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의 작중 사건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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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종로회관 습격사건 전개 영상드라마 야인시대 내에서 일어난 사건. 김두한과의 결투에서 처참하게 깨지며 굴욕을 당한 뭉치가 복수를 가장한 집단 린치를 가한 사건으로,[1] 극중에서 김두한이 싸움에 패배해서 한동안 숨어지내야 했던 유일한 사건이다.[2]
또한, 이 사건 때문에 김두한은 구마적과의 결투를 할 명분이 생기게 되었고, 결국 김두한이 구마적과의 결투에서 그를 꺾었으므로, 김두한의 주먹패로서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이 린치 장면이 잔인해서인지 해당 화의 시청 등급이 19세로 나왔다.
2. 상황
당시 김두한은 신마적이라는 조선 내 양대 주먹 중 하나로 불리던 거물을 꺾으면서, 구마적조차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해졌고, 그 소식을 들은 뭉치, 제비는 그 전에 김두한한테 맞은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음에도 복수, 견제를 위해 퇴원을 한 뒤 수도권 내의 조폭들을 소집해 기습을 계획한다.마침 김두한은 문영철의 애인인 애란이 아버지 빚 때문에 중국으로 팔려갈뻔 한 위기에 처하자, 5천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거금을 구하기 위해 하야시의 저택으로 쳐들어간뒤 하야시로부터 돈을 받아 그 돈을 문영철한테 준다. 그에 감동받은 애란은 기생학원 스승과 다른 기생들과 함께 김두한의 사무실로 가서 김두한과 그 부하들을 불러 나온뒤 종로회관으로 가서 김두한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그 소식을 들은 뭉치 패거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종로회관으로 30명은 가뿐히 넘기는 수의 패거리들을 집합시킨 뒤 종로회관으로 쳐들어간다. 정확히는 경성 내의 정예대원들 수십명을 소집해서 대동한것. 당시 벌써 술을 상당하게 마신 김두한과 그 일행들[3]을 본 김영태는 그만 일어나려 하지만 김무옥은 계속 술마시기를 바랐고 결국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마신다.
그때 뭉치의 일행들이 도착해서 상을 다 엎어 버린 뒤, 개전을 했고 김두한 일행도 전투를 한다. 초반에는 열심히 분전했으나 다들 만취한 상태고 수적 우위를 이기지 못한 김두한패는 몽둥이로 얻어 맞더니 결국, 모두가 피투성이 신세로 뭉치한테 더 맞고 기절한다. 천운인지 마침 신고를 받은 순사들이 오면서 뭉치 일행은 김두한을 죽이지 못하고 돌아나선다. 여하튼 간신히 살아남은 김두한은 김영태의 부축을 받으며 은신처로 피신한뒤 2일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큰 후유증을 겪게 됐다.[4] 그 무렵, 구마적은 하야시의 혼마찌패와 화합의 장을 만들면서 축제를 벌였기 때문에 저런 일이 있었는지도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저 뭉치가 잘 해결할 줄 알았을 뿐.
3. 그 후
구마적은 그저 뭉치 패거리가 정정당당당하게 김두한을 이긴 줄 알았기에 뭉치를 칭찬했으나 평양박치기로 인해 사건의 내막을 알게되자 완전 대노하면서 뭉치, 왕발, 제비한테 일갈을 해버렸다. 하기사 주먹세계 신입인 김두한 하나를 상대하려고 우미관의 두목인 구마적의 심복들이 경성지역 패거리들과 함께 몽둥이 들고 가서 술마신 김두한을 조지려 한 게 알려지면 위신이 떨어지는 건 명약관화.한편 만신창이가 된 김두한, 김영태는 설향의 도움으로 더 안전한 곳인 암자로 가서 몸을 회복했다.
구마적과의 결투를 준비하고 종로에 도착한 김두한은 구마적에게 종로의 패권을 걸고 도전장을 내민다. 지면 모든 것을 잃고, 이겨봤자 득될 게 없는 결투였지만 구마적으로서는 명분에서 지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김두한에게 패배하여 주먹계를 떠난다.
4. 기타
김두한이 구마적에게 결투 신청을 하고 종로에 복귀하자 설향은 걱정과 불안에 못 이겨[5] 한 밤 중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이를 말리는 애란과 실랑이를 하던 중 소리선생[6]이 들어온다. 이 시간에 어딜 나가냐는 말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자 설향을 크게 질책하고 윽박 지르며 외출을 막자 설향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이 때 소리선생이 한 말이 가관인데 "못난 년... 사내한테 그리 쉽게 정 주는거 아니라고 늘 가르쳤거늘..." 이었다. [7] 또한 간과하기 쉽지만 엄연히 아동 학대 장면인 왕초가 거지 아이들한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도 적용되지 않았던 19금이 정작 아동 학대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이 장면에선 적용되었었다. 당시 한국 사회가 그만큼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이 싸움에 참여한 조직원들은 의외로 뭉치보다 착한 면모도 있었는데, 기생들이 얻어맞고있는 문영철과 김두한한테 다가가자 기생들을 때리는 일은 없기 위해선지 기생들을 제지했다. 뭉치같았으면 그냥 사정없이 때려서 기생들이 함께 맞든지 말든지 신경 안썼을 것을 생각하면 뭉치의 비열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비현실적인 싸움씬이 난무하는[8] 야인시대에서 개코가 염천교 거지패와 싸우는 것과 더붙어 몇 안되는 현실적인 싸움이라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1] 여기에 제비와 왕발도 린치에 가담했다.[2] 병원에 가려해도 갈 수 없었던 이유는 뭉치 패거리가 김두한을 찾기 위해 종로 바닥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기 때문이다.[3] 특히 번개는 벌써 곯아떨어졌었다.[4] 처음엔 설향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김두한이 의식을 되찾고 어느정도 몸을 추스릴 수 있게 되자 쌍칼이 자주 다니던 절간에 피신해 회복기간을 가졌다. 작중에서 이정도로 심하게 당한 인물은 2부의 린치사건때의 시라소니가 있지만, 실화기반이라 김두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5] 김두한이 종로에 복귀했지만 몸이 온전치 못 한 상황인데다 결투 상대가 당시 조선 최고의 주먹인 구마적이다. 김두한을 사모하고 있던 설향의 입장에선 패배하는건 고사하고 잘못하면 정말 죽을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었다.[6] 한성권번 소속 모든 기생들의 수장이다 애란은 어머니라 부른다.[7] 비록 드라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 말은 정말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사건이 터지고 쓰러져 있는 김두한을 보며 설향은 이게 다 자신들 때문이라며 억지로 끌고 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 한탄했다. 사실 이 사건의 간접적 원인제공자가 도의적 책임은 회피하고 이제 와서 정조 운운을 하는 것이었다.[8] 대표적으로 김두한이 목검으로 무장한 신마찌 패를 혼자서 쓸어버린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 두목인 기타노는 진검을 뽑아들고 덤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