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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한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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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혜은이의 1979년 노래
1.1. 가사
1.1.1. 원곡1.1.2. 클린 버전
1.2. 기타
2. 1979년 영화
2.1. 개요2.2. 등장 인물2.3. 이외에

1. 혜은이의 1979년 노래

혜은이(본명 김승주)가 1979년 발표한 노래. 길옥윤이 작사, 작곡했다.

[1]

1.1. 가사

1.1.1. 원곡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채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그런데 위 굵은 글씨 부분 때문에, 발매한 지 6개월만에 당국에 의해 태클이 걸리고 만다. 저속하고 청년들의 방황을 조장한다는 이유. 그래서 하마터면 금지곡이 될 뻔해서, 다음과 같이 건전한 가사로 바꾸게 되었고 이 가사가 1990년대 초반까진 그대로 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1987년 가요 해금 당시까지인데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방송국에선 개사된 가사로 그대로 썼다.

1.1.2. 클린 버전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현재는 개사된 버전 외에도 기존 오리지널 버전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원곡자인 혜은이가 외압에 의해 억지로 개사된 사실 자체를 마음에 안 들어해서라고 한다. 특히 혜은이의 단독 공연인 경우는 반드시 원곡 가사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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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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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79년 영화

제3 한강교 (1979)
The Third Han-gang Bridge
파일:c0a389bf0c92e5aaabfafe863e40f3ca7f49fd52.jpg
<colbgcolor=#dda0dd><colcolor=#212529> 감독 김정현
각본 윤삼육
원작 최인호
제작 서종호
제작사 남아진흥
기획 김승
촬영 정필시
조명 손한수
편집 이경자
음악 길옥윤
출연 이계인, 원미경, 남궁원, 혜은이, 이승현
개봉일 1979.11.08
상영 등급 중학생가
관람인원 47,364명

2.1. 개요

파일:11110210A84276CF89.jpg
이계인, 원미경 주연의 영화. 이외에도 당대 최고 유명 아역배우였던 이승현[3], 원로배우인 남궁원(본명 홍경일), 유명가수인 혜은이가 출연하였다.

동명의 가요가 인기를 끌자 만든 영화. 흥행은 중박 정도. 당시에는 이렇게 가요가 인기를 끌면 해당 가수를 출연 시켜서 가요 제목을 가진 영화를 제작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당대의 인기 가수였던 남진 , 나훈아도 자신의 히트곡과 같은 제목의 영화에 출연했다. 최후기에 이상은담다디가 히트하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던 것을 즈음하여 이후로 이런 경향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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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등장 인물

파일:DSKT068281_01.jpg
유진(이계인)
지방에서 서울로 가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미숙에게 사랑에 빠지는 남주. 그러다가 미숙을 만나 미숙을 사랑하게 되지만 미숙을 위해 집을 사려다가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게 되어 징역을 살고 나올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이후 미숙을 구출하려고 감방에서 만난 조폭들이 시키는 사업을 하다가 이들의 오해를 사게 되어 조폭들에게 피떡이 되도록 맞게 된다.
파일:DSKT068280_01.jpg
미숙(원미경)
유진과 마찬가지로 시골에서 서울로 가서 식모살이를 하는 여주. 유진이 감방에 들어가자 유진을 가석방시키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2.3. 이외에

이계인은 영화 촬영 중 원미경에게 따귀를 때렸다고 한다. 당시 원미경은 신인이다 보니 그런 일을 겪은 것 같다. 영화가 마칠 때 혜은이가 부른 제3 한강교가 흘러나온다.


[1] 해당 영상은 1982년에 제작된 <고향의 노래>라는 관제 영상이다. 1982년 당시의 한강 교량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중간 간주 부분에서는 한강을 따라가는 현 수도권 전철 중앙선 용산-청량리 구간에 디젤동차가 달리는 장면이 촬영된 귀중한 영상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금지곡이 될 뻔한 원래 가사로 제작되었다. 거기다 개사된 이유가 저속하고 청년들의 방황을 조장한다는 점 때문이었으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이라는 내레이션까지 나온다.[2] 감독이 추천한 3장면 중 하나이다.[3] 이덕화도 유명했지만 이승현의 얄개 시리즈는 이덕화의 진짜진짜 시리즈보다 압도적으로 더 큰 흥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