말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소설에 나오는 치과의사-간호조무사 관계는 현실과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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