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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18:06:50

진도대교 수갑 찬 시신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바다에 떠오른 시신3. 바다에 잠긴 진실

1. 개요

2012년 5월 1일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진도대교 인근 해상에서, 2011년 12월 이후로 가출 상태였던 30대 남성이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변사체로 발견된 변사사건.

2. 바다에 떠오른 시신

2012년 5월 1일 오전 7시 30분, 아침운동으로 조깅을 하던 동네 주민이 검은 물체 하나가 밀물에 떠밀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마을 주민은 처음에는 검은 비닐봉투에 싸인 쓰레기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파도가 치면서 생기는 물결 사이에서 사람의 발 뒤꿈치와 엉덩이 부분이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이 보이자 하던 운동을 멈추고 해경에 신고했다.

경찰은 시신을 인양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변사자는 170㎝ 가량의 건장한 체격이었으며, 하의는 검은색 등산복, 상의는 검은색 바탕의 녹색 등산복, 신발은 단화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사자의 시신에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는데, 바로 시신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는 것. 그것도 양 손에 채워진 것이 아닌 왼손 손목에만 채워져 있는 형태였다.

이렇다보니 시신이 발견된 마을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치소교도소 등에서 재소자가 탈주했거나, 심지어 해상에서 밀수를 시도하다 검거되어 육지로 압송중이던 밀수조직의 조직원이 잡혀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는 등 오만가지 괴소문이 떠돌았다. 단, 경찰도 처음에는 재소자나 범죄 연루자를 용의선상에 올렸던 적이 있다.

3. 바다에 잠긴 진실

2012년 5월 3일 변사자의 신원이 밝혀졌는데, 변사자는 인근 지역인 전남 무안 출신으로 경기도 용인에서 택시기사를 하다가 얼마전 고향인 무안으로 귀향한 평범한 가장이었다.[1]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실시한 시신의 부검결과 변사자의 사인은 익사로 밝혀졌다. 시신에서는 외상의 흔적도, 독극물에 중독된 흔적도 검출되지 않아 경찰은 사건을 단순 자살사건으로 전환했다.

유류품으로 발견된 수갑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유류품으로 발견된 수갑은 경찰이나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나 재소자를 연행할때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제조업체에서 부여하는 고유 일련번호[2]도 찍혀있지 않고 경찰이 사용하는 종과는 맞지 않았다. 수갑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정부기관[3], 헌병대에 수갑을 납품하는 기업과 과거 경찰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던 퇴직자들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실시했지만 경찰이 현재 사용하는 수갑의 제식 규격이 정해진 2000년경 이전에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밝혀졌을 뿐 정확한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족들은 경찰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망자는 평소 활발한 성격으로 우울증에 의한 감정 기복이나 비관적인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집안에, 무엇보다도 어린 쌍둥이 딸이 있었기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경찰은 사인이 자살임을 뒷받침하는 몇가지 정황을 제시했다.

먼저 변사자가 범죄 조직등 타인에 의해 억지로 수갑이 채인 상태에서 사망했다면 변사자의 손목에 압박으로 인한 피하출혈[4]이나 마찰로 인한 찰과상등 물리적 흔적이 생겨야 하지만, 변사자의 손목에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스스로 양손에 수갑을 채울수는 없는 대신 한손으로 다른 반대편 손에 수갑을 채우는것이 충분히 가능한 점으로 보아 변사자 스스로가 수갑을 채웠다는 것이 된다.

경찰은 이런 점을 뒷받침하는 변사자의 행적 또한 함께 공개했다. 변사자는 사망 5개월 전인 2011년 12월 5일 본인 명의의 우체국 계좌에서 600만원을 인출해 가출을 한 뒤로 휴대폰 자체를 꺼놓은 채로 약 108일간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지내왔던 것으로 보인다.[5]

마지막으로 게임에 접속한 날은 변사자가 발견되기 10일 전인 2012년 4월 21일이다.

해경은 변사자가 사망한 시점을 4월 22일부터 24일까지의 3일간으로 추측했는데, 그동안의 조사결과와 경찰이 프로파일링을 통해 유추해 낸, 변사자의 손목에 차인 수갑이 상징하는[6] 의미들을 합쳐 본다면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그리고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죄책감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것.

해경은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수사를 종결하고 시신을 유가족에게 인계했다. 여담으로, 수갑은 2015년 12월 31일자로 경찰제복 및 경찰장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더이상 일반인이 소지할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1] 유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과 하나 없었다고.[2] 사용처/제조년도/제조일자순으로 날인을 한다.[3]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등.[4] 보통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되면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이걸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또는 제압하기 위해) 수갑을 억지로 빡빡하게 채운다. 인권이 바닥을 기었던 군사정권 시기나 그 때 당시 임용된 이들이 남아 있었던 참여정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줘패면 장땡이었지만 인권의식이 신장되면서 생겨난 우회적 방법.[5] 자녀가 아플때도 가족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6] 징벌, 구속 등을 의미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