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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11:48:50

케네디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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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T )

1. 개요2. 연표

1. 개요

케네디 가문에 전해내려온다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 별칭은 케네디가의 비극(Kennedy tragedies)이다. 알다시피 케네디가에는 불행을 겪은 사람이 많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사례는 역시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그의 동생인 로버트 F. 케네디. 물론 도시전설이지만 케네디 전 대통령과 그 형제자매만 두고 보면 9명중에 2명은 20대에, 2명은 40대에 비명횡사했고 한명은 살아도 사는게 아닌 삶을 살았으니 그야말로 저주란 이야기가 나올 법 하다. 다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대가족은 구성원이 많기도 했고[1], 교통사고나 이혼 등 어느 대가족이나 겪을 만한 불행들은 저주라고 끼워 맞춘 감이 있다.

2. 연표

타임라인
[1] 케네디 가문은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계라 대체로 자식을 많이 낳았고, 몇 대에 걸쳐 내려오며 후손이 매우 많아졌다. 외손들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다.[2] IQ 60~70의 지적장애. 사람들은 그가 외조부모가 6촌간 이어서 우생학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자폐증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자폐증의 특성상 성욕을 참지 못하고 그냥 밖으로 나가서 아무하고나 관계를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인 패트릭은 로즈메리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정계에 진출시키겠다는 계획이 이미 있었던 그였기에 집안의 명예를 위해 전두엽 절제술이나 정신병원에 집어넣는등 최대한 장애를 가진 딸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았다.[3] 실제로도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도 한다. 굳이 따지자면 감정 조절에 서툴러서 쉽게 난폭해지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4] 실제 후작이 아니라, 데번셔 공작(Duke of Devonshire)의 후계자가 받는 예우칭호[5] 캐슬린의 부모는 모두 아일랜드 대기근 때 미국으로 이민간 아일랜드계의 후손이었고, 남편은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라, 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수백년에 걸친 민족감정이 문제가 되었다. 아울러 케네디 부부가 독실한 신자였던 점도 딸이 성공회 신자인 영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결혼식 때 신부 가족 중에서는 유럽에 머물던 큰오빠 조셉 P. 케네디 주니어만 참석했다.[6] 요르단계 미국인. 전설적인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저서인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람을 면담한 후 전형적인 편집증으로 인해 이러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분석.[7] 이 날은 마침 로버트 케네디의 장녀이자 첫째인 캐슬린 케네디의 결혼식날이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신부의 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했으므로 병원에 있다가 부리나케 결혼식장으로 향했다고 본인의 자서전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