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줘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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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관현급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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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직관현급시는 지급행정구 수준의 자주권을 갖지만, 명목상 기존의 지급시 소속이다. 신지시스자좡시 소속, 딩저우시바오딩시 소속.
[2] 룽청현, 안신현, 슝현 및 주변 지역은 실질적으로 국가급 신구인 슝안신구의 관리를 받고 있다.
[3] 런추시 내부의 화베이유전지구는 허베이성의 지급행정구 대우를 받으며, 허베이성 인민정부와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 양자의 관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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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현대

1. 개요

중국어 涿鹿
영어 Zhuolu

중국 북부 허베이성 장자커우시의 현.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치우삼황오제의 전설이 내려오는 탁록[1] 땅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세 시기 봉성주, 근대 시기 보안주라 불리다가 1914년 다시 탁록 (줘루) 지명을 회복했다. 황제성 등 황제 헌원씨 관련 유적 뿐만 아니라 최근 포괄적 중화 사상이 강조되며 기존에 경시되던 치우까지 합사한 중화삼조당 등 관광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다. 주요 산업으로 제조업과 포도, 아몬드 등이 특산물인 농업이 있다. 북방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35도를 잘 안넘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서늘한 기후를 보인다.

2. 역사

사기에 따르면 원시 시대 말엽, 탁록 일대에는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살았다. 기원전 2700년경 중화문명의 시작을 알린 판천대전과 탁록대전에서 황제 헌원씨가 각각 염제 신농씨와 치우를 격파하고 화하족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탁록은 중국 신화상 중심지였고, 남서쪽 4km 지점 바오다이진은 5제 시기의 수도였다고 한다. 제요 시기 천하가 9주로 나뉘었을 때에 탁록은 기주에 속했고, 제순이 다시 12주로 나누었을 때에는 계주에 속했다 한다.[2] 하나라 시기 화하족은 대거 황하 유역으로 이주했고, 탁록 일대에는 얼마 안되는 제순의 후예들만이 남게 된다.

2.1. 고대

상나라 시기 탁록은 대 (代)국에 이어 영지 (令支)국에 속했고, 주나라 시기에는 연나라에 분봉되었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300년경 조나라가 정복했다가 연나라가 수복하여 기원전 283년 상곡군 (上谷郡)에 편성되었다. 진시황의 통일 후 기원전 221년에 시가지 일대에 하락현 (下落縣)이, 남동쪽에 탁록현 (涿鹿縣)이, 남서쪽에 판현 (潘縣)이 설치되어 모두 상곡군에 속하였다. 전한 시기에도 똑같이 이어지다 신나라 대에 상곡군이 삭조군 (朔調郡)으로 개칭되며 하락현이 하충현 (下忠縣), 탁록현이 포륙현 (抪陸縣), 판현이 수무현 (樹武縣)으로 개칭되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에 의해 취소되어 원상복구되었다. 서진 시기인 274년, 일대는 광녕군 (廣寗郡)으로 분리되었고 하락현이 그 치소가 되었다.

2.2. 중세

북위 시기인 525년, 하락현과 판현이 폐지되고 탁록현과 현 장자커우 시할구에 설치된 광녕현만이 광녕군을 구성했다. 북제 시기인 572년에는 영풍군 (永丰郡) 회룡현 (懷龍縣)에 편성되며 탁록 지명이 밀려났다. 수당교체기 시기에는 군벌 고개도가 차지했다가 624년 당나라령이 되었고, 북연주 (北燕州) 회룡현에 속했다. 634년 북연주는 규주 (妫州)가 되었다가, 698년 돌궐에 정복된 후로 한동안 기록에서 사라진다. 당 말엽인 822년, 일대는 얼마 전에 수복되었는지 신주 (新州)로 명명되었다. 936년, 신주는 연운16주의 일부로써 요나라에 넘겨졌고 938년 봉성주 (奉聖州)라 명명되었다. 금나라 시기인 1209년, 일대는 수도권인 대흥부 (大興府) 직할에 놓았다가 원나라 시기인 1266년에 봉성주로 환원되었다.

2.3. 근세

원 말엽인 1338년, 보안주 (保安州)가 설치되어 명나라 시기에도 유지되었다. 청나라 시기인 1693년, 보안주는 상당 부분이 인근 행정구역들로 이관되어 축소되었다.

2.4. 근현대

신해혁명 후 1913년, 보안주는 보안현 (保安县)으로 개편되었고 이듬해에는 (한자가 같은) 섬서성의 보안현과 구분하기 위해 옛 지명을 살려 탁록현으로 명명되었다. 1929년 탁록현은 다른 9개 현들과 직예-하북성에서 차하르성 (察哈尔省) 관할로 이전되었다. 1937년 8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이 탁록현성을 폭격했고 이에 국민혁명군이 철수했다. 곧 일본군이 장악하여 탁록현공서를 설립했고, 일본의 괴뢰국인 몽강연합자치정부의 찰남행정 (察南政厅)에 속하였다. 찰남행정은 1943년 선화성 (宣化省)으로 개편되었다.

1940년을 전후로 팔로군 등 공산주의 계열 저항군이 농촌 지역에서 활동했고, 1945년 8월 일본군이 철수한 후에는 공산 계열의 줘루현민주정부 (涿鹿县民主政府)가 설립되었으나 이듬해 국민혁명군이 다가오자 남쪽 산지로 피신하였다. 다만 1948년 12월, 인민해방군과 함께 줘루현민주정부가 귀환했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차하르성 차난전구행정공서 산하 줘루현인민정부로 개편되었다. 1952년 차하르성이 폐지되며 줘루현은 허베이성 장자커우 지구에 편성되었다. 1958년 줘루현은 화이라이현 (怀来县)에 편입되었다가 1961년 부활하였고 1993년 장자커우 지구는 지급시로 승격되었다.


[1] 아마 높은 / 평탄한 성이란 뜻이라 한다[2] 다만 하나라를 건국한 우가 다시 9주로 편성하며 기주에 속하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