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rag–Petersson 크라그-피터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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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소총 | ||
| 원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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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876년~1900년 | ||
| 개발 | 올레 헤르만 요한네스 크라그 악셀 제이콥 피터슨 | ||
| 개발년도 | 1872년 | ||
| 생산 | 칼 구스타프 조병창 칼 요한스 베른 콩스베르그 조병창 | ||
| 생산년도 | 1876년~1881년 | ||
| 생산수 | 1,137정 (프로토타입 포함) | ||
| 사용국 | | ||
| 세부사항 | |||
| 탄약 | 12.17×44mm 림파이어 | ||
| 급탄 | 10발들이 관형탄창 | ||
| 작동방식 | 폴링 블록 | ||
| 총열길이 | 951mm | ||
| 전장 | 1,360mm | ||
| 중량 | 4.4kg | ||
| 발사속도 | 26.4RPM[1] | ||
| 탄속 | 381m/s | ||
| 유효사거리 | 900m | }}}}}}}}} | |
1. 개요
노르웨이[2]에서 1876년에 도입한 연발 소총으로, 정규군에 제식 소총으로 도입된 최초의 연발 소총 중 하나이다.
2. 상세
노르웨이군 장교이자 총기 제작자였던 올레 헤르만 요한네스 크라그와 스웨덴 출신의 공학자이자 크라그의 친구였던 악셀 제이콥 피터슨이 폴링 블록 액션을 바탕으로 한 연발 소총을 1872년에 설계했고, 자신들의 소총을 노르웨이/스웨덴 포병 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는 디자인을 좀 더 개선해 달라는 피드백을 주었고 그에 따라 이듬해인 1873년에 제출된 모델은 위원회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호평받은 부분은 소총의 정확성과 단발 사격 시 분당 19발까지 사격 가능한 높은 발사 속도, 탄피 배출기의 신뢰성[3] 및 전반적인 총기의 품질 등이었다.그러나 포병 위원회는 사용하는 12.17×44mm 림파이어 탄약이 이미 구식이라는 점, 그리고 야만 M1884 소총을 이미 테스트 중이라는 점 때문에 좋은 평을 받은 크라그-피터슨을 노르웨이군이나 스웨덴군에 도입하는 것을 권고하지 않았다. 시험에 사용된 크라그-피터슨 30정은 노르웨이 근위대에 지급되어 호평을 받았다. 비록 노르웨이나 스웨덴 육군에서는 채용에 실패했지만 노르웨이 해군 제식 소총으로 도입되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여전히 구식 캄머라더 소총을 사용 중이던 해군 입장에서는 야만 M1884 소총으로 채택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육군에 밀려 최소 10년 간은 무기 현대화가 밀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1876년부터 1881년까지 총 975정의 크라그-피터슨 소총이 노르웨이 해군에 도입되었는데, 생산은 노르웨이에 위치한 콩스베르그 조병창이 아닌 스웨덴에 위치한 칼 구스타프 조병창과 칼 요한스 베른 공장에서 진행되었다.
크라그-피터슨 소총은 마티니-헨리 소총과 같은 피바디 액션의 폴링 블록 소총으로, 대부분의 폴링 블록 소총이 단발로만 작동하는 데 반해 총열 하부에 관형탄창을 부착해 연발로 사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후방의 해머를 당기면 브리치블록이 관형탄창으로부터 차탄을 끌고 올라옴과 동시에 사용한 탄피를 배출했다. 다만 자동으로 차탄이 약실에 들어가는 구조는 아니라서 손으로 차탄을 약실까지 밀어 넣어 줘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엄지손가락 피부가 약실 급탄 장치에 찝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연사력도 나쁘지 않고 정확도도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그-피터슨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도태되었다. 덴마크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 채용을 위한 테스트가 시행되었으나, 결론적으로 노르웨이 해군을 제외하고 채택한 국가는 없었다. 1900년에 이르면 완전히 도태되었다고 판단되어 민간에 불하되었으며, 민간에 불하된 대부분의 크라그-피터슨 소총은 여러 개조를 거쳤다. 현재에 이르러 원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크라그-피터슨 소총은 극히 희귀하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