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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8:57

조이 바튼

조이 바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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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바튼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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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바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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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 감독
파일:jmp_bristol_rovers.jpg
<colbgcolor=#eeeeee>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조이 바튼
Joey Barton
본명 조지프 앤서니 바튼
Joseph Anthony Barton
출생 1982년 9월 2일 ([age(1982-09-02)]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리버풀 노즐리 하이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7)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7~2011)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1~2015)
올랭피크 마르세유 (2012~2013 / 임대)
번리 FC (2015~2016)
레인저스 FC (2016)
번리 FC (2017)
감독 플릿우드 타운 FC (2018~2021)
브리스톨 로버스 FC (2021~2023)
국가대표 1경기 (잉글랜드 / 2007)


1. 개요2. 어린 시절3. 선수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감독 경력7.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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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 출신의 감독.

막장 선수들이 즐비한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막장으로 악명 높은, 최고의 실력과 함께 막장 기질까지 가지고 태어난 선수.

왕성한 활동량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투지 등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는 잉글랜드 내에서도 손꼽히는 선수이지만, 그놈의 다혈질 성미를 제어하지 못하여 빛을 보지 못한 선수.

사실 경기장 밖에서의 생활만을 보면 오히려 잉글랜드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수가 아닌가 하는 오해마저 들 지경이다. 출신 배경 때문인지 축구선수 중에서는 엄청나게 검소한 축에 속하고, 훈련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며, 가장 놀라운 것은 미혼 시절에도 여자는 멀리했고[1] 결혼 후에도 스캔들 한 번 없었으며, 몇 번 사고를 친 이후로는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문화적인 소양도 굉장히 뛰어나며, 독서광이어서 박학다식하며 적극적인 육아 참여로 최고의 남편, 아빠이며 문맹 퇴치와 알콜 중독 치료를 위한 사회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인종차별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 놈의 성질머리가 문제다.(...) 아래 기술된 어린 시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법 험하게 자라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주먹부터 시전한다. 설령 그것이 거리이든 경기장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위에선 모범적이라며? 2010-11 시즌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 중 모르텐 감스트 페데르센이 지나다가 어깨를 툭 부딪치며 농담조로 살짝 놀렸을 뿐인데 그대로 복부에 정권이 작렬한 사건이 가장 좋은 예다.[사진] 2014-15 시즌에도 헐 시티와의 경기 중 톰 허들스톤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곧바로 퇴장당했을 지경. 이러한 투쟁심이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있고 때때로 필요하기도 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바튼은 선을 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2. 어린 시절

1982년, 영국 리버풀의 하이턴(Huyton)에서 태어난 바튼은 상당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고향인 하이턴의 낙후된 환경이었다.

공업 도시 리버풀의 외곽에 위치한 하이턴은 영국에서 세 번째로 가난한 지역으로, 도시 곳곳에 마약과 범죄가 만연하고 젊은 청년들 중 4분의 1이 실업자라고 한다. 하이턴이 속한 머지사이드의 자치구 노즐리가 영국에서 가장 생활 환경이 좋지 않은 열 곳 중 한 곳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는 것만 보아도 상당한 막장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듯이, 바튼이 어렸을 때 그의 삼촌 중 한 명은 동네 도박장에서 피투성이로 발견되었으며 2년 뒤에 또 다른 삼촌이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 이에 대해서 바튼 자신도 하이턴을 너무 위험하고 거친 지역으로 묘사하며,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 공격성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곳이라 회고했다.

어린 시절의 바튼은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축구에만 집중했으며, 덕분에 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떤 사고나 사건에 휘말릴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축구장에 가 있을 것이 뻔했으니까.

바튼은 그곳에서 자라나며 몸에 밴 강인함이 없었다면 축구계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처럼 하이턴에서 자라난 선수를 거론하는데, 피터 리드(코벤트리), 토니 히버트(에버튼), 스티븐 제라드(리버풀)등, 하나같이 거친 플레이를 펼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공을 거둔 선수들이라 할 수 있겠다.

바튼은 14살 때까지 하이턴에서 살다가, 부모님이 이혼을 하며 하이턴에서 1.6km 정도 떨어진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범죄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후 그는 할머니의 엄격한 교육 아래 바르게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말이 허언만은 아닌 것이, 조이 바튼의 이복 동생인 마이클 바튼은 2005년 한 흑인 청년을 얼음 송곳으로 찍어죽여 인종차별에 의한 살인죄[3]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또한 2008년에는 그의 사촌 2명이 역시 하이턴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조이 바튼도 축구와 할머니가 없었다면 그러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4]

3. 선수 경력

3.1. 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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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때 에버튼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떨어지고 말았고, 이후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한 전 에버튼 FC 스카우트에게서 전화를 받아 맨체스터 시티 FC에 입단하게 된다. 2002년 20살이 되던 해에 1군 무대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되며, 이후 크고 작은 여러 문제(주로 폭행 사건)를 일으키긴 했지만 2007년까지 괜찮은 활약을 한다.

3.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파일:86357069_original.jpg

그리고 2007년, 9년 이상 머물렀던 맨체스터 시티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며 뉴캐슬로 이적한다. 이적료는 £5.8m.

뉴캐슬로 간 뒤에도 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필드에서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가끔씩 필드 안에서 거친 행동으로 출장 정지를 당하거나, 필드 밖에서 축구와는 전혀 상관 없는 문제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등, 그 꼴을 지켜봐야 하는 뉴캐슬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애증의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강등당한 08-09 시즌은 프리시즌을 감옥에서 시작(...)해서 폼도 완전하지 않았고, 시즌 중반 또다른 폭력배인 리 캐터몰에게 중족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으며, 3달만에 돌아와 복귀전에서 사비 알론소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퇴장당했고, 이를 비판한 앨런 시어러 감독에게 대드는 등 팀의 나락행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시어러 감독에게 욕설을 내뱉은 바튼은 뉴캐슬이 강등당할 때 방출 통보를 받았고 실제로 이적 제의를 한 팀들도 있었지만 이적하지 않고 남았는데, 자신이 완전 폐품으로 몰릴 때 데려온 뉴캐슬에 빚을 진 거 같아서 그랬다고. 시어러에게는 골프장에서 만나 정중히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잔류하고 맞이한 09-10 시즌은 부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에 가깝게 보냈고, 어쨌든 팀이 승격하여 팀과 함께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맞이한 10-11 시즌 바튼은 2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그림같은 중거리 슛으로 팀의 시즌 첫 골을 쏘아올리며 팀의 6-0 대승을 이끌었고, 앤디 캐롤케빈 놀란과 함께 팀의 핵심 선수가 되어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바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아스날과의 그 유명한 4-4 명승부에서였는데, 적절한 신경전으로 아부 디아비를 퇴장시킨 후 페널티 킥 2개를 모두 득점으로 연결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게임을 지배하며 팀의 4점차 극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0-11 시즌이 끝난 후 구단이 선수단을 재편하며 캐롤[5]과 놀란 등 팀의 주전 선수들을 이적시키자 그에 따른 불만 등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6][7] 이후 뉴캐슬은 8월 2일 구단의 홈페이지에 바튼을 이적선수 목록에 올리면서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나도 된다고 통보했다. 조이 바튼 스스로는 뉴캐슬을 떠날 생각이 별로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구단주의 입장은 상당히 단호했다.[8] 당시 팀이 새로 영입된 패서 요앙 카바예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서 카바예 중심의 팀 재편을 위해 말썽 많은 바튼을 쳐내려는 행동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바튼과 다른 포지션으로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 주던 차였다. 또한 전임 크리스 휴튼 감독의 경질에 공공연히 안타까움을 표했던 바튼과 놀란 등을 앨런 파듀 신임 감독이 껄끄러워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멘탈이 개선되고 성적도 제2의 전성기 이야기가 나오던 상황이어서 조이 바튼의 인기는 폭발했다. 이적도 아닌 자유계약이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아스날 FC, 토트넘 홋스퍼 FC, 볼턴 원더러스 FC, 스토크 시티 FC, 아스톤 빌라 FC 등 상당수의 구단들이 순식간에 들러붙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적은 진척되지 않았고, 바튼은 아스날과의 개막전과 그 다음 라운드인 선더랜드 원정까지 동참하여 적절한 활약으로 팀의 우세에 공헌했다.[9] 대부분의 팬들은 적어도 계약이 끝나는 이번 시즌까지는 바튼이 뉴캐슬에 남을 것이라 예상하였고, 앨런 파듀 뉴캐슬 감독 역시 바튼을 중용하며 이 트위터 자유 계약 소동은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3.3. QPR

이적 시장이 막바지로 흘러가는 8월 24일 경에, 프리미어 리그 잔류를 위해 전력 강화를 노리는 QPR이 바튼의 에이전트와 접촉. 결국 2011년 8월 26일, 자유계약 신분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 주급 8만 파운드에 4년짜리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2012년 5월 13일 마지막 38R 맨체스터 시티 FC[10]와의 경기 후반전에 카를로스 테베스의 헐리우드 액션에 팔꿈치로 쳤다는 누명으로 퇴장을 당했다. 바튼은 경합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지만 심판은 가차없이 레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르히오 아궤로를 무릎으로 찍어버리고 따지러 온 뱅상 콩파니에게 박치기를 시전하였다. 겨우 화를 풀고 퇴장하던 중 기다리고 있던 멘탈킹(…)과 말싸움이 붙어 몸싸움을 벌이려다가 양팀 스태프들이 황급히 막는 바람에 본격적인 배틀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기의 대결이 날아갔다

참교육은 시전했으나 무거운 징계는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12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11]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도 그의 거취에 대해 고민 중. 참고로 팀은 숫적 열세로 인해 고전하다가 93분 20초에 역전골까지 먹히면서 2:3으로 패배하여 맨시티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였다.[12]

시즌 직후 고향인 리버풀의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21세의 두 청년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 기사가 의도적으로 와전되어 바튼을 폭행한 두 청년이 게이커플이며, 바튼이 게이를 욕했다가 청년막을 따일 뻔했다는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다. 사람 게이 만드는 거 순식간이다. 정작 조이 바튼 본인은 "게이 축구 선수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13] 트위터에 '무지개 끈' 축구화를 올리는 등[14] 호모포비아를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게이에 대한 인권 운동으로 한 영국 성적소수자 잡지에서 선정하는 인권상 후보에 올랐다.

3.3.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임대)

12-13 시즌,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임대되었다.(...)

QPR에 간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마르세유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고, 예전에 비해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을 보면 꾸준한 입 배틀과 이빨은 여전하지만 프랑스 생활이 영국에서 벌인 막장생활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이래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합니다

날이 갈수록 QPR에 대한 독설이 장난이 아니었으나, 생불은 그가 다시 복귀하여 2부 리그에서 뛰기를 바라고 있다. 본인은 이미 적응이 된 마르세유를 나가길 싫어하지만 팀에서는 복귀를 바라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바튼의 입장은 단호했다. QPR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며 주급을 삭감해서라도 마르세유에 정식으로 남겠다고 한다.

마르세유에서 호의적인 팬들도 늘어났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서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보여 팀에 정이 든 것으로 보인다. 그 분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시절 즐라탄한테 코가 크다고 도발했다가 즐라탄이 넌 검열삭제가 작지 않냐는 대답을 받기도 하는 등 독설은 죽지 않았지만.

3.3.2. 다시 QPR

QPR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못을 몇 번이나 박은 바튼이었지만 결국에는 복귀했으며, 바튼의 복귀 후 챔피언쉽에서 연승을 하고 있는 QPR의 승격을 제대로 도왔다. 평소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면과 반대로 자신에게 주장으로서 팀을 일으키라는 직무가 떨어지게 되면 불응하지 않고 의무감에 충실한 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결국 1시즌 만에 승격에 성공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QPR의 승격이 확정된 이후 14-15 시즌 목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일단은 17위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하긴 12-13 시즌의 악몽을 생각해 보면…

1월 이후 일곱 번 연속으로 경고를 받았다.(...) 과격한 플레이로 카드캡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헐 시티와의 26라운드 경기에서 전반 32분 상대 선수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톰 허들스톤의 아랫배를 때려 주심에게 포착되어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다. 그러나, 경기를 망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불미스러운 행동에 대해 sns를 통해 사과했다.

5월 2일에 있을 모 팀과의 경기는 별 일이 없다면 멘탈킹과의 세기의 대결(...)이 될 것으로 모두의 기대와 불안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멘탈킹이 출장하지 않아 세기의 대결은 날아갔고 퀸즈파크는 리버풀에게 1:2로 패배하여 사실상 강등권으로 추락 중이다.

3.4. 번리 FC

그리고 QPR은 바튼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 FA 선수 신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난 시즌 보여준 활약이 꽤 괜찮아서 무적 선수 베스트 11에도 꼽혔다. 어느 팀으로 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듯. 자유계약으로 번리로 이적해 번리의 챔피언십 1위와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번리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것은 덤.

3.5. 레인저스 FC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으로 2016-17 시즌부터 복귀하게 되는 레인저스 FC본격적으로 올드펌 더비 준비하려고 바튼을 노린다는 소식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레인저스 FC 이적이 확정되었고 2년 계약을 맺었다. 링크 그런데 한동안 잠잠 하다 싶더니 셀틱 FC와의 경기에서 대패한 이후 팀 동료와 다툼을 벌였고 결국 3주 출전 정지 징계가 떨어졌다. 최근에는 올해 7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무려 44회의 스포츠 도박 관련 규정을 어긴 혐의로 스코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기소되었다. 링크 결국 레인저스와 상호계약해지에 동의하였고 쓸쓸히 팀을 떠나게 되었다. 링크

3.6. 다시 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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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번리와 16-17 시즌 말까지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이미 번리 측에서는 11월 중순 레인저스에서 방출된 이후 훈련장도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구단 측에선 15-16 시즌 때의 모습을 기대하는 듯 하다. 이렇게 다시 또 그의 축구선수 인생은 연장되었다.

레인저스 시절 드러난 40여건의 불법 배팅 혐의에 이어 수사 결과 바튼이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260건(!)의 불법 배팅을 한 사실이 드러나 FA로부터 기소당하였다. 번리로의 정상적인 복귀도 불투명해진 상황.

2017년 번리가 바튼의 정식 영입을 인정하였다.

2017년 1월 15일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 사우스햄튼과의 홈 경기에서 후반 27분 안드레 그레이를 대신해 투입되자마자 5분 뒤 수비벽을 통과하는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팀의 1-0 승리에 공헌하였다. 역시 스타는 스타인 듯.

그러나 불법 베팅 혐의로 18개월 출전 정지와 벌금 3만 파운드의 징계를 받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 해설자를 잠시 맡았다. 의외로 사고 안 치고 해설은 잘 하는듯.

번리에서의 생활이 선수생활중에서 제일 행복했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선수시절 감독이던 션 다이치에게 감독이 된 이후로도 아직 감독님이라고 부르는거 보면 번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나보다.

4. 국가대표 경력

바튼은 2007년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경기를 가졌다. 당시에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의 공존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을 때 대체자로 손꼽혔다. 여러모로 가능성이 보였고 스스로도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었지만 멘탈과 실력의 반비례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케이스.

후에 이때의 국가대표 생활에 대해 광역 디스를 계속한다. 그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팀의 선수들은 돈만 밝히는 놈들이라 팀이 제대로 굴러갈수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잉글랜드 선수중에 월드 클래스란 없고 다 EPL 버프를 받은것이라며 누워서 침뱉기를 시전하였다.

또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위해 새로 발표된 대표팀의 유니폼 가격에 거품이 심하다며 한 장에 3000원으로 족하다(...)라는 드립을 치는 등 어떤 라이벌 국가의 선수보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을 조롱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5. 플레이 스타일

조이 바튼은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을 탈취해내는 투쟁적인 플레이에 능했다. 그러나, 바튼의 주된 능력은 이러한 허슬 플레이보다는 부드러운 컨트롤과 킥을 통한 공격을 전개하는 데 능한 자원이었다.

킥 퀄리티가 좋다 보니, 패스와 크로스의 퀄리티도 뛰어나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키커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가는 팀마다 대부분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바튼에게 맡기고 있으며, 뉴캐슬에서 뛰던 2009년에는 아예 오른쪽 미드필더로 전업하여 데이비드 베컴 부럽지 않은 양질의 크로스를 매 경기마다 올려주기도 했었다.(…) 이는 당시 새롭게 팀의 중원을 책임져줄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 셰이크 티오테의 존재와, 마땅히 오른쪽에서 뛸 자원이 없는 당시 뉴캐슬의 사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바튼의 오른쪽 기용이 상당히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조이 바튼이 원래 오른쪽 미드필더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한창 때 기량만 보면 빅클럽에서 주전 경쟁을 하고도 남을 능력을 갖춘 선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그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한팀에 오래 못 있었다.

6. 감독 경력

2018년 6월 2일 잉글랜드 풋볼 리그 1의 플릿우드 타운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3년 계약.

2019년 4월 13일 반즐리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4-2로 패배한 후 경기장 터널에서 상대팀의 다니엘 스텐델 감독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바튼은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이후 4월 30일 선더랜드를 홈에서 2-1로 꺾고 선더랜드의 자동 승격을 무산시키며 플릿우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리그 11위의 중위권 성적으로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2019-20시즌은 플릿우드를 이끌고 플레이오프권에 안착했으나, 준결승에서 위컴에 패하면서 승격은 좌절되었다.

2021년 1월 5일, 플릿우드 타운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플릿우드에서의 첫 감독직은 생각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1년 2월 22일, 강등권에서 경쟁중인 브리스톨 로버스 감독으로 선임되지만 팀은 결국 EFL 리그 투로 강등되고 말았다.

하지만 2021-22 시즌, EFL 리그 투 최종라운드에서 최하위로 강등이 확정된 스컨소프 유나이티드 FC를 7-0으로 대파하며 노스햄튼 타운 FC을 다득점에서 밀어내고 3위를 기록하며 극적으로 EFL 리그 원으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2023년 10월 26일, 브리스톨 로버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7. 사생활

성 관련 추문이 많은[15] 여타 잉글랜드 선수들과 다르게 이성 관련 문제는 깨끗한데, 대신 폭행 관련 뉴스가 상당히 대부분이다(…). 당시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져 초췌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쓰레기를 줍는 장면이 대문짝만하게 뉴스에 실리기도 했다.

맨시티 시절의 사건 사고로는 팀 동료였던 오스만 다보를 심하게 폭행하여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사건이 꽤 유명하며, 2004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2군 선수 제이미 탠디의 눈을 시가로 지져 버린 사건[16][17]태국 투어 시기 15세의 에버튼 팬을 폭행한 사건[18]으로 본격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 외에 음주운전으로 인도로 가고 있는 사람을 치어서 다리 골절상을 입힌 일도 있다. 이후 뉴캐슬로 이적한 이후에도 고향 리버풀에서 일반인과의 시비 끝에 폭력을 휘둘러 징역 6개월을 선고받기도 하였다[19]. 2008년에는 상술한 오스만 다보의 폭행에 대해 4개월 출장정지를 먹는 위엄을 보였다.

결국 리버풀에서 팀 동료 욘 아르네 리세를 골프채로 후려쳤다는 크레이그 벨라미[20]와 함께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스트리트 파이터로 등극했다.

뉴캐슬 시절 앨런 파듀 감독이 그를 알콜중독자 치료모임에 보냈는데 바튼은 거기서 활발히 활동하여 알콜중독자 치료 모임의 회장도 맡았다고 한다. 바튼의 말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회복되어 그 모임을 나갔는데 자기는 계속해서 거기 있어야 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가지고 회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트위터로 리그와 국적을 불문하며 어그로를 끌어당기는 전방위 입파이터로서 높은 승률을 자랑하며 맹활약 중. 먼저 어그로를 끌어놨음에도 적절한 시기 및 전장 선택과 더불어 잔혹한 이빨을 날리며 입싸움에는 미숙한 축구인들을 차례차례 털어버리는 놀라운 실력을 과시한다.

특히 네이마르를 매우 싫어했는데, 아예 주적으로 삼아 한껏 물어뜯다 바르샤로 이적하자 재빨리 퇴갤하는 비범함을 뽐냈다. 이때 네이마르가 "바튼이 누군지 모른다"고 밝히자 트위터로 "네가 아마존 정글 리그를 떠나 유럽으로 오면 내가 누구인지 소개할게"라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21]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지만 아직까지는 바튼의 경우 큰 굴욕 없이 좋은 취미생활로 잘 즐기는 듯.[22]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페페토마스 뮐러에게 박치기를 시전하여 퇴장을 당한 직후 트위터에 자신의 의견을 게재했다.
As a one time connoisseur of the dark arts of madness, in my expert opinion, that from Pepe, was supreme, world class madness. HT 3-0
"한때 광기라는 흑마법의 달인으로서 전문적인 의견을 말하면 페페의 행동은 세계구급 또라이짓이다."

팔로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당신이 말하니 신뢰가 간다." 혹은 "한때라고?"(…) 불과 며칠후, 전 우주급 또라이짓벌어지며 모두가 데꿀멍 한다.

2014년 7월에는 트위터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의 비인도적 측면을 비판하다가 이스라엘인인 요시 베나윤이 무리한 옹호를 하자 그의 트윗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관련기사 그래도 옛 동료라서 그런지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응답했고 베나윤도 수긍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과 생명이 국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한편 그의 SNS를 살펴보면 의외로 문학, 음악에서 세련되고 까다로운 취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여러모로 반전캐.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밴드이자 영국의 전설적인 락 밴드 더 스미스의 팬이다.[23] 보컬 모리세이는 사람과 친분을 맺지 않기로 유명한데 바튼과는 사적으로 연락할 정도로 친하다. 참고로 바튼은 모리세이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현재 그의 평소 생활을 보면 적절히 인생을 즐기는 사람. 엄청난 양의 독서와 여행, 요리, 육아가 주 일상. 영국의 문맹 퇴치를 위한 프로젝트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에게 책 추천을 부탁했을 때 바튼은 플라톤국가론을 추천했다. 필드 위에서와 딴 사람 같다.

정치적인 발언도 많이 하는데, 강한좌익성향으로 공화주의자이며 노동당과 코빈의 지지자이다. 기행과 달리 인종차별 문제는 없는 편으로 과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을 벌인 이스라엘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포스팅을 올렸다. 그 역시 심각한 인종차별을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다. #


[1] 사실 미혼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항목도 바튼이 미혼이라고 작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내가 출산, 아이가 생겨서 돈이 필요해서 QPR을 택했다는 내용이 있다.[사진] 파일:article-1330175-0C044B2D000005DC-468_468x286.jpg[3] 살인 이유가 백인 여자랑 같이 길을 가는게 꼴사나워서 그랬다고... 마이클은 그 흑인 청년을 죽이고 달아났고 그 청년 여친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마이클은 조이 바튼에게 도주자금을 부탁했으나 조이 바튼은 이를 거부했고, 생방송에 출연해 마이클에게 자수를 권했다고 한다.[4] 조이 바튼 스스로 자신보다 실력이 나았다고 평가했고 리버풀 유스팀의 관심도 받았다는 조이 바튼의 한 친구는 바튼이 축구선수가 되어서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이미 절도죄로 수감된 뒤였다.[5] 엄밀히 말하면 10-11 시즌 겨울이적시장에 떠났다.[6] 정확히 말해 이에 대한 불만은 호세 엔리케가 먼저 언급하였다가 벌금 크리 먹었고, 바튼은 이에 대해서 까는 형태의 내용이었다.[7] 다만 바튼의 트위터 사랑은 꽤나 유별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 이전에도 트위터에 구단의 방침을 비꼬는 글을 올려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고, 한 편으로는 재계약에 관련된 이야기나, 뉴캐슬에 남고 싶다는 글도 여러 번 남겼으며, 쟈유계약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도 잔류할지도 모른다고 글을 올려 트위터를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8] 팀의 상황이나 방출 내용 등을 보면 안토니오 카사노를 연상시킨다.[9] 아스날과의 개막전에선 송에게 발을 밟힌 화풀이로 이번에 이적한 아스날의 신입생 제르비뉴에게 적절한 시비를 걸어 퇴장을 유도해내는 등 10-11 시즌 25라운드의 아부 디아비의 악몽을 재현하였고, 경기가 끝난 후에 알렉스 송과 제르비뉴는 3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반면 본인은 단순 벌금형으로 끝이 나는 등 아스날 팬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책사, 그리고 공포 그 자체로 자리매김 하였다.(…)[10] 위의 내용들을 보면 알겠지만 하필이면 유스 출신인 친정팀이다. 그의 성격이 얼마나 막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11] 이게 얼마나 무거운 징계냐 하면 루이스 수아레스의 에브라 인종차별 사건 당시에 8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잉글랜드 FA컵에서는 상습범이었던 바튼이었기에 추가적으로 징계를 때린 것으로 보인다.[12] 재미있게도 바튼에게 니킥을 당한 아궤로가 역전골을 넣었고, 그걸 어시스트한게 바튼과 싸울뻔 했던 발로텔리였다.[13] 그의 삼촌이 동성애자인 것을 한참 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과 그의 성장 배경이 맞물린 듯. 바튼은 자신이 속했던 노동자 계급에서 동성애는 철저히 금기시되어 있었다며 "삼촌이 커밍아웃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부정해야 했다. 나는 삼촌에게 당신이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상관없이 당신 자체를 사랑한다고 밝혔었다."라며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14]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색이 무지개색이다.[15] 실제로 이쪽 방면(...)으로는 매우 악명 높은 브라질의 악동 호비뉴도 맨시티에서 뛸 때 경험한 바로는 브라질보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더 심하다며 몇몇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기도 하였다.[16] 바튼 스스로의 증언에 의하면 시가로 옷을 태우는 장난을 하고 있었고, 상대도 라이터로 자신의 옷을 태우려고 했다고 한다. 이 때 시가를 얼굴에 들이댄 것이, 결과적으로 눈을 지졌고 순식간에 바튼이 술병으로 머리를 맞는 등의 싸움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내부 조사로 밝혀져서 10주 분량의 주급이 날아갔고 당시의 케빈 키건 감독에게 제대로 찍히게 된다. 근데 국내에서는 바튼이 일부러 지졌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7] 참고로 이 제이미 탠디는 축구선수로 큰 족적은 남기지 못하고, 후일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18] 조이 바튼의 명예를 위해서(...)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자면 명예가 있기는 한가 시비는 그 에버튼 팬이 먼저 걸었다. 가만히 있는 바튼에게 로우 킥을 날렸으니(......)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나 마찬가지. 물론 이를 말리다가 오히려 싸움에 말려들었던 리처드 던이 분노했던 것처럼 이게 프로다운 행동은 절대 아니다.[19] 참고로 CCTV 영상이 있는데 시비가 붙고 나니까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 버린다. 다만 죄목은 기물파손죄.#[20] 벨라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골프채를 가지고 리세의 방에 난입한 건 사실이지만 때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리세는 골프채로 두들겨 맞은 것치고는 멀쩡하게 바르셀로나와의 원정 챔스 경기에 출전했다. 문제는 그 다음 벨라미가 골을 넣고 골프채 세리머니를 한 것. 이것 때문에 벨라미는 문제아로 낙인찍혔지만 실제로는 잉글랜드 언론을 풍자하는 세리머니였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는 그 경기에서 벨라미는 리세에게 적절한 어시스트를 넣어주며 사실상 폭행 사건 주동자끼리 리버풀의 승리를 이끌었고, 2000년대 중반 리버풀 팬들의 바이블과도 같은 명경기로 남았다.[21] 당시 네이마르는 산토스 FC 소속이었는데, 바튼은 네이마르가 큰 경력 없이 고평가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22] 조이 바튼 자신은 은퇴 직후 감독직을 맡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23] 다만 주의할 만 한 사실은, 스미스가 잉글랜드에선 딱히 힙스터들이나 좋아한다고 할 만 한 밴드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