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미츠 세이이치 月光 聖市 Seiichi Tsukimitsu | |||
생일 | 1967년 4월 4일 | ||
나이 | 50세(2권) → 51세(8권) → 52세(15권) | ||
출신지 |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 ||
자격 | 프로 九단 영세명인 | ||
별명 | 월광류 | ||
성우 | 하야미 쇼 | ||
순위전 | A급(통산 32회 랭크) | ||
용왕전 | 1조(통산 22회 랭크) | ||
{{{#!wiki style="margin: 0px -11px" {{{#000 {{{#!folding 【 사카이 일문 관련 관계 열기 / 접기 】 | 스승 | 사카이 쥬조 九단 | |
사제 |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 | ||
사매 | 오가 사사리 여류 명예 초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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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왕이 하는 일!의 등장인물.작중 초일류 기사 중 한 명으로 그 커리어가 전설이라 불릴만 하다. 사상 두 번째로 중학생 프로기사가 되었고, 명인 타이틀을 여러번 따내서 영세칭호인 17세 명인 칭호를 받은 상태다.[1] 또한 통산 7대 타이틀 획득 27회&일반 기전 우승 22회, 순위전과 용왕전에서도 현재까지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야이치의 언급에 따르면 상당히 공격적인 스타일의 쇼기를 두는걸로 유명해 그의 쇼기는 월광류(月光流)라고 불리는 모양.[2] 특히 『한수 버리기 각교환』이란 초고난이도 전법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서 사용한 선구자로 불리고 있으며, 쿠즈류 야이치가 한수 버리기 각교환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게 된 계기도 츠키미츠 회장을 동경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20대에 중병을 앓아 실명한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성적을 냈다는 것! 실명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아직까지 정상급 기사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작중 그에 대한 존경은 대단한 수준이고, 특종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기자들조차 그가 막아서면 아무말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커리어만 놓고보면 세계관 최강자인 명인 다음가는 위치로 작중에서 '눈이 멀지 않았다면~' 하는 가정으로는 이쪽이 더 강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꽤나 많다고. 젊었을 적엔 명인과 라이벌 구도를 세우며 타이틀 쟁탈전을 벌였는데, 7대 타이틀 중 6개를 한해에 모두 획득한 명인과 마지막 남은 옥장 타이틀을 놓고 대결했을 때 극적으로 승리해 명인의 7관왕을 저지한 게 유명하다.[3] 참고로 눈이 안보이기 때문에 대국시 쇼기말을 놓는데 이런저런 불편한 점이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비서인 오가 사사리가 대리형식으로 말을 움직여 준다고 한다. 상대의 착수를 본 오가가 설명을 해주면, 츠키미츠가 자신이 착수할 곳을 알려주는 방식. 다른 기사들의 대국도 오가가 말의 움직임을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관전한다.
현재는 일본쇼기연맹 회장(日本将棋連盟会長)으로서 쇼기계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래서 본적으로는 관서쇼기연맹 소속이지만 관동 쪽에 머무르는 일도 많다.[4] 작중에선 오이시 미츠루&쿠즈류 야이치와 함께 관서 소속 프로기사들 중 최강의 3인방으로 불리고 있다.[5]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의 스승인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에게는 같은 스승을 둔 동문 사형이기도 하다. 즉, 주인공 일행과는 일문 가족관계로 비유하면 삼촌조카[6] 정도의 사이가 된다. 50세가 넘었지만 나이에 비하면 굉장한 동안. 그래서 케이카는 사적으로 오빠라고 부른다.
2. 작중 행적
첫등장은 1권. 키요타키 코스케의 회상을 통해 등장하는데, 10년 전 엄청난 재능을 지닌 내제자 쿠즈류 야이치를 가르쳐 최고의 쇼기 기사로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며 츠키미츠에게 상담을 요청하는데,[7] 야이치가 키요타키를 동경하여 쇼기 기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니 그 마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츠키미츠 명인도 후배인 야이치를 미래 쇼기계를 이끌어나갈 거목으로 평가하고 있기에 매권마다 여러가지 도움을 준다. 다만, 쇼기협회 일처리를 편하게 하려고 이용해 먹는 측면도 있다(...)[8]
2권에선 쿠즈류 야이치가 두 번째 제자로 야샤진 아이를 들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7년 전 아마추어 명인 타이틀을 딴 야샤진 타카히로(=야샤진 아이의 아버지)와 기념대국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곤 제자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아쉽게도 타카히로가 프로기사의 길을 걸으면 그 가혹함에 버티지 못할거 같다며 거절했지만, 그 뒤에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많이 챙겨준 모양. 특히 둘간의 기념대국에서 기록 담당을 맡았던 쿠즈류 야이치(당시 장려회 6급의 초등학생)의 천재적인 재능에 반해버린 타카히로가 훗날 딸이 여류기사의 길을 택한다면 스승은 야이치 밖에 없다며 입버릇처럼 말했고,[9] 이걸 잘아는 츠키미츠가 야이치의 장려회 대국 기보를 몰래 제공해주었다고 한다.[10] 이후 본편 시점에서 타카히로의 아버지이자 현재 야샤진 아이의 보호자인 야샤진 코텐의 요청을 받고 야이치에게 지도대국을 나가도록 주선해 접점을 만들어주고, 야샤진 아이를 제자로 들이는 것에 망설이는 야이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제자로 들이는 쪽으로 만든다. 얼마 뒤 야이치가 야샤진을 자신의 제자로 널기로 결의하고 츠키미츠와의 공식전 자리에서 "제가 이기면 야샤진 양을 제자로 받아가겠습니다."라는 조건을 내걸자 진심으로 상대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며[11] 치열한 대국을 이어간다. 사실 억지에 가까운 물밑작업으로 이렇게 되도록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야이치가 이기면서 야샤진 아이가 그의 제자로 들어가 목적을 이룬다.
이후에도 간간히 등장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명인과의 용왕전 제4국에서는 영세7관 및 타이틀 획득 100회라는 위업을 코앞에 둔 명인에게 주눅들 야이치를 어느정도 편들어주기도 했다.[12] 또한 장려회 3단에 승단한 긴코에게 매스컴의 관심이 몰리자 그들을 막아서기도 했다. 11권에선 자살쇼를 벌이던 긴코를 말리던 야이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랑 같이 있지 않냐고 물어본다. 대국 중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연맹 직원에게 소라 긴코가 스마트폰을 맡겼는데, 대국이 끝나도 찾아가지 않고 비오는 날에 우산도 안쓰고 뛰쳐 나갔다는 목격담을 듣고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것. 그래서 야이치에게 긴코를 데리고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오라며 여관방까지 잡아주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이유는 명인의 국민영예상 수상이 감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일본 쇼기계의 큰 이벤트가 될 일인데, 만약 긴코가 자살미수사건을 일으켰다는 언론을 통해 나오면 아주 큰 난리가 나기 때문에 쇼기연맹 회장으로서 과감하게 나섰다고 설명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야이치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긴코가 첫 여왕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의 연맹 회장은 세속적인 인간이었는지 긴코에게 공적인 무대로 나올 것을 케이카나 야이치를 협박(?) 재료로 은근히 요구하는데 이후 츠키미츠가 현역 A급 기사로서 연맹 회장에 나서고 자오 9단이나 명인이 지지하면서 회장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소라 긴코 여왕은 타이틀 보유자나 장려회 회원인데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그만 좀 괴롭히라는 식의 발언이었다. 종합해보면 소라 긴코를 지켜주기 위해 쇼기계 거물들이 나선 형국.
3. 기타
모티브가 된 인물은 17세 명인 타니가와 코지(谷川浩司) 九단. 용왕 4회, 명인 5회, 왕위 6회, 왕좌 1회, 기왕 3회, 기성 4회, 왕장 4회 타이틀을 딴 경험이 있는 8~90년대 최고의 쇼기 기사로 이 작품이 첫 발매된 2015년 당시 일본쇼기연맹 회장이였던 부분이나, 역대 두 번째 중학생 프로기사로 데뷔&명인의 모델인 하부 요시하루 九단과 공식전에서 150번 이상 맞붙을 만큼 세기의 라이벌로 불렸다는 커리어가 동일하다. 특히 1994년에 하부 九단이 용왕/명인/왕위/왕좌/기왕/기성의 6개 타이틀을 차지하고 마지막 남은 왕장 타이틀 보유자인 타니가와 九단에게 도전했는데, 타니가와 九단이 4승 3패로 극적으로 승리해 역대최초 7관왕을 저지시킨 에피소드는 위에 언급된 내용과 판박이다.[13][14]
[1] 즉, 츠키미츠는 명인 타이틀을 적어도 5회 이상 획득했다는 의미이며, 이걸 세계관 최강자인 명인보다 더 먼저 이뤄냈다.[2] 보면 바로 알겠지만, 그의 성인 츠키미츠(月光)의 한자 독음에서 착안한 것이다.[3] 참고로 이때 이미 시력을 잃은 시점이었다. 츠키미츠는 원래 타이틀을 5개 보유하고 있었는데, 급격히 강해진 명인한테 타이틀을 하나하나 뺏기고 최후의 타이틀, 마지막 세트에서 7칠계라는 신의 한 수로 명인의 7관왕을 1년 늦췄으며, 이 7칠계는 쇼기 역사상 최고의 한 수로 유명해졌다.[4] 6권에서 새해 첫 수 의식에서도 츠키미츠 회장은 관동에 가야 했다.[5] 순위전 A급 랭크 혹은 타이틀 홀더가 이 3명 밖에 없다.[6]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큰아버지와 조카 정도 된다.[7] 이 당시 키요타키 코스케는 야이치를 츠키미츠 세이이치의 제자로 맡기려 했다고 한다. 즉, 세이이치가 거절하지 않았으면, 야이치는 세이이치의 제자가 됐을 수도 있었다.[8] 5권의 용왕전 4국 때 히나츠루 아이의 본가인 히나츠루 료칸에서 야이치와 아이가 정식으로 스승-제자관계를 맺는 의식(인데 아무리 봐도 약혼식인)을 치렀다. 목적은 급한 스케줄이 생겼을 때 장소를 제공해주겠다는 료칸 여주인(아이의 어머니)의 딜이 있었기 때문. 실제로 급하게 진행된 긴코와 야샤진 아이의 여왕전의 2국 장소로 사용되었다.[9] 심지어 유언도 "너는 쿠즈류 야이치 군의 제자가 되는 거야" 였단다.[10] 원칙적으로 장려회 내 대국 기보는 외부 반출 금지다.[11] 관서쇼기회관 특별 대국실인 어상단의 방 벽면엔 역대 영세명인들의 휘호가 걸려있는데, 츠키미츠는 평소엔 자신의 족자를 떼놓고, 특별한 경우에만 이걸 건다. 야이치가 타이틀 전에서나 입는 기모노를 입고 나오자 이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앞서 설명한 족자를 걸면서 응수.[12] 용왕전 네번째 대국이라는 중요한 일정 중에 갑자기 전야제 행사를 주관해주기도 했는데, 당시 세이이치와 야이치 가족의 태도를 볼때 어느정도는 야이치의 편을 들어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타이틀 획득 100회와 영세7관 칭호로 인한 주목도로 인해 야이치가 어느정도 주눅들 조건이었기 때문. 용왕전 연패 이후 야이치한테 화풀이를 당해 야이치가 이 대국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있는 히나츠루 아이가 그런 요인없이 갑자기 약혼식을 올릴 정도로 속이 없는 소녀도 아니고. 야이치는 이 문제에 대해 세이이치가 히나츠루 료칸을 쇼기 대국장으로 이후로도 활용하기 위해 매수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오이시 미츠루와 카라코 쇼지의 평에 따르면 세이이치는 오히려 그런 문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소라 긴코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강경하게 매스컴을 제지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 이로 인해 명인은 갑작스럽게 용왕 주역의 행사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고, 야이치는 명인의 기분을 살피고 의외로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13] 참고로 하부 九단은 6개 타이틀을 다 지키고 다음년도에 왕장 타이틀을 탈취해 7관왕을 달성했다.[14] 바둑에서 쇼기의 타니가와 코지처럼 1인자의 전관왕 도전을 최후에 막은 기사를 꼽는다면 1994년 13관왕을 달리던 이창호의 전관왕(14관왕) 도전을 왕위전에서 4-2로 막은 유창혁을 꼽을 수 있다. 참고로 바둑 전관왕은 조훈현이 1980년(9관), 1982년(10관), 1986년(11관) 무려 3번이나 달성했다. 그러니까 타니가와 코지는 쇼기판 유창혁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