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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9 21:33:17

절권복서

절권복서
파일:절권복서 2020년대 프로필.jpg
본명 강준호
출생 1985년 2월 27일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소속 정당
파일:zsdkl3gasdg.svg
활동 분야 복싱경기, 트레이닝, 퍼포먼스, 인권운동가
신체 174cm / 74kg[1]
체급 미들, 웰터[2]
스타일 인파이터[3]강탱크라고 불렸다.], 오소독스
성향 친이재명, 반국민의힘, 반뉴라이트, 반촛불행동[4], 반유튜버[5], 반문재인, 반조국
수상 및 경력 [2013~2018]
○ 전국 생활체육복싱대회
- 6회 우승, 3회 준우승
[2024]
○ 남한산성배 생활체육복싱대회
- 러시아전 이벤트경기
○ 프로복서 등극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6]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2.1. 생활체육복싱대회2.2. 펀치버스킹 & 촛불집회 활동2.3. 그외 활동
3. 소속 정당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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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복싱 덕에 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다![7]
복싱 만큼 힘이 안 실리면 내겐 의미가 없다.[8]
복싱으로 끌어올려 복싱으로 되갚는다!
현재 복싱이 그 이상이하 갈 때까지 간다.
가만히 있으면 얻어지는거 없다.

복싱선수 보다는 복싱 인플루언서 이다. 본인만에 복싱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마이페이스이다.
2010년대 평범한 청년이자 취업준비생이다. 대학졸업과 기술자격증까지 보유하는 스펙을 갖고 있지만 가는 곳마다 취업이 안정적이지 않고 N포세대의 반복으로 힘든 세월이었다. 본인은 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자기계발, 인간관계를 위해 스펙을 올리고 노력을 해보았는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래 지낸 친구들과 사회에서도 외면받아 마음의 상처 속에 고통을 앓고 다녔다.

파일:복싱의 길.gif
이 길을 선택하게 된다.

타락한 사회와 주변에 배신감 때문에 사회에 대한 반감이 생겨 복싱으로 선택하여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복싱으로 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여 생활체육복싱대회 에 출전하여 선수라는 자부심을 얻어 본인만에 복싱커리어를 쌓았다. 체육관 관장에게도 잘보여서 총애를 받아 관원들을 지도하는 코치까지 경험을 하였다.

파일:절권복싱.jpg
절권복싱 로고
이소룡을 존경하여 그것에 영향을 받아
절권(이소룡의 절권도) + 나만의 복싱 = 절권복싱
복싱문파를 절권복싱 이라고 지정한 거다. 복싱을 절권도 처럼 다양한 곳에서 통하는 패러다임을 연구를 한다. 예를 들어 이소룡이 본인의 쿵후 기준으로 하여 "차차차 댄스, 복싱, 가라테, 태권도" 등 무술에 통하는 분류를 융합하여 구축해 나가는 것과 비슷한 행보를 한다.

파일:절권 시즌1, 2 01.jpg
2010년대 & 2020년대 복싱인생
2010년대에 이어 현재 2020년대에도 평행이론으로 맞춰지며 비슷한 행보를 한다. 복싱 하나 때문에 드라마틱 한 인생이 많이 벌여졌다. 과거와 현재 사회와 주변인들에게 외면받았던 그가 복싱 하나로 인해 인생이 바뀐 거다. 복싱진영쪽은 명성은 그리 높지 않고 일부에 알 정도이다. 현재는 체육관 두 군데에서 트레이닝을 한다. 민주대표의 복서이고 더불어민주당과 민주진영에서 알아줄 정도로 유명하다. 그뿐만아니라 SNS 맞팔 이나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연예인들에게 닿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다.

2. 활동

2.1. 생활체육복싱대회

파일:2013~2018, 2024 현역선수.jpg
<복싱수상 기록>
* 우승 - 코리안비트 (수원) 2회, 동대문구청 1회, KBI[9] (서울 중구, 마포) 3회, 남한산성배 (성남) 이벤트
* 준우승 - 경기도 2회, 광주광역시 1회

그동안 쌓였던 과거의 불우한 삶을 보내 그 고통으로 복싱을 하였다. 생활체육복싱대회에 출전하여 그가 날개를 피는 전성기가 되었다. 복싱진영과 생활체육선수 시절은 강탱크 라는 호칭으로 통한다. 절대 밀리지 않는 인간탱크 다운 실력도 있다. 복싱국가대표 선수출신이나 프로들도 인정할 정도의 실력자이다.

<N년만에 복싱대회 출전과 은퇴>
2024.7 러시아전 복싱이벤트 경기

2.2. 펀치버스킹 & 촛불집회 활동

파일:절권복서 부역자들 펀치샷.jpg
촛불민주복싱의 아이콘 하면 그가 가장 떠오른다. 복싱진영과 링네임은 강탱크지만 촛불민주진영에서는 절권복서 라는 호칭이 통한다. 집회참가자들은 이소룡 노란색 복장이 눈길이 갈 정도로 돋보일 정도이다. 생활체육복싱대회 다음으로 촛불진영 안에서 2번째 전성기를 맞이한다.
복싱+투쟁 퍼포먼스 = 펀치버스킹
펀치버스킹은 촛불집회와 민주진영 안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촛불집회와 민주진영활동>
*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권당시 소녀상철거와 위로금 10억엔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매국적인 한일합의를 강행했을 때이다. 그 상황을 보고 참지못해 2016년 삼일절 당일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농성하는 대학생들을 찾아가며 그곳에서 부터 투쟁인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과 (현 반일행동) 교류를 쌓아가며 2017년 "절권복서와 펀치버스킹"으로 광화문광장 에 출정한다.
* 박근혜 퇴진 광화문집회에서 이소룡 노란추리닝과 펀치버스킹 활동으로 집회 시민들에게 돋보이게 눈길을 끌 정도이고 민주진영내에서 대다수가 알아줄 정도이고 본인의 복싱이 빌드업이 되었다. 자기만의 특기 복싱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만드는 거 자체도 놀라울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 곳곳에 알아주고 사랑을 받으며 계속 활동을 해왔지만 윤석열 정권 들어선 후, 촛불과 민주진영내에서 활동하는 현장의 유튜버들, 집회주최 단체여러 파벌 등 진영내부까지 이상해질 정도로 타락되어 집회현장에 나가기가 불쾌했다고 한다.
파일:부패해진 촛불.gif
진영내부의 여러 혼란스러운 문제로 분노에 쌓인 절권은 촛불을 떠나게 되었다.
* 그만큼 촛불시민에게 사랑을 받아왔던 절권은 좌, 우 가리는거 없이 진영내 구차한 상황이 못마땅하여 대놓고 지적비판을 하였다. 타락해진 촛불과 민주진영이 반대쪽 진영급과 동등하게 볼정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현장의 유튜버들의 반대쪽 못지않는 여러 만행과 쓸떼없는 진영논리에 빠진 시민들의 회의감 때문에 질려서 집회현장[11]에는 나가지 않고 한동안 오직 복싱과 스포츠에만 전념을 하였다.

*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으로 인해 여의도 광장에 수많은 2030 MZ세대들이 모여 새로운 응원봉 혁명으로 새로운 집회의 열기를 일으켜 마음이 바뀌어 다시 활동하게 된다.[12]
파일:복싱플랜을 다 마치고 MZ들의 응원봉 덕에 나오다.jpg
2024 복싱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성공하여 MZ들의 응원봉이 부르게 된 것이다.기사

2.3. 그외 활동

<SBS 다큐 '통일을 노래하다 & 플래시몹' 활동>
2015. 10. 27. SBS 다큐 '통일을 노래하다.' 출연[13]
2015년 9~10월 새시대 통일의 노래 - One Dream One Korea 캠페인 활동이다. 유일하게 절권의 첫 지상파 SBS 출연작이다.[14] 흥사단 청년단체에서 서울역, 홍대광장, 명동, 인사동 곳곳을 누비며 통일을 위한 플래시몹 활동을 했다. 강탱크와 절권복서 로 대중적인 활동을 하여 본인의 복싱이미지를 입증했는데, 플래시몹 활동하는 청년활동가 역할로 너무 엑스트라 수준으로 나와 못마땅하여 "평소에 보여준 복서 이미지 같지 않다고" 운운하며 흑역사 취급을 했다.[15]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파일:zsdkl3gasdg.svg
2020 - 현재

4. 여담


[1] 2010년대에는 70kg 이하이다.[2] 현재는 미들급. 생활체육에서는 미들이 -75kg, 웰터가 -70kg 으로 불린다.[3] 저돌적인 인파이터라[4] 수준 떨어지는 집회문제로 불만이 쌓여 촛망(촛불망신) 이라고 비판을 거론한다.[5] 현장에 셀카봉과 삼각대 들고 활동하는 유튜버를 충튜버 라고 멸칭을 한다.[6] 본인만에 유튜브 채널은 있지만 유튜버로 동급취급 받으면 상당히 기분 나빠한다.[7] 2010년대 주요 멘트[8] 요즘에 많이 쓰는 멘트[9] 배우 이시영, 개그맨 윤형빈도 출전했다.[10] 러시아전 복싱을 마치고 행보 #1, 2[11] 민주당 주최로 집회와 행사는 나갈 정도이다.[12] 네이버 블로그에 다시 절권복서로 집회로 돌아온 것도 MZ들 덕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링크[13] 나오는 분량은 1:02:25 녹색 스냅백을 착용[14] 본인은 지상파 첫 출연작 치고는 복싱이미지 같지 않아 보이고 플래시몹 하는 엑스트라라서 못마땅하지만 한 때 지지했던 문재인 당시 당대표도 출연했다.[15] 그 당시 절권복서로 나오기 전이고 그 경험을 계기로 메인 캐릭터로 사로 잡은 걸로 추정된다.[16] 체육관 철거영상[17] 홈트와 혼자만의 복싱트레이닝[18] 다시 일어나는 꿈, 더 세컨드 복싱의 시작[19] 윤석열 정권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의소리와도 같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