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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7:45:49

츠부라야 하지메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츠부라야 하지메
[ruby(円谷, ruby=つぶらや)] [ruby(一, ruby=はじめ)] | Hajime Tsuburaya
파일:Tsuburaya_Hajime.jpg
필명 아즈마 쿄이치
[ruby(東, ruby=あずま)] [ruby(京一, ruby=きょういち)]
출생 1931년 4월 23일
일본 제국 도쿄부
사망 1973년 2월 9일 (향년 41세)
일본 도쿄도
국적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
[[일본|]][[틀:국기|]][[틀:국기|]]
가족 츠부라야 에이지 (부)
노보루 (남동생)
히로시(아들)
학력 가쿠슈인
종교 가톨릭
직업 영화감독, 프로듀서, 작사가
소속 츠부라야 프로덕션
서명
파일:빈 세로 이미지.svg
1. 개요2. 상세3. 특징4. 여담5.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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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영화감독, 프로듀서, 작사가.

울트라 시리즈로 유명한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설립자이자 초대 사장인 츠부라야 에이지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 상세

가쿠슈인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가 제작을 맡은 영화 고지라에 참여한 걸 시작으로 영화나 드라마 업계에 종사했으며 1955년에 TBS 홀딩스의 전신인 라디오 도쿄(ラジオ東京, KR)에 입사해 연출부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제작했다. 1963년 TBS가 TV 영화 자체 제작을 위해 영화부를 신설하자 이이지마 토시히로[1][2], 나카가와 하루노스케 등과 함께 영화부로 이적한다.

1964년에는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이사로 취임, 같은 해 TBS 첫 특촬 TV 드라마 울트라 Q를 제작했고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 등 특촬 프로그램의 감독을 맡으며, 기발한 연출 기법이 주위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고 있던 짓소지 아키오에게 영화부로 오라고 제안하는 등 특촬물 제작에 이바지했다.

1970년에 아버지 에이지의 병사로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2대 사장으로 취임. 재정난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던 츠부라야의 경영 재건에 힘썼다. 사장과 감독은 겸임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후 프로듀서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같은 해 경영 악화로 울트라 파이트를 제작했고 이 작품의 인기로 본격적인 특촬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71년에 돌아온 울트라맨미러맨의 프로듀서로서 제작해 제2차 괴수 붐의 불씨가 된다.

이후 울트라맨 에이스에도 참여하지만, 사장 취임 이후 영업이나 접대로 인한 과로로 지병이었던 당뇨병고혈압이 악화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아카사카의 클럽 여자와 재혼하는 등 생활도 엉망이 됐다. 1973년 2월 9일, 일어난 직후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사망했다. 향년 41세.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3년 후의 일이다.

3. 특징

아버지 츠부라야 에이지의 후광에 묻혔지만 하지메도 아버지에게 특촬 기술을 전수 받았으며 세 아들 중 연출 실력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울트라맨은 츠부라야 에이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3] 울트라 시리즈 초기 3부작 (울트라 Q, 울트라맨, 울트라 세븐)은 하지메가 연출과 특수효과에 크게 공헌한 작품이다.[4] 하지메가 건강 이상으로 그만 둔 이후의 작품은 제 1차 석유 파동 등의 악재도 겹치면서 특촬 수준이 눈에 띄게 저하되었다가 츠부라야의 기법을 연구한 후배들이 업계에 들어오면서 울트라맨 80 쯤 되어서 겨우 복구되었다.

100% 유사하진 않지만 짓소지 아키오식 연출을 따라한다.

4. 여담

연출가는 각본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울트라 시리즈에 몸 담은 연출가들에게 각본을 쓸 것을 권했다. 초기 울트라 시리즈의 감독이 필명을 사용해 각본을 쓴 건 그것 때문이다. 다만 이는 감독료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던 젊은 감독들, 특히 유부남이 된 감독들의 수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각본가에 대한 요구는 엄격해 관계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동생처럼 믿고 귀여워하던 킨조 테츠오를 자주 따끔하게 질책하고 써온 각본을 돌려주며 다시 쓰라고 했다고 한다. 울트라맨 최종화 '안녕 울트라맨'의 초기 각본도 젯톤이 컬러 타이머를 직접 뽑아버리고 누운 울트라맨을 짓밟는 전개였는데 그가 어린이들의 히어로를 잔혹하게 죽이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에 현재의 형태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그램 제작의 모습이 그려진 울트라맨 티가 49화 '울트라의 별'에서 킨조에게 이 각본 재미있냐고 되묻고 다시 쓰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의 각본을 담당한 우에하라 쇼조도 츠부야라 하지메 감독에게 그대로 똑같이 당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츠부라야 하지메는 아들 츠부라야 히로시가 연기했다.

아즈마 쿄이치(東京一)라는 필명으로 작사도 했는데 초대 울트라맨 ~ 에이스의 오프닝과 미러맨, 마이티잭, 트리플 파이터, 긴급지령 10-4 10-10, 파이어맨 등 츠부라야 작품의 노래들을 작사했다.

5. 주요 작품


[1] 울트라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인 발탄 성인을 창조한 아버지다.[2] 2021년 10월 17일 흡인성 폐렴으로 인하여 사망하였다[3] 사실 츠부라야 에이지의 진정한 대표작은 고지라 시리즈이다. 울트라 시리즈를 할 때는 감수 담당이었다.[4] 츠부라야 하지메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주로 킨조 테츠오 팬인 사람들이 그런 성향을 보이지만. 울트라 시리즈 팬 중에선 초기 3부작만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