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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1:21:48

발라사군

카라한 칸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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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카를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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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사군 그래픽 복원 영상
파일:burana.jpg

1. 개요2. 역사3. 부라나 미나렛4. 기타

1. 개요

키르기스어 Баласагун / Баласагын
영어 Balasagun
한자 八剌沙袞 / 裴羅將軍

키르기스스탄 북부의 중세 도시 유적. 토크모크 남쪽 10km 지점의 평원에 위치한다. 소그드인들의 도시로 세워져 카를루크카라한 칸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서요(카라 키타이) 역시 이곳 근처에 수도를 세웠다. 시인 유수프 발라사구니가 이곳 출신이다.

8~12세기간 추 강 유역의 중심 도시로 번영하던 발라사군은 1210년 호라즘 왕조에게 파괴되었으며, 이후 14세기에는 버려진 도시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카라한 시기의 부라나 미나렛 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2. 역사

파일:47-39-1.jpg

7세기 소그드인의 도시로 세워져 실크로드 (오아시스로) 교역의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중국 사서에는 배라장군성(裴羅將軍城)으로 기록되었다. 발라사군은 빠르게 발전하여 서돌궐의 수도였던 기존 추강 유역의 중심 도시 수야브를 대신하는 일대의 정치, 경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소그드인들의 종주국이던 튀르기시카를루크우마이야 왕조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저지하였다.

다만 10세기 들어 카를루크 유목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그렇게 세워진 카라한 칸국의 사투그 보그 칸은 발라사군을 수도로 삼았다. 이로써 튀르크화가 시작되었고, 소그드어는 11세기까지 쓰이다 튀르크어에 밀려났다. 이 시기 첫 무슬림 튀르크어 작가 유수프 발라사구니가 쿠타드구 빌릭을 쓰는 등 활약했다. 1134년 요나라 부흥을 꾀하던 야율대석이 발라사군을 점령한 후 요나라(서요)를 재건하였다. 야율대석은 인근에 호사알로타(虎思斡魯朵)[1]를 세워 수도로 삼았다.

1210년, 호라즘 왕조의 샤(Shah)[2] 알라 웃 딘 무함마드가 점령한 후 4만여명의 주민이 살해되었다. 따라서 반(反)호라즘 감정이 팽배했기에 1218년 몽골 제국군에게 크게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였다. 몽골인들은 발라사군을 예쁜 도시라는 뜻의 '고발릭' 이라고 불렀다. 다만 차가타이 칸국 시기에 발라사군은 쇠퇴, 14세기부터는 사실상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3. 부라나 미나렛

파일:tailormade-and-group-tour-kyrgyzstan-highlight-balasagun-and-the-burana-tower-3.jpg

24m 높이를 자랑하는 부라나 미나렛. 카라한 칸국기 건축물로, 유적지 서쪽 끝에 위치한다. 본래 46m에 달했으나 전란과 지진으로 반만 남았다. 1970년대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다.

4. 기타

이름이 비슷하여 헷갈리기 쉬운 위구르 제국의 수도 카라발가순 (오르도 발릭)은 몽골 평원 한복판인 카라코룸 근처에 있다.


[1] 튀르크어로는 코즈 오르두(Koz Ordu)[2] 술탄(Sultan)으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