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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선수 경력/SK 와이번스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정근우/선수 경력
1. 개요2. 연도별 경력
2.1. 2005 시즌2.2. 2006 시즌2.3. 2007 시즌2.4. 2008 시즌2.5. 2009 시즌2.6. 2010 시즌2.7. 2011 시즌2.8. 2012 시즌2.9. 2013 시즌

1. 개요

정근우SK 와이번스 시절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연도별 경력

2.1. 2005 시즌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5011623381583937_8613.jpg
SK에 입단한 2005년 데뷔 당시[1]

2005년 데뷔 시즌에 개막전 선발로 출전하기도 하는 등 기대를 받으며 1군에 얼굴을 보였지만 52경기에서 타율 .193를 기록하고 수비에서도 불안함을 보이는 등 기대에 밑도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엔 아마시절 봤던 3루수로 주로 출전했다.

2.2. 2006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06)

작년의 부진을 딛고 2년 차인 2006년부터 실력을 발휘하며 팀의 톱타자와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해 2할8푼대의 타율과 45도루라는 호성적을 거두면서 시즌 후 골든글러브까지 수상에 성공했다. 하지만 팀 성적은 좋지 못해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출전하기도 했다.

2006시즌 초반까지는 전년도의 수비 불안으로 중견수와 좌익수로 주로 출전했다가 정경배가 이탈하자 주전 2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2.3. 2007 시즌

2007년 김성근 감독 취임후 상승하는 팀 성적과 함께 정근우의 실력도 일취월장하기 시작한다. 도루수는 2006년보다 거의 반으로 줄었지만 타율을 끌어올리면서 3할2푼대의 타격을 과시하며 리그의 괜찮은 2루수 수준에서 공격형 유격수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다만 유격수로서의 수비는 불안하여 두산 베어스에서 유격수 나주환의 영입을 통해 2루수로 돌아오며 공수에서 더욱 안정감을 찾았다.

2007년 8월 11일 끝내기 홈스틸을 기록한적이 있다.

그러나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만난 SK는 몇 번의 위험한 장면으로 구설수에 오르는데, 특히 이때 도루시에 스파이크 날을 세우고 주루 플레이를 하는 모습과 수비시 도루하는 이종욱의 발을 잡는 위험한 행동으로 일명 발근우란 좋지못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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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는 불타는 그라운드에 출연하여 이 당시 상황을 말했는데, 그 해 팀 사정상 유격수 자리에 피치못하게 들어가게 된 정근우가 '거리 감각이라든지 수비할 때의 위치 선정, 주자에 대한 대처방법 등의 경험 부족으로 본의 아니게 좋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됐다'고 말하면서 이종욱 선수에게 고의가 아니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때는 감정적으로 서로 부딪혀서 굉장히 사이가 안 좋아보였는데, 그 이후로 국가대표팀에서 서로 같이 뛰어서 그런지 지금 보면 서로 못생겼다고 놀려대고 농담따먹기나 하는 친한 사이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오직 이 해의 유격수 임팩트 때문에 정근우를 유격수 자원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작 본인은 이 시즌 트라우마 때문인지 시즌 이후 KBO 리그에서는 단 한 차례도 유격수를 본 적이 없다. 예로 2014년의 유격수 출전논의 해프닝이라던가 2015년 전지훈련에서 유격수 훈련 중 부상 정도가 유격수 정근우에 관한 소식의 전부다. 덧붙이자면 실험은 실패했는지 멀티 포지션을 선호하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있는 시기에도 가끔 외야수로 뛰었을지언정 유격수 수비를 맡은 적은 없다.

그럼에도 본인 커리어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는데 이후 국대에 선발 될 때마다 감독들이 한결같이 "2루는 기본이고 유격과 3루까지 맡길 수 있는 멀티 자원"으로 중용했기 때문. 실제로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예선전에서 박진만, 김민재의 컨디션 난조로 인해 정근우-고영민 키스톤 콤비라는 조합이 실행된 바 있으며 2009 WBC에서도 정근우 최정이 유격수 백업 가능한 점이 부각되며 승선했다. 2009년 커리어하이를 달성한 이후에는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야구에서 2루수에 단독으로 발탁[2]되는 등 주전으로 자리잡아 유격 수비 능력은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2.4. 2008 시즌

비난 속에서 맞이한 08시즌이지만 정근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예선 첫 경기인 미국전 9회말 7:6으로 뒤진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한 정근우는 미국 투수 스티븐스를 상대로 풀카운트까지가는 접전끝에 2루타를 때려내고, 뒤를 잇는 김현수의 땅볼로 진루하여 3루까지 안착. 1사 3루 상황에서 이택근의 2루수앞 땅볼을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로 홈인. 사실 2루수의 송구가 너무 빗나가는 등 운이 좀 따랐다. 7:7 동점을 만들며 8:7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음 캐나다전에서도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자 타점을 솔로 홈런으로 만들었다. 이 경기는 류현진의 완봉. 이후 한일전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기가막힌 슬라이딩을 보여주며 활약하였다. 첫 시합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한 한국은 결국 전승우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니, 이러한 활약을 한 정근우는 금메달의 주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야갤에서 비매너 플레이에 대한 까방권을 주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발동되지는 않는 것 같다. 허나 베이징 올림픽 전에는 마구잡이로 까였지만 이러한 활약을 펼친 다음에는 확실히 전보다는 덜 까인다.

금메달과 함께 병역혜택이라는 기분 좋은 선물을 받게된 정근우는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주며 또다시 두산과 맞붙은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8년 시즌의 타율은 3할1푼대로 조금 떨어졌지만 40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역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5. 2009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09)

시즌 개막 전 열린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하여 고영민과 함께 번갈아가며 2루를 지키며 한국을 결승까지 이끌며 또다시 리그 정상급 2루수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켰다.

2009년 시즌에 3할5푼대의 타율과 46개의 도루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있는 정근우는 상대팀에게도 부담이 되는지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사구를 기록중이고,[3] 9월 8일 경기에서는 2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해 고의성이냐 아니냐를 두고 여러 게시판에서 병림픽을 펼치기도 했다. 속칭 컨트롤 아티스트 서재응이 던진 볼이기에 그랬고 또 사구를 맞은후 좋지 못한 분위기로 흐른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 때문.

이 와중에 디씨솩갤에서는 멋진 짤이 하나 탄생되기도 했다. 보이그룹 2PM택연과 비교한 짤은 프로야구 카툰을 그리는 최불암에게도 영향을 미쳐 불암콩콩코믹스의 자료가 되기도 했다.

서재응과의 신경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9 한국시리즈 3차전. 서재응이 던진 볼을 정근우가 때렸지만 바로 투수 강습. 하지만 바운딩 처리되면서 서재응이 다시 1루에 던지면 상황 종료였으나, 서재응은 무슨 이유에선지 1루로 몇 발자국 걸어가면서 공을 슬슬 1루로 토스. 정근우는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서재응의 제스처에 서재응을 빤히 응시했다. 서재응은 정근우가 빤히 쳐다보자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으로는 '뭘봐 이 삼시세끼XXX야' 하며 응수, 쳐다보다 욕먹은 정근우는 지지않고 노려보며 응수.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최희섭이 1차로 만류하며 상황이 종료되는 듯 싶었으나, 양 팀 선수들이 뛰어 나오면서 벤치 클리어링. 그 와중에 기아의 고참급 선수인 이종범과 특히 김종국이 당사자들보다 더욱 더 화를 내면서 응수했다. 그 덕에 야갤에서 대량의 짤방이 만들어졌다.

2009시즌에 최다안타 타이틀도, 타격왕 타이틀도 못 딴 아쉬움을 담아 둘째 아이의 태명을 '히트'라고 정했다고 한다. 3월 17일 출생으로 남자아이. 이로서 벌써 애가 둘이다.

최종성적은 타율 .350 9홈런 53도루 168안타[4] 59타점으로 명실공히 SK 와이번스의 중심 중의 중심 역할을 했다.

여담이지만 마구마구에서 이 시즌의 엘리트 카드가 나왔다. SK 와이번스 사상 최초의 엘리트 카드.

그리고, 고교 동기 투수 김백만을 1군 콜업 하루 만에 다시 2군으로 보내버리는데 일조했다."친구 (김)백만아, 미안하다"

2.6. 2010 시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도 무난히 선발되었다.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3타수 3안타 2볼넷 1타점 2득점 100% 출루로 맹활약했다. 광저우로 오기전에 치른 슝디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지독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것에 '일부러 안 친 것'이라는 변명성 개드립을 쳤는데, 결과적으로 사실이 되었다.

만약 해외 진출을 한다면 미국에 가고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시즌 성적은 타율 0.305 33도루 75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통산 세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2.7. 2011 시즌

11시즌 4월 16일에 김영민에게 헤드샷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단 CT 검사 결과로는 탈은 없다고 한다.

4월 20일 투런 홈런을 쳐서 이대수와 함께 홈런 공동 1위가 되었다.

2011년 옆구리 부상으로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하였으나 3할 타율은 기록했다.

하지만 일부 팬들에게서 타자로서의 가치(상위타순, 특히 1번으로서의)에 대한 지적이 나왔는데, 타자로서의 주요 능력인 선구안이나 컨택 능력이 조금 부족한데다 대책없는 초구사랑(...)으로 인해 상대 투수 투구수를 줄여주면서 중요한 상황에서는 삽질한다는 것. (ex. 득점권에서 초구 병살) 시즌 전체로 보면 병살은 예전 시즌과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볼넷도 출장경기 비율을 생각하면 평균적인 커리어 수준. 다만 선구안에서 톱클래스 1번 타자인 이용규, 이종욱에 비해, 그리고 커리어 하이 시절에 비해서 볼넷과 삼진 비율이 조금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시즌 성적은 0.307 60득점 40타점을 기록하여 5년 연속 3할을 달성했지만 장점이었던 도루는 20개를 성공하며 해가 지날수록 줄어들고있다.

KIA 타이거즈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9안타 1볼넷 1사구(死球) 3도루 6득점 타율 .529, 장타율 .529, 출루율 .579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하여 안치용을 1표 차로 제치고 준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였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에도 22타수 7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 타율 .318, 장타율 .364, 출루율 .348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에 들어와서는 매우 부진하여 팀 공격 자체가 난맥에 빠져 한국 시리즈 우승을 삼성에게 넘겨주는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에서 정근우가 기록한 성적은 20타수 5안타 2볼넷 0도루 1득점 타율 .250, 장타율 .300, 출루율 .318. 거기다 삼진도 무려 6개나 당했다. 말 그대로 정근우 답지 않은 최악의 부진. 특히 3차전까지 정근우의 부진은 절정에 달했다. 그나마 4차전부터는 볼넷도 2개 기록하고 안타도 3개 더 추가하였지만, 이미 시리즈 향방은 삼성에게 넘어간 뒤라서 한국시리즈에서의 정근우의 때늦은 활약은 더욱 아쉬움을 더하고 말았다.

결국 2011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59타수 21안타 4볼넷 1사구(死球) 3도루 1타점 8득점 타율 .356, 장타율 .390, 출루율 .406

2.8. 2012 시즌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을 보이며 너무 부진해서인지 항목 갱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9월 기준으로 타율이 .266. 데뷔 시즌 제외하고 최악의 성적. 수비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타격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인해 8월부터는 톱타자의 자리를 김강민에게 내주었다.

8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11회 말 연장접전을 끝내는 벼락같은 만루 기습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켜 경기를 종결시켰다. 이는 31년 프로야구 사상 통산 23번밖에 없던 대기록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스퀴즈 번트는 기록에서 안타 처리되었다.[5]

9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3~4위권을 다투는 중요한 일전때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였다. 그리고 김선우에게 벼락같은 1회 말 선두 타자 초구 홈런을 작렬했다. 재미있게도 정근우는 작년 시즌 1회초 선두 타자 초구 홈런를 날린 적도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 3일 삼성전 차우찬 상대) 정근우는 이날 6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의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12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팀의 승리를 이끌어 플레이오프 MVP가 되었다. 안정된 수비와 함께 18타수 8안타 타율 0.444, 3도루로 맹타를 기록했다.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4타수 4안타 1볼넷으로 100% 출루로 팀의 공격을 주도한 것이 활약의 백미.

한국 시리즈에서도 유감없이 활약했다. 1, 2차전은 다른 타자들은 침묵한 가운데도, 근우 와이번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혼자 치고 뛰고 야구했다. 두 경기에서 7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3득점 1도루로 팀의 4득점 중 3득점이 정근우의 발에서 나왔다. 3차전 역시 침묵하던 SK 타선을 폭발시킨 것은 정근우였다. 이날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 1도루를 기록. 3차전까지 타율이 무려 0.583(12타수 7안타).

하지만 4차전부터 무안타를 기록하는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더니, 잠실에서 벌어진 5, 6차전에서마저 8타수 무안타라는 최악의 부진으로 일관하여 팀 공격 자체가 난맥에 빠져들고 말았다. 결국 팀은 5, 6차전 도합 1득점(9실점)으로 삼성에게 스윕당하고 말았다. 한국 시리즈에서의 정근우의 기록을 잘보면 1~3차전에서의 기록과 4~6차전에서의 기록이 과연 같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극명하게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6]

2012 한국 시리즈에서 정근우가 거둔 기록은 24타수 7안타 타율 0.292 2타점 5득점 2도루였다. 단순한 지표를 보면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한 것 같지만, 앞서 언급하다시피 3할에 육박한 타율과 타점, 득점, 도루 등 모든 공격지표가 1~3차전에만 쏠려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상대팀 톱타자 배영섭이 전체적으로 기복없는 활약으로 0.409의 타율을 기록한 것과 마지막 6차전에서 5타수 3안타로 맹활약을 한 사실을 감안하면, 톱타자 싸움에서 SK가 패한 점이 시리즈 패인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2.9. 2013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자 (2013)
파일:news_1516420724_687961_m_1.jpg

박정권의 뒤를 이어 SK 와이번스의 주장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고사했으나 "정권이를 도와주라"는 이만수 감독의 말에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팬들의 반응은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를 맞는 정근우에게 주장 자리에까지 앉히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과 환영한다는 의견으로 갈린 듯.

정말 부담때문인지, 시즌 초반에는 2할 6푼대의 타격과 어깨 부상으로 FA를 망치는가 싶더니 6월 6일에 부상 복귀한 이후 살아나며 팬들이 바라는 정근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6월 20일 삼성 라이온즈 진짜 홈런을 터뜨린 데 이어, 21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9회 끝내기 결승타를 치며 5-4 역전승을 견인했다. 6월 25일 기준으로 부상 복귀 후 타율 0.301 23타수 7안타 1볼넷 2타점 4득점 4도루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6월 30일 LG 트윈스 전에서는 KBO 역대 66번째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7월 4일 기준 동군 2루수 올스타 1위를 달리는 중. 0.283의 타격으로 타격 전체 24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2루수 중에서는 2위. 1위인 허경민과도 그렇게 차이는 안난다. 7월 11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는 윤성환을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터뜨렸다. 7월 17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는 좌중월 홈런을 터뜨렸다. 7월 27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김사율 상대로 시즌 8호 홈런을 기록한 데 이어, 8월 1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는 노성호 상대로 9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등장한 오재원에게 2루수 타율 1위를 뺐기나 싶었는데 부진하며 결국 2루수 타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8월 31일 기준 0.280로 30위에 위치해 있지만 2루수 중에 1위.

파일:YItaRwJ.gif

9월 1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명백한 헛스윙을 하고도 파울 타구라고 우겼지만 느린 비디오로 누가 봐도 헛스윙 삼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근우는 끝까지 파울이라 주장하였으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그저 착각해서 그런 것이라 넘어갈 수 있었지만[7] 괜히 밴 헤켄에게 도발하는 모습을 보여 넥센팬들에게 까였다. SK팬들조차 정근우를 감싸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창피해하는 동시에 밴 헤켄의 묵묵한 반응을 칭찬했다. 참고로 당시 포수는 허도환. 여담이지만 정근우와 허도환은 후에 한화 이글스에서 동료가 된다. 그리고 은퇴 후 출연한 스톡킹에서도 여전히 밴 헤켄 탓을 하고 있다.

시즌 최종성적은 112경기 407타수 114안타 9홈런 35타점 64득점 28도루 50볼넷(7사구) 48삼진. 타출장 0.280/0.368/0.408으로 한창때의 모습보다는 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안치홍과 서건창이 타격에서 완전히 망했고 허경민은 부상으로 규정타석도 못 채운 덕에 2루수 골든글러브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있다. 수비도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것(34경기 4실책)에 비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2013 시즌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되었지, SK에서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게다가 이적을 한 후에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진행되었기에 공식적으로는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다.



[1] 사진 촬영지는 현재는 없어진 SK 드림파크이다.[2] 2루 백업, 정확히는 내야 전천후 조커로 조동찬강정호가 역할을 맡았다. 막상 강정호는 부진한 최정을 대신해 3루수 주전으로 나와 13타수 8안타 3홈런이라는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했다.[3] 그래봤자 최정에 비해서는 그냥 버로우지만.[4] 이 기록은 역대 2루수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으로 2014년 서건창이 역대 최다 안타인 201안타를 기록하며 넘어선다.[5] 다만 아쉬운 것이 한화 내야수들은 전진 수비를 하고 있었고, 한화도 11회 초에서 스퀴즈 번트를 시도했기 때문에(실패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루 주자 최정이 끝내기임을 직감하고 거의 뛰지 않았기 때문에 한화 입장에서 침착하게 1루->3루 병살을 노려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승민은 무기력하게 공을 포수에게 토스해버렸고, 경기는 끝나버렸다.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의 여실한 기본기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장면으로 꼽을만하다.[6] 주지하다시피 3차전까지 정근우의 타율은 0.583였다. 하지만 4차전부터 6차전까지 의 타율은 0이다.[7] 실제로 이런 상황이 가끔씩 있긴 해서 막상 보면 차이가 심한데도 스쳤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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