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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23:47:48

청학동마을

파일:하동군 CI_White.svg 하동1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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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생활상4. 예절 캠프5. 악·폐습 및 사건사고
5.1. 학교폭력
5.1.1. 남학생 상습적 구타·성적 학대 사건5.1.2. 초등학생 가혹행위, 집단폭행 사건
5.2. 인권유린5.3. 변질
6. 매체7. 출신 인물

1. 개요


마을
Cheonghak-dong town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지리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 별칭으로 '도인촌(道人村)', '지리산 청학동' 이라고도 불린다. 지리산 삼신봉 동쪽 기슭 해발 800m에 있다.

주민 대부분이 신흥종교 갱정유도(更定儒道)[1]를 신앙하는 신앙촌이다. 갱정유도 외에 삼성궁, 증산교단 신자들도 함께 살고 있다.

조선시대의복과 생활 태도를 유지하는 드문 형태의 마을이다. 처음엔 갱정유도 신자들이 유교의 압박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마을을 형성한 것인데 현대에는 대표적인 유교 마을로 여겨지고 있다. 비유하자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들이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유타로 이주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기독교의 교세가 거의 사라진 후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를 기독교의 대표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의 이름은 청학로로 마을 전체의 도로명주소가 이 도로를 기준으로 부여되어 있다.

2. 역사

6.25 전쟁 이후 생겨난 마을로 청학 주민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에 갱정유도 신봉자들이 피난 과정에서 외지인들 눈에 띄지 않는 지리산 어딘가에 숨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휴전 뒤 몇 년간은 외지인들만 보면 피해서 숨어 사는 험난한 삶을 살다가[2]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하동군수가 인구 전수조사를 하게 되면서 청학동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덩달아 마을도 전통 문화를 고수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까지 얻게 됐다.

본래는 학동이었다가 청학동으로 바뀌었다. 기사. 청학(靑鶴)은 푸른 학이라는 뜻이다.

3. 생활상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전통으로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가옥도 대부분 기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고 있고, 의생활도 주로 한복차림을 고수한다. 성인 남자의 경우 조선시대처럼 상투를 틀고 쓰고 도포를 입는 풍습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는 댕기머리를 하는 풍습이 있다.

조선 왕조 때부터 존속해 있었던 서당(書堂)에서 글을 배우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에는 옛날 그대로의 서당을 다닐 수 없는 노릇인지라 학교와 별개로 서당을 예절 캠프나 청소년 수련원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축산업에 종사하는 편이며 약초, 산나물도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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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현대 문명에 의존하지 않고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미국아미시(Amish) 마을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아미시는 계속 현대 문명을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지만,[3] 청학동은 그렇지 않으며, 현대화가 되어 있어 경운기도 굴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도 사용하고 Wi-Fi도 터지고, 마을에 가스와 전기도 들어오는 등 현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0061713340005200_P2.jpg
남아공 월드컵 응원 장면[4]
파일:external/cfs2.blog.daum.net/download.blog?fhandle=MDgyaHhAZnMy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ODAuanBnLnRodW1i&filename=8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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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청학동 모습들[5]

출처


1982년 TV를 통해 한국야쿠르트 슈퍼100 프리미엄 딸기 장수마을 CF에도 나왔던 곳으로, 청학동 주민들이 모델로 출연하였다. 주민들은 이때에도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을 하였고 댕기머리를 한 소년, 소녀들이 등장하였으며, 소를 통해 농사를 짓는 모습과 서당에서 글을 읽고 있는 학동들의 모습도 공개되었다.

이 CF로 청학동이 유명세를 얻게 되자 청학동에서 서울로 상경한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어린이 드라마 <댕기동자>가 1989년 방영되기도 했다. 자세한 건 매체 문단으로.

2004년 도전 골든벨광복절 특집으로 나왔다.

지리산에 있는 반달가슴곰민가에 내려오기도 한다. 군집붕괴현상이 일어나 피해를 본 적이 있다.

4. 예절 캠프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예절 교육식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방학 기간 동안 청학동 서당에 보내거나, 초등학교 학교 수련회 활동으로 청학동마을로 수학여행을 대신해서 보내는 것이 열풍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청학동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마을의 자체적인 서당 교육과 지방자치단체의 공교육을 모두 경험하게 하는 추세라서, 청학동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는 단기 전입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종종 중등 과정 이상을 진학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한 초중고등 과정 외에도 한학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외부에 있는 대학교까지 진학하기도 한다. 이들은 목적이 목적인 만큼 대부분 졸업 후 청학동으로 돌아오지만. 기사. 반대로 청학동이 위치한 하동군의 학생들은 예절교육 등의 명목으로 학교 차원에서 청학동에 한 번씩 방문한다. 체험 학습 목적이기에 불참에는 제약이 없다. 그마저도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학생 자율에 맡기자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서 사람들이 아는 청학동의 이미지가 얼마 못 갈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링크

5. 악·폐습 및 사건사고

아미시와 마찬가지로 좁은 사회이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아가 예절교육 열풍 이후 일부 학교가 서당을 자처하며 등록하고 학생에 부당 노동을 시키며 이를 청학동마을이 반쯤 방치하며 문제가 더 커졌다.

예절캠프가 한창 유행했을 때는 해병대 캠프처럼 우후죽순 짝퉁들이 생겨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언론과 방송[6]에 탄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들에게 잘못했다는 이유로 점심 밥을 주지 않았고 저녁 식사로는 밥, 간장, 단무지만이 제공되었으며, 이런 부실한 밥을 먹은 학생들이 자연히 밤에 배가 고파 외부에서 음식을 사먹으려 시도하다 걸리자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회초리로 쳐서 앉지도 못하게 했다.[7] 이런 짝퉁 서당들에 대해 알게 된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항의하면서 경찰서에 신고하여 수사를 받는 일들이 있었다.

또한 OnlyOneOf의 전 멤버 박지성(1994)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청학동 예절캠프를 2주 간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TV와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문명과는 단절되고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윷놀이제기차기 같은 민속놀이 뿐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편식 없이 무조건 음식을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울면서 오이를 먹었는데, 소리 내서 엉엉울면 훈장에게 회초리를 맞기 때문에 조용히 숨죽이며 울고 훈장 눈치를 보면서 맛있는 척 연기를 했다고..

이렇게 된 건 감독책임이 있는 교육부와 경상남도교육청, 하동교육지원청, 경상남도청, 하동군청의 근무태만과 유착관계가 매우 심해서 벌여진 일이다. 경상남도경찰청과 하동경찰서에 신고봐야 지리 특성상 유착과 근무태만이 심해 부실·편파수사로 이어진다.

5.1. 학교폭력



2021년 3월 청학동의 한 서당 기숙사에서 심각한 학교폭력이 뒤늦게 드러나서 논란이 되었다. 기사

해당 시설은 훈장도 없는 비인가 대안학교형 시설인데, 서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어 이와 관계 없는 다른 서당의 이미지를 해쳐 피해를 주고 있다. 기사

5.1.1. 남학생 상습적 구타·성적 학대 사건

가해 학생들은 2020년 2월쯤 피해 학생에게 침을 뱉거나 발로 목을 누르는 등 폭행한 뒤 화장실로 끌고 가 꿇어 앉히고 이후 이들 중 한 명이 자위행위를 해 피해 학생에게 체액을 뿌리고 먹게 했으며, 추가로 체벌 받을 때도 어깨를 잡았다는 이유로 소변을 뿌리는 등 폭력을 자행했다. 피해 학생을 엎드리게 한 뒤 입을 양말로 틀어막고 항문에 로션을 바르고 틴트와 변기 솔 손잡이를 넣기도 했다. 창원지검 진주지청에서 지난 12월 가해 학생 두명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법원에 기소했으며, 2021년 5월 재판을 받았다.

이후 피해자는 "서당 관계자와 가해자 부모님이 저희 아버지에게 전화해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해왔으며, 이들은 수능을 준비하고 '쇼미'에 나갈 거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기사

5.1.2. 초등학생 가혹행위, 집단폭행 사건

초등학생 자녀가 기숙사에서 선배들과 동급생에게 가혹행위와 집단폭행을 당한 사례도 폭로되었다. 지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서당 내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동급생 1명과 언니 2명 등 총 3명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

하동교육지원청에 의하면 피해 학생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으로 같은 방을 사용하는 3살, 2살 위 중학생 언니 2명과 동급생 등 3명으로부터 가혹행위와 폭행을 당했다. 피해 학생이 2월 초 기숙사를 떠난 뒤에는 피해 학생 SNS에 욕설을 퍼붓는 등의 사이버 불링 행위도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고 폭행을 가한 학생들에게 서면 사과와 사회봉사, 특별 교육, 보호자 특별 교육 등을 해당 학교에 통보했으나, 피해자측에서 교육청의 처분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며, 경찰이 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기사

5.2. 인권유린



학생 간의 학교폭력 외에도 일부 서당들에서 학생들을 강제로 감금하거나, 학생을 상대로 폭행을 휘두르거나, 부모와의 면회 등을 강제로 제한하고 학생들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감시하거나, 심지어는 부모에게 돈을 추가로 받아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였던 학생도 있었던 모양인지, 마치 첩보 영화처럼 사전에 교통비를 조금씩 모았고 밤 9시에 방범장치와 연결된 전선을 끊어내고 창문을 통해 서당을 탈출하여 청학동에서 10시간을 걸어 산청으로 간 다음, 버스를 타고 진주를 거쳐 경기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사례도 존재했다.

이후 서당에서 학생 부모로부터 폭로된 바에 따르면 일부 부모들이 자신들이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될 경우 서당에 아이를 몇 개월 동안 맡기고 그냥 방치해 버린다고 한다.

결국 이런 사태는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는, 서당의 특수성을 악용한 임원진과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이 빚어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 문제라면 차라리 교육부에 공식적으로 인가 받은 공립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편이 훨씬 낫다.

5.3. 변질


풍교헌 서당[8]을 운영하는 강동의 훈장이 이에 대해 청학동마을 서당들이 변질됐으며, 이번 사태 폭로로 "오히려 서당을 그만둘 각오까지 하고 있다"고 밝히며 "청학동에 서당의 이름을 달고 운영되는 시설이 여덟 군데 있는데, 제대로 잘 돌아가는 곳이 몇 곳일지 자신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 강동의 훈장은 공교육 학교의 산촌 유학 시설과 방학캠프 시설, 학교 밖 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교육 시설 등이 서당 이름을 쓰면서부터 이 서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서당 예절 캠프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변질됐으며[9] 자신의 서당에 항의 전화가 걸려오며, 풍교헌 서당은 해당 학교폭력이 발생한 서당은 아니지만 나도 내세울 것이 없고 나도 평가를 다시 받아봐야 한다"고 자책했다.

6. 매체

7. 출신 인물



[1] 일심교(一心敎)라고도 한다.[2] 자식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아 학교를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당에서 글공부만 시켰다고 한다. 고령자 중에는 공식 학력이 초등학교 중퇴인 경우가 많다. 다만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1948년 제헌헌법부터, 무상교육은 1959년부터 시행되었으므로 실정법률 위반의 소지는 있다.[3] 아미시도 종파에 따라 크게 달라서 쓰는 사람들은 쓴다.[4] 집에 TV가 있어도 월드컵을 보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 기사[5] 하기 사진에 찍힌 라면상자는 '롯데식품공업(현. 농심) 소고기 라면' 으로 1970년 10월 최초 출시한 제품이므로 1960년대가 아닌 1970년대의 사진이다.[6] 2007년 불만제로, 2008년 11월그것이 알고싶다[7] 몸에 멍 자국이나 흉터가 생기면 문제가 될 수 있어서 회초리로 직접 치는 체벌이 아닌 무릎 꿇고 손 들기 같은 얼차려를 주는 등 간접적인 체벌을 시키기도 하였다.[8] KBS 인간극장에도 나온 적이 있다. 유튜브 채널을 당당히 운영하고 있으며, 이 사태에 대에서 발언한 영상도 존재한다. 과거 제자들이 전하는 댓글의 반응으로 보아 풍교헌 서당은 폭력이 발생했던 적이 없다. 대신 과거 제자들이 문제의 서당이 어느 서당인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9] 당연한게 풍교헌 서당훈장인 강동의의 친부 강웅위가 한학자이자 1대 훈장이었다. 아들인 강동의는 2대 훈장. 풍교헌 서당은 6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서당이다.[10] 해당 회차는 청학동 비인가 서당 폭력사건 모티브했다.[11] 다음 로드뷰로 청학동을 둘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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