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정재근 문서 참고하십시오.
정재근의 수상 내역 및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
2004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1997~2000 월간 MVP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월 | 2월 | ||
1997 시즌 | ||||
강동희 기아 | 정재근 SBS | |||
<rowcolor=#fff> 11월 | 12월 | 1월 | 2월 | |
1997-1998 시즌 | ||||
문경은 삼성 |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 김영만 기아 | 김병철 동양 | |
1998-1999 시즌 | ||||
주희정 삼성 | 허재 나래 | 김영만 기아 | 이상민 현대 | |
1999-2000 시즌 | ||||
주희정 삼성 | 허재 나래 | 김영만 기아 | 이상민 현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역대 식스맨상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997 시즌 | 1997-98 시즌 | 1998-99 시즌 | 1999-2000 시즌 | 2000-01 시즌 |
김유택 기아 / 센터 | 김용식 나산 / 가드 | 신종석 나래 / 포워드 | 황문용 기아 / 포워드 | 강혁 삼성 / 가드 | |
<rowcolor=#fff> 2001-02 시즌 |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 |
정재근 KCC / 포워드 | 박규현 LG / 가드 | 표명일 KCC / 가드 | 이병석 모비스 / 포워드 | 이창수 모비스 / 센터 | |
<rowcolor=#fff> 2006-07 시즌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 |
우지원 모비스 / 포워드 | 김일두 KT&G / 포워드 | 함지훈 모비스 / 포워드 | 박종천 모비스 / 포워드 | 이현호 전자랜드 / 포워드 | |
<rowcolor=#fff> 2011-12 시즌 | 2012-13 시즌[a] |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 |
이정현 KGC / 가드 | 변기훈 SK / 가드 | 주희정 SK / 가드 | 유병훈 LG / 가드 | 신명호 KCC / 가드 | |
<rowcolor=#fff>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 |
정병국 전자랜드 / 가드 | 김주성 DB / 포워드 | 김낙현 전자랜드 / 가드 | 최성원 SK / 가드 | 장재석 현대모비스 / 센터 | |
<rowcolor=#fff> 2021-22 시즌 | 2022-23 시즌 | 2023-24 시즌 | 2024-25 시즌 | 2025-26 시즌 | |
전현우 한국가스공사 / 포워드 | 박지훈 KGC / 가드 | 박인웅 DB / 가드 | |||
<rowcolor=#fff> 2026-27 시즌 | 2027-28 시즌 | 2028-29 시즌 | 2029-30 시즌 | 2030-31 시즌 | |
[a] 2012-13 시즌부터 기존의 '우수후보 선수상' 대신 '식스맨상'으로 시상.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1997~2000 베스트 5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가드 | 가드 | 포워드 | 포워드 | 센터 |
1997 시즌 | |||||
강동희 기아 | 제럴드 워커 SBS | 정재근 SBS | 전희철 동양 |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 |
1997-1998 시즌 | |||||
이상민 현대 | 강동희 기아 | 문경은 삼성 | 조니 맥도웰 현대 | 키넌 조던 동양 | |
1998-1999 시즌 | |||||
이상민 현대 | 강동희 기아 | 김영만 기아 | 조니 맥도웰 현대 | 서장훈 SK | |
1999-2000 시즌 | |||||
강동희 기아 | 조성원 현대 | 허재 삼보 | 조니 맥도웰 현대 | 서장훈 SK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역대 자유투 1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997 시즌 | 1997-98 시즌 | 1998-99 시즌 | 1999-2000 시즌 | 2000-01 시즌 |
정재근 SBS / 87.1% | 김상식 나산 / 90.5% | 김영만 기아 / 87.1% | 추승균 현대 / 91.1% | 조성원 LG / 85.4% | |
<rowcolor=#fff> 2001-02 시즌 |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 |
추승균 KCC / 87% | 문경은 빅스 / 89.1% | 추승균 KCC / 89.5% | 우지원, 추승균 모비스, KCC / 90% | 추승균 KCC / 87.3% | |
<rowcolor=#fff> 2006-07 시즌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 |
김승현 오리온스 / 88.4% | 추승균 KCC / 90.2% | 문경은 SK / 94.6% | 마퀸 챈들러 동부 / 89% | 조성민 kt / 91.2% | |
<rowcolor=#fff> 2011-12 시즌 | 2012-13 시즌 |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 |
조성민 kt / 92.3% | 조성민 kt / 91.9% | 조성민 kt / 89.9% | 이재도 kt / 89.5% | 허웅 동부 / 88.5% | |
<rowcolor=#fff>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 |
정영삼 전자랜드 / 85.8% | 레이션 테리 현대모비스 / 84.3% | 이관희 삼성 / 82% | 김시래 LG / 89.1% | 닉 미네라스 SK / 83.4% | |
<rowcolor=#fff> 2021-22 시즌 | 2022-23 시즌 | 2023-24 시즌 | 2024-25 시즌 | 2025-26 시즌 | |
이관희 LG / 85.9% | 이대성 한국가스공사 / 86.8% | 최성원 정관장 / 89.1% | |||
<rowcolor=#fff> 2026-27 시즌 | 2027-28 시즌 | 2028-29 시즌 | 2029-30 시즌 | 2030-31 시즌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f236a> | 부산 KCC 이지스 주장 (현대-전주 시절 포함) |
{{{#!wiki style="color:#000000;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121230; margin:-6px -1px -11px" {{{#000000,#e5e5e5 | <rowcolor=#fff000> 1978~1989 | 1989~1996 | 1997~2000 | 2000~2001 | 2001~2004 |
유도훈 | 정재근 | ||||
2004~2005 | <rowcolor=#fff000> 2005~2007 | 2007~2010 | 2010~2012 | 2012~2013 | |
조성원 | 이상민 | 추승균 | 추승균 | 임재현 | |
<rowcolor=#fff000> 2013~2018 | 2018~2019 | 2019~2022 | 2022~ | ||
신명호 | 하승진 | 이정현 | 정창영 |
{{{#ffa700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 등번호 14번}}} | ||||
창단 | → | 정재근 (1997~2000) | → | 신동한 (2001~2003) |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14번 | ||||
구본근 (1998~2000) | → | 정재근 (2000~2005) | → | 김영재 (2006~2007) |
대한민국의 농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정재근 鄭再根 | ||
출생 | 1969년 7월 23일 ([age(1969-07-23)]세) | |
경상남도 고성군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종교 | 불교 | |
신체 | 신장 192cm|체중 87kg[1] | |
포지션 | 농구 선수 (스몰 포워드[2] / 은퇴) | |
학력 | 회화초등학교 (졸업) 회화중학교 (졸업) 마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학사) | |
실업 입단 | 1992년 서울방송 농구단 입단 | |
현역 시절 등번호 | 14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서울방송 농구단 (1992~1997) 안양 SBS 스타즈 (1997~2000) 대전 현대-전주 KCC (2000~2005) |
감독 | 연세대학교 (2011~2014) | |
코치 | 전주 KCC 이지스 (2005~2007) 연세대학교 (2007~2011) | |
가족 관계 | 아내, 장남 정호준[3], 차남 정호영[4] |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출신 지도자. 현역 시절에는 최고의 포워드로 명성을 날렸다. 별명은 저승사자.2. 고교-대학 시절
중학교 때는 배구와 높이뛰기 선수였으나 마산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농구를 시작했다. 상당히 늦게 출발했지만 성장 속도가 빨라 각 대학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막 감독직을 맡았던 최희암 당시 연세대학교 감독이 엄청 공을 들여 스카우트한 선수라고 한다. 연세대학교에서 대학 최고의 센터 겸 파워 포워드로 활약하며 동기 이상범, 후배 오성식, 문경은, 김재훈, 이상민 등과 함께 연세대학교 전성기의 막을 열었다.기존까지는 대학부에서도 중앙대에 밀려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지던 연세대가 정재근의 입학 이후 월등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4학년이던 1991-92 농구대잔치에서는 연세대 농구부 사상 최고 성적인 4위까지 올랐다. 무엇보다 정재근의 연세대 시절이 유명했던 이유는, 정재근 재학시절 정기 연고전 4년 연속 승리를 비롯하여 공식대회에서 고려대에는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5] 졸업 당시 현대전자행이 거의 확정적이었으나 새로 창단한 서울방송 농구단의 지원 차원에서 서울방송의 창단 멤버로 실업 무대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3. 실업-프로 시절
실업 무대에서도 뛰어난 포워드로 인정받았다. 연세대, 중앙대 출신 졸업생들로 구성된 신생팀 서울방송의 확실한 에이스로서 데뷔 첫해부터 팀을 단숨에 돌풍의 중심으로 이끌었고, 1992 코리안리그 실업대회 2차리그에서는 신생팀임에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열린 1992-93 농구대잔치에선 서울방송을 최종순위 6위로 이끌었고, 정재근 본인은 농구대잔치 실업부 신인상을 차지했다. 이듬해 서울방송 돌풍의 주역이었던 표필상, 이상범, 남경원을 비롯하여 이창수, 오성식 등과 함께 상무에 입대, 사상최강의 상무팀을 구성하게 된다. 정재근과 오성식이 맹활약한 상무는 1993-94 농구대잔치 결승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키지만, 당시 엄청난 인기와 실력을 자랑하며 태풍을 일으킨 모교 연세대학교에게 1승 3패로 지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제대 후 서울방송으로 돌아와 정상급 포워드로 군림했다. 하지만 오성식-정재근-표필상이 이끄는 서울방송은 매번 우승 문턱에서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고려대에 깨지면서 좌절했고, 정재근 복귀 후 서울방송의 최고 성적은 1994-95 농구대잔치에서의 4위가 한계였다.[6]
농구대잔치 당시 정재근은 전희철, 현주엽, 문경은 등과 함께 높은 체공력을 자랑하는 덩커 중 한 명으로 유명했는데, '철봉덩크', '작대기덩크'로 불리는 어설픈 덩크만 해도 오빠부대들이 자지러지던 시절, 차원이 다른 탄력을 바탕으로 높게 나는 듯한 덩크를 수차례 보여주었고, 1993-94 농구대잔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연세대 서장훈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작렬하기도 했다. 거기에 1994-95 농구대잔치 올스타전에선 당시엔 정말 보기 힘들었던 원맨 앨리웁을 성공시키기도.
프로 출범 후에도 활약은 이어졌는데, 프로 원년인 1997 시즌에 주전 파워 포워드로 뛰며 평균 21.1점을 넣으면서 그 해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들의 활용이 본격적으로 늘면서 약간 활약이 줄었지만,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 모두 각각 평균 15점 이상을 넣으며 팀 토종 에이스의 위치는 굳건했다. 하지만, 1999-2000 시즌에 부상과 슬럼프에 빠지며 평균 두 자리 수 득점에 실패했고, 그의 빈 자리는 김성철과 윤영필이 이미 탄탄하게 메워놓은 상태였다. 결국 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팀의 사정과 재기를 위해 다른 팀에서 기회를 얻고 싶던 정재근의 사정이 맞물려 김재훈과 1:1 트레이드 형식으로 대전 현대 걸리버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마침 이 당시 대전 현대는 신선우 감독의 지휘 아래 포워드들이 주축이 되어 모두 달리고 1:1을 구사하는 이른바 토털 바스켓볼을 구사하던 시점이었고, 괜찮은 포워드인 정재근의 합류로 포워드 층은 더 두터워졌다. 스몰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정재근은 팀의 믿음 아래 2000-01 시즌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며 부활했고, 2001-02 시즌 전주 KCC[10]에서는 식스맨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식스맨상을 수상했다. 2002-03 시즌에는 새로 합류한 전희철이 전주 KCC의 시스템 농구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면서 주전급 플레잉 타임을 얻기도 했고, 전희철이 방출되고 조성원이 다시 돌아온 2003-04 시즌에는 다시 식스맨으로 돌아가 이-조-추 트리오 및 최강 외인 찰스 민렌드를 보좌하며 전주 KCC의 전신인 대전 현대 시절을 포함해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한다. 2004-05 시즌 준우승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쳤다.
4. 국가대표 경력
연세대 3학년 시절이던 1990년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때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까지 9년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국대 데뷔 초반에는 뛰어난 탄력을 바탕으로 주로 골밑자원으로 뛰며 레전드 센터 김유택의 파트너 자리를 채웠고,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 탄력좋은 후배들이 대거 등장한 이후엔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포워드로서 뛰었다. 다만 90년대 한국농구의 전술이 주로 서장훈을 골밑에 박고그래도 국가대표 정재근도 찬란히 빛났던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1997 리야드 아시아선수권 대회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의 7전 전패 굴욕을 갚고자 절치부심한 농구협회는 서장훈을 합류시키면서
5. 지도자 경력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해 2시즌 동안 전주 KCC 이지스의 코치 생활을 했고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옮겨 코치를 거쳐 2011년 11월 15일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감독으로 재임 중인 2014년, 제1회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에서 고려대학교와의 결승전을 치르던 도중, 15점차로 밀리다가 40:35로 따라잡았고, 기어이 3쿼터에 고려대를 겨우 9점으로 봉쇄한 덕에 잠시 16점차로 역관광하여 앞서고 있다가 4쿼터에 13점차를 따라잡히고 동점을 허용하자 작전 타임 와중에 연세대학교 선수들에게 쌍욕을 퍼붓는 장면이 KBS의 중계를 타고 고스란히 생방송되었다. 연장전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연장전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가격하려하다가 밀치고 박치기하는 병크를 터뜨렸다.[16][17] 결국 테크니컬 파울로 퇴장을 선언받았으나 코트에서 한동안 나가지 않고 또다시 쌍욕을 퍼부었다(...). 그 바람에 고려대학교가 테크니컬 파울로 인해 자유투 4득점을 했으며, 결국 대회는 라이벌 고려대학교가 87-80으로 우승하면서 종료. 참고기사 다른 참고기사(동영상포함) 그 뒤 모교의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하였으며, 연세대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농구협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5년 자격정지 처분의 징계를 받아 은희석에게 감독직을 넘기게 됐다.[18] 공교롭게도 은희석 감독이 부임한 이후 연세대는 승승장구하며, 대학리그 5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실력은 정말 빼어났고, 사생활도 깔끔했지만, 코트 안에서의 큼지막한 폭력 사건을 많이 일으킨 점이 아쉬운 농구인이다. 폭력이나 음주운전도 넘어가던 시절이라 아쉽다라는 얘기로 넘어가는 거지 요즘 같았으면 매장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들을 많이 저질렀다.
6. 흑역사
흑역사가 상당히 많은 선수다. 저승사자라는 별명답게 코트에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준 선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 탓인지 사고도 은근히 많이 쳤다. 대학 시절에는 중앙대학교와의 시합 도중에 상대 선수 장일[19]을 가격했다가 중징계를 먹은 적이 있고,6.1. 박성훈 가격 사건
2003년 1월 9일, 전주 KCC 대 서울 삼성과의 현대-삼성가 라이벌전에서 당시 2년차였던 박성훈(195cm, 경희대 졸)은 신인급 선수답게 패기가 넘치다못해 터져 나올 지경(?)이었는데, 경희대 시절엔 어중간한 신장의 센터자원이었으나 KBL 데뷔 후엔 동급 대비 월등한 스피드로 장신수비수로서 많은 기회를 받으면서 매 경기마다 매치업 상대를 거칠게 수비하고 있었다. 이 날 경기에서도 한참 선배인 정재근, 전희철, 추승균 등을 상대로 쫄지않고 엄청 후려쳐(?)댔고, 경기 중 전희철의 공을 스틸하면서 코피를 터뜨리기도 했다. 게임도 서울 삼성쪽으로 원사이드로 흘러가던 후반 중반, 공을 가지고 있던 박성훈은 매치업이던 정재근을 도발했고 공을 가드에 넘긴 후 스크린을 걸어주러 갔는데, 정재근은 박성훈의 스크린에 걸리는 척하면서 양 팔꿈치를 힘껏
이후 뉴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턱을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박성훈의 윗앞니가 아랫턱에 박히는(...) 하마터면 사람을 정말로 저승 보낼 뻔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 이후가 더 어이없는 게, 같은 팀 선수가 이 정도로 맞았음에도 서울 삼성 선수들이 정재근에게 달려들기는커녕 정재근을 말리고 있었고, 서울 삼성에서 뛰던 박성훈의 친형 박성배도 짬이 안 되는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후 뉴스나 언론보도 모두 "정재근이 얼마나 착한 선수인데, 그랬겠느냐~"라는 식이었고,
6.2. 뭉쳐야 쏜다 - 전설들의 농구대잔치 출연
2021년 7월 4일, JTBC 뭉쳐야 쏜다 - 전설들의 농구대잔치 어게인 농구대잔치편에 연세대학교 팀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과거 박성훈 폭행과 심판 박치기로 물의를 빚은 레전드를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한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불거졌다. 이 때문에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강동희와 달리 통편집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론이 여론이었는지라 분량이 거의 편집되었다. 토크는 완전히 편집되었고, 출전선수를 소개하는 카드 CG는 그대로 나오고 경기 기내에서 얼굴을 비췄던 게 전부였다.7. 관련 문서
[1] 1995년 기준참고[2] 과거 센터와 파워 포워드를 맡은 적이 있었다.[3] 럭비 선수 출신이다.[4] 포지션은 슈팅 가드.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고려대에서 활약했다. 이후 2021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원주 DB 프로미에 지명되어 프로선수가 되었다.[5] 그러나 1988~1991년 당시 고려대는 중앙대, 연세대에 알짜선수를 다 뺏긴 동네북 수준이었다. 정인교, 김상식 정도가 에이스였고 골밑의 높이는 대학부에서도 하위권이었다.[6] 제대 첫해인 94-95 농대 4위(4강에서 삼성전자에 패배), 95-96 농대 5위(8강에서 기아자동차에 패배), 96-97 농대 공동 5위(6강전에서 현주엽의 고려대에 패배)[7] 국보센터 서장훈이 있었다.[8] 이는 초창기 193cm 미만 1명, 205cm 미만 1명이던 외국인 선수 영입 규제가 2명의 신장 합계 398.78cm 미만으로 완화되면서 195 가량의 외인 2명을 뽑는 실리주의(?)로 트렌드가 바뀐 것이 컸다.[9] 붙박이 국대 4번 멤버들이었던 에어본 전희철, 저승사자 정재근, 매직히포 현주엽 모두 이 시점부터 3번으로 전환했다. 지금 트랜드로 봐도 4번으로 경쟁력 없는 하드웨어이긴 했다.[10] 구단이 KCC로 넘어가고 연고지가 옮겨지면서 팀명이 전주 KCC 이지스가 되었다.[11] 마찬가지로 국내 대회에서는 문경은보다 무서운 공수겸장 스몰포워드였던 김영만은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어차피 193cm의 신장으로 중국의 2m대 스윙맨들을 막을수 없기는 매한가지라..[12] 주동자(;;) 허재는 6개월 자격정지, 막내로 참가했다는 이상민, 현주엽은 각각 근신 3개월씩 받았다. 시대상황이 살린 케이스. 그 후에 2007년 아시안컵 축구 음주파동과 2021년 프로야구 NC 음주파동은 지금도 까이는 것에 비하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2007년은 여자 종업원을 끼고 놀았다는 것(...)이다. 이운재와 우성용은 2007년 눈물의 사죄를 했고 자격정지까지 당했다. 2021년은 방역수칙 위반.[13]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은 비록 전패했지만 한국이 마지막으로 출전한 올림픽이다. 즉 상당히 좋은 로스터였고 국내농구인기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였다.[14]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음주파동의 주동자(!!) 허재는 징계기간 동안 무려 무면허 음주운전을 저질러 대한농구협회로부터 선수 자격정지 및 국가대표자격 영구박탈의 중징계를 받았다. 정말 여러 의미로 대~~~~ 단하다.[15]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혼혈 포워드 마이클 다카하시(198cm)와 NBA 진출을 시도했었던 아키후미 야마자키(216cm)가 지키는 골밑의 높이가 월등했다.[16] 참고로 이 판정은 정심이었다. 연세대의 모 선수가 파울이 아니라면 놓칠 수 없는 이지샷을 놓치는 바람에 파울로 오해했던 측면도 있다. 이 선수는 몇 달 뒤 결승전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논개 or 감독킬러[17] 정재근에게 박치기를 당한 황인태 심판은 이후 아시아 최초로 NBA의 초청을 받아 2020년 1월부터 Referee Development Program에 참여하게 된다.# 참고로 해당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NBA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18] 은희석 감독 취임 이전에는 진상원 코치가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19] 중앙대-기업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포워드로 키는 188cm이다. 중앙대의 대승으로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장일이 드리블 잔재주를 부리자 그대로 날렸다.[20] 이 때는 사실 윌리포드가 먼저 밀쳤지만, 정재근의 수비도 거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