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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22 02:10:07

제말

조선 증 병조판서[1]
충의공(忠毅公)
제말
諸沫
파일:제말장군.jpg
칠원제씨대종회에서 그린 복원도.
<colbgcolor=#c00d45><colcolor=#fff> 출생 1552년
경상도 고성현
(現 경상남도 고성군)
사망 1593년 (향년 41세)
경상도 성주목
(現 경상북도 성주군)
본관 칠원 제씨
자 성여(成汝)
시호 충의공(忠毅公)
6대조 제문유
부모 부친 - 제조겸(諸祖謙)
모친 - 공주 황씨(公州 黃氏) 황선(黃璇)의 딸
형제자매 5남 2녀 중 5남
부인 수원 황씨(水原 黃氏) - 황의(黃義)의 딸
자녀 3남 1녀
주요 참전 임진왜란
-웅천·김해·의령 전투
-정암진 전투
-성주성 전투
파일:제말장군묘지.jpg
제말 장군의 묘지

1. 개요2. 생애3. 여담4. 가족 관계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장.

2. 생애

경상도 고성 사람으로 전란 전 수문장을 지냈다고 전해지는데, 기록이 워낙 적어 출신이 불분명하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제홍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해, 보령, 의령 등지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그러한 공이 조정에도 알려져 1593년 성주목사에 임명되어 일본군에게 점령된 성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성주성 전투에서 분전하였지만 결국 일본군 칼에 맞고도 버티고 전진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제말이 전사하고 나서 조카 제홍록이 대신 지휘를 하여 성주의 의병들은 일본군을 쫒아내고 성주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고 일본군의 낙동강 보급로를 차단했다.

전란에서 상당한 공을 세운 인물이었음에도 사후 사람들에게 잊혀져 존재감이 사라졌는데 전란 후 200년이 지난 정조대에 복권되며 조카 제홍록과 함께 공로를 인정받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또한 이때 그를 기리기 위해 성주성과 진주성에 세워진 쌍충사적비가 현재도 남아 있다.

3. 여담

4. 가족 관계



[1] 파일:제말족보1.jpg 파일:제말족보2.jpg[생부] 제홍정.[양자] 제홍록의 양자.[4] 충의공봉사손장령공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