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又四郎正陰)는 칸 히라우이몬 미치나가(菅平右衛門達長)의 서자였다. 그는 일본 전국시대의 인물이었으며 아와지 국 소숙이었다. 그는 다른 말로 마타시(又四郎)라고도 불렸다.
그는 1592년 임진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에 아버지인 칸 히라우이몬 미치나가(菅平右衛門達長)와 함께 조선에 참전하였다. 안골진(安骨陳)에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인 칸 히라우이몬 미치나가(菅平右衛門達長)는 칠천량 해전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보이며 그의 아들인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도 참전했을 것이 유력하다. 그는 어란진에 주둔을 했으므로 벽파진 해전에 지휘 장수로 출전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순신 함대의 분전에 패하기도 했다. 선조실록에 기록된 벽파진(정)해전에서 마다시는 함선에 홍기를 달고서 참전했는데 항왜 준사가 이를 알아보기도 했다.
(음력 9월 7일) 우리의 여러 배들이 겁을 집어 먹는 것 같아 다시금 엄명을 내리고,내가 탄 배가 곧장 적선 앞으로 가서 지자포를 쏘니 강산이 진동했다. 그랬더니 적의 무리는 당해 내지 못하고 네 번이나 나왔다 물러났다 하면서 포를 쏘아댔다. 밤 한시가 되니 아주 물러 갔다. 이들은 전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얻은 자들이다.
난중일기
난중일기
난중일기에도 벽파진에서 교전을 벌인 왜군이 한산도의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에게 패배를 준 부대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칠천량 해전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므로 마다시는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又四郎正陰)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 "조선전역해전도"를 보고서 구루시마가 원균의 배를 접수했다는 말을 확인해보니 돛대에는 "李"라는 이순신의 성씨가 있는것으로 봐서 칠천량해전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는 어란진에 주둔했을 때 그곳의 관기(官妓)였던 어란 낭자와 연을 맺게 되며 사와무라 하찌만다로(澤村八幡太郞)의 유고집에도 나타나 있다. 어란 여인이 이순신의 숨겨진 첩자였는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임하도 앞바다 해전(명량)의 승리에 기여를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란 여인은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가 죽자 다음날에 투신을 하였다.
강항의 기록에는 "래도수(來島守)가 전라우수영에서 전사하자 그 아우가 그의 성을 차지하고 살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직품 승계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미치후사에게는 남동생 무라카미 미치요시(村上通清)가 있지만 그는 구루시마 성씨를 버렸기에 직품 승계를 받을 자격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는 서자(첩의 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다이묘 승계와는 관련이 없이 본인의 직품을 아우(서자)에게 물려줄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이것이 옳다면 마다시는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又四郎正陰)가 된다. 다만 일본측 기록에는 강항의 기록을 오인으로 보고 있다.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又四郎正陰)는 1597년 음력 9월16일 명량 해전에서 전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