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전상택(全相宅) |
자 / 호 | 국삼(國三) / 석강(石崗) |
본관 | 용궁 전씨 |
출생 | 1878년 4월 7일 |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상귀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안귀미마을)[1] | |
사망 | 1971년 2월 22일[2] (향년 92세)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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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전응팔은 1878년 4월 7일 경상도 영천군 자양면 상귀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안귀미마을)에서 아버지 전록영(全祿永)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주군 기계면 인비리(현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로 이주하였다.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모략에 의해 강제 체결되자, 고종황제의 측근에서 시위하던 정환직은 의병운동의 재개에 대한 고종의 밀지를 받들고, 아들 정용기를 귀향하도록 하여 의진을 조직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영천으로 내려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 등과 상의하여 영천군을 중심으로 각지의 의사들을 규합하여 거사계획을 확정짓게 되어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구성했다.
전응팔은 이 즈음 산남의진에 입진하여 영천군·청하군·의흥군·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 등지에서 적과 접전하여 다수의 왜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1907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줄곧 은거하였으며 1971년 2월 22일 사망하였다.
사후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