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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위구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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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위구르
1. 개요2. 민족사적 관계3. 지리적 관계4. 문화적 관계5. 키르기스스탄 내 위구르인 인구6. 관련 문서

1. 개요

키르기스스탄위구르의 관계.

2. 민족사적 관계

중세 위구르 칸국은 투바 지역에서 남하한 키르기스인들에 의해 840년 멸망하였고 위구르인 난민들은 투르판 분지와 타림 분지로 이주하여 고창회골을 건설하고 오늘날 위구르인들의 기원이 되었다. 키르기스는 카라 키타이와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에도 참여했으며, 상당수가 13세기 후반 카이두의 군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15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해당하는 이식쿨 호 지역은 키르기스인들의 근거지가 되었고 이들은 오이라트의 팽창에 맞서 이 지역을 방어했다.

3. 지리적 관계

신장 위구르 지역과 접한 키르기스스탄 동부에도 일부 위구르족들이 거주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키질수 키르기스 자치주에는 상당수의 키르기스인들이 거주한다. 문화 대혁명 와중에 키르기스인 인구 상당수가 소련의 키르기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탈주하면서 비율이 감소하였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키르기스인들이 동튀르키스탄에 남아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카자흐스탄에 비하면 정치적 권위주의가 많이 약해졌지만, 경제적 문제 때문에 중국에게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4. 문화적 관계

키르기스어와 위구르어는 모두 튀르크어족에 속한다. 키르기스인과 위구르인 모두 이슬람교 순니파 중에서도 하나피파 마드하브를 따르고 언어도 유사점이 적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이런저런 공통점이 적지 않은 편이다.

키르기스인들과 중세 카라한 칸국의 문인 유수프 카스 하지브를 자국의 문인으로 기념하고 있는데, 유수프 카스 하지브가 공부한 곳은 카슈가르이지만 출생지는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일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원래 유수프 카스 하지브는 키르기스인이 아니지만,[1]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타이납에 있던 유수프의 무덤을 폭파한 것을 계기로 키르기스스탄에서 그를 대신 기념하고 위구르인들이 이를 묵인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5. 키르기스스탄 내 위구르인 인구

오늘날 키르기스스탄에는 약 6만여 명 규모의 위구르인들이 거주하고 있다.키르기스스탄 정부 통계 이들은 대개 문화대혁명 시기 전후하여 소련으로 탈주했다가, 소련 해체 이후 키르기스스탄 국민이 된 경우이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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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르기스인들이 오늘날 발라사군 일대로 이주한 시점은 14~15세기 이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