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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3:23:39

청진 제25호 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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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펼치기 · 접기 ]

[1] 위치와 명칭 불명. (출처: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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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기.svg 함경북도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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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D1C27,#222222><tablebgcolor=#ED1C27,#222222> 파일:북한 국장.svg청진 제25호 관리소
淸津第二十五號管理所

Chŏngjin 25th Concentration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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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청진 수용소_구글 어스.png
▲ 청진 제25호 관리소의 위성 사진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다른 이름 청진수용소(淸津收容所)
수성수용소(輸城收容所)
설립 미상[1]
목적 ✔ 체제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응징
정치범을 격리하여 체제 위협 방지
✔ 정치범의 강제노동을 통한 착취
규모 부지면적 0.98㎢
수감인원 32,100여 명(2024년 6월 기준)[출처]
상위 조직 국가보위성 농장감시국
운영 여부 운영 중
주소

청진 제25호 관리소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수성동)[3]
1. 개요2. 상세3. 구조
3.1. 시설
4. 수용소 주변5. 여담6. 참고 링크

[clearfix]

1. 개요

북한정치범수용소.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수성동에 있다. 일명 '청진수용소\', '수성수용소\'로 불린다.

개천 제14호 관리소, 명간 제16호 관리소와 더불어 100% 완전통제구역으로 운영되며 요덕 제15호 관리소와 함께 북한 주민들 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이다. 본래 요덕과 쌍벽을 이루는 곳은 승호 수용소였지만, 해당 수용소가 1994년에 국제사면위원회의 폭로 덕분에 폐쇄되면서 이 수용소가 1급 정치범들의 수용소가 되었다. 이때 승호 수용소가 작살나면서 여기에 수감된 사람들이 죄다 이 수용소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은 불명. 하지만 두 수용소 모두 교화소로 최상급 감옥이었으며, 1991년 이전까지 교화소랍시고 있었던 곳은 이 청진 수용소와 승호 수용소 둘밖에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봤을 때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요덕 제15호 관리소의 네임 밸류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개천 제14호 관리소, 전거리교화소, 명간 제16호 관리소와 함께 북한에서도 손 꼽히는 수용소이다. 사실 요덕 제15호 관리소가 유명한 이유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뿐 실제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중에서는 양호한 축으로[4], 진짜 지옥 중에서도 생지옥은 이곳 청진 수용소와 앞서 거론한 3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정치범 중에서도 1급 정치범만을 수용시키는 곳으로 청진 수용소는 1960년대 운영된 이후 북한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고.

2. 상세

이곳의 특징이라면 전원 1급 정치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과 쌍벽을 이루던 평양승호구역승호 수용소가 94년 국제사면위원회(AI)의 폭로가 있은 뒤 해체 당한 이후 그곳의 수감자들이 모두 청진 수용소로 옮겨졌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 청진 수용소에는 형벌이 무거운 간첩 혐의자와 체제전복,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불리는 권력에서 숙청된 자들, 북송 재일교포들이 주로 수감됐으며 최근에는 탈북하다 붙잡힌 사람들과 종교인들도 대거 수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재탈북자 유태준도 월북 이후 32년 형을 선고 받고 이곳에 수감됐다가 기자회견을 위해 석방된 후 탈북했다. 이곳에 수감된 수용자들은 관리소 내에서 라디에이터, 무동력 냉장고, 무쇠밥솥, 재봉틀, 자전거 등을 생산하며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며 이곳에서 생산돼 나오는 갈매기 상표 자전거는 북한 전 지역으로 보급된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좌한 상태로 꼿꼿이 앉아 있다가 6시 30분에 식사를 하며 식사는 콩알이 섞인 옥수수 주먹밥과 시래기국이 전부다. 강제 노동은 아침 7시에 시작해 밤 10시까지 무려 15시간동안 경작지, 공장 등에서 이루어지며, 강제 노동 후에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하고 사상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감자들은 20명씩 한 방을 쓰고, 안에서는 탈출을 막기 위해 2인 1조씩 행동하며 화장실에 가도 함께 일어나 가야 한다.

수용소가 협소한 관계로 큰 공장이라든지 명간 제16호 관리소처럼 핵 실험장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여기에서는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전거 공장이다. 북한에서 나온 자전거 중 '갈매기'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청진 수용소에서 제작된 것.

요덕 제15호 관리소의 용평 완전통제구역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곳인데 안명철[5]에 의하면 자신이 근무하던 곳은 회령 수용소[6]였는데, 이 청진 수용소는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Top-level) 수용소라고 하니 알 만하다. 또한 면적이 적어서 관리하기가 쉽다는 요건 때문인지 이 수용소도 명간 제16호 관리소처럼 단 한 명의 탈출자도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다. 하긴 인근 교통편이 적당히 멀어야 추적도 어려울 텐데 이건 가깝다 못해 아예 붙어있는 수준이라서...

다만 이 무시무시한 곳을 경험했다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한국판 빠삐용'이라고 불리는 유태준(1968년생). 유태준의 증언. 사실이라면 청진 관리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다. 놀랍게도 그는 1998년 함흥에서 살다가 탈북한 이후 2001년에 부인을 데려오겠다고 무단 입북했다가 그만 여기에 수감되었었는데, 이게 국제 문제로 비화되면서 석방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2002년 재차 탈북해서 북한을 놀라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2004년에는 정작 '나를 장군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후 의붓동생 살인미수로 징역 3년, 치료감호 10년을 복역하고 2016년 전라남도 나주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사실상의 수감 생활을 하다가 2017년 갑자기 탈출하고 2달 만에 검거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는 등[7]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사람이다. 다른 탈북자들[8]도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보고 있으며, #1 #2 #3 본인도 망상장애 때문에 탈북 초에는 9살 아들을 학대하고 후에는 국가정보원이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9]

제9회 국제 회의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주 수감자는 1급 정치범,[10]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특히 기독교도), 평양에서 쫓겨난 자와 그 가족, 의견을 달리하는,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을 부정하는 한국인일본인이 여기에 수감된다고 한다.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의 선장 임국재가 3번 탈북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 끝내 여기에 수감되어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기록도 있다.

3. 구조

파일:청진관리소_구조1.png
북한인권위원회(HRNK)발간한 보고서에 소개된 청진 제25호 관리소의 전체 구조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가로 약 500m, 세로 약 500m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위성 사진이나 지도상으로 보면 높은 벽이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보면 오각형이 나오는데 이 오각형의 가로가 300m, 세로가 250m로 넓이가 대략 7.5ha 정도이다. 서대문형무소의 경우 부지가 대략 20ha였다고 하니 그 절반 수준. 그야말로 초미니 감옥인 셈이다. 특히 다른 정치범수용소들이 아예 깊은 산골 마을을 수용소로 쓸 것을 상정하며 만든 곳인지라 비정상적으로 넓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헌데 서대문 형무소의 수감 가능 인원이 3천 명이었으니 얼마나 바글바글 몰려 있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족과 함께 수감되는 다른 관리소와는 달리 이 청진 수용소는 정치범 본인만 수용되기 때문에 훨씬 크기가 작은 것이다. 다른 관리소처럼 거대한 부지에 마을처럼 거주지가 여러곳 형성되어 있지 않다. 통일부 북한인권포털에 따르면 형태가 다른 수용소이며 "수성관리소"라는 명칭, 다시 말해 한국으로 치자면 교도소 같은 시설로 위장하고 있다고 한다. #

3.1. 시설

파일:청진관리소_구조2.png
관리소 내부 시설 구조
파일:청진관리소_구조3.png
관리소 외부 부지에서 노동 중인 수감자들
청진시 수성역에서 1.5km 정도에 위치해 있으며, 수성역 청사 옆 건물은 이곳으로 수감되거나 이송되는 정치범들을 특별 관리하는 '연락소'가 있어 수용소로 수감자들을 철저히 검열하여 입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m 높이의 담장에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고 가장 외벽에는 감시탑이 세워져 수용자들을 감시한다.

4. 수용소 주변

수용소 주변은 그야말로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1.5km 지점에 수성역이 있긴 하나 수용소 자체가 송골이라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능선을 따라 감시초소가 자리잡고 있어 사실상 탈출이 불가능하다.

관리소 정문 바로 앞에 규모있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진시가 있다. 남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서 83번 국도와 만나며,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함북선 수성역이 있다.

5. 여담

6. 참고 링크


[1] 6.25 전쟁이 끝나고 포로수용소로 활용되다가 정치범수용소로 바뀌었다고 한다. #[출처] 데일리NK[3]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4] 사실 이는 탈출자 전원이 언젠가는 석방이 가능한 혁명화구역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한다.[5] 1994년에 탈북한 사람으로, 일반 수감자도 아닌 정치범수용소 경비원 출신이다.[6] 외국에서는 일명 'Camp 22'로 통하는 곳으로 12호 교화소인 전거리교화소와는 다른 곳이다. 애초에 Camp 22는 관리소니까.[7]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8] 인민군 중좌(중령) 출신 심신복, 강철환과 비슷한 시기에 요덕수용소를 탈출한 안혁[9] 다만 수감 과정에서의 PTSD로 인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10] 예를 들면 쿠데타 음모를 꾸민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