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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8:59:14

키키 카마레나

키키 카마레나
Kiki Camarena
파일:Enrique-camarena1.jpg
본명 엔리케 카마레나 살라사르
Enrique Camarena Salazar
출생 1947년 7월 26일
멕시코 메히칼리
사망 1985년 2월 9일 (향년 37세)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속 파일:미해병대.png 미합중국 해병대(전역/1970년)
파일:1200px-Seal_of_the_United_States_Drug_Enforcement_Administration.svg.png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

1. 개요2. 생애3. 죽음4. 사후5. 대중문화에서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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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EA의 요원. 1985년 2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마약 운반 카르텔에 붙잡혀 고문당한 이후 살해됐다. 그의 죽음은 1980년대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DEA의 권한 확대, 과달라하라 마약 카르텔의 멸망을 가져왔다. 키키가 살해당한 이후 미국이 자국 요원의 순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목격한 다른 남미 카르텔들은 미국 DEA 요원들이나 CIA 요원들을 건드리면 아주 X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키키를 살해한 중간보스들은 전부 붙잡혀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했지만 그중 라파엘 카로 퀸테로(Rafael Caro Quintero)가 2013년 멕시코 교도소에서 석방돼서 미국-멕시코 관계에 악영향을 주었다. 그는 FBI 10대 수배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현상금 2천만 달러가 걸렸다. 2022년 7월 멕시코 당국에게 다시 체포되었다.#

2. 생애

1947년 7월 26일, 멕시코 메히칼리(Mexicali)에서 태어났다. 메히칼리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미국 캘리포니아멕시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메히칼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칼렉시코(Calexico)로 이민을 갔다. 가난했던 키키 가족은 미국에서도 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그의 형 에두아르도는 가난을 탈출하고자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베트남전에서 1965년에 전사했고, 다른 형 에르네스토는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등 나락에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키키는 이런 상황을 타파할 수단은 군에 입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형이 순직했던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고, 4년 뒤 1970년에 무사히 전역했다.

전역 후 칼렉시코로 돌아와 일반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임페리얼 카운티 마약전담반(ICNTF)의 위장 근무를 하는 특수 요원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3년에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이 창설되면서 스페인어 구사자들을 뽑았는데, 키키는 DEA에 들어가 칼렉시코 지사에서 특수요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의 여동생 미르나 또한 DEA에 같이 입사해 비서로 일했다.

1977년, 캘리포니아 프레즈노[1] 지사로 발령난 키키는 산 호아킨 밸리 지역에서 위장 요원으로 활약했는데, 푸에르토 리코 발음과 멕시코 발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좋은 평을 받았다.

1980년, 미국 프레즈노에서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옮겨 일하고 있던 동료와 친한 친구가 키키에게도 과달라하라에 올 것을 제안했고, 당시 부인과 세 아들들이 있었던 키키는 가족들이 나은 환경에서 지내게 하고자 학군이 비교적 좋았던 과달라하라에 지원했다고 한다. 또한 DEA에서 승진을 하려면 해외근무가 중요했다.

3. 죽음

1984년 멕시코군은 DEA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1천 헥타르에 달하는 마리화나 밭을 태우는 데 성공했다. 80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본 과달라하라 카르텔은 키키가 DEA 잠복요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달라하라 카르텔은 이 사건을 계기로 DEA에 대해 어마어마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이후 1985년 2월까지 무려 7명의 미국인들이[2] DEA 요원으로 간주되어 납치 후 고문, 살해당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7명이나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들은 점차 자신감을 얻었고 다음 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1985년 2월 7일 대낮에 괴한들이 키키를 불과 대사관 몇십미터 내에서 납치했다. 후에 밝혀지길, 이들은 단순히 과달라하라 카르텔시카리오들이 아니라 라파엘 카로 퀸테로의 지휘를 받는 현직 멕시코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과달라하라 서부에 위치한 881 Lope de Vega Jardines del Bosque의 한 주택에 키키를 감금한 후 30시간에 걸쳐서 고문한 뒤에 살해했다.[3]

살해된 키키는 엘 차포가 이끄는 뒷처리 팀, 일명 '로스 도르미도스'에 의해 로페 데 베가 뒷편에 있는 '프리마베라' 숲에 매장되었다. 참고로 이때 키키의 정보원이었던 알레한드로 사발라 역시 키키와 함께 고문당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함께 생매장당했다.

4. 사후

키키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키키의 생환을 위해 멕시코 국경을 폐쇄하는 등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적대던 멕시코 정부는 라파엘 카로 퀸테로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무장한 DEA 요원들이 현지 지휘관과 함께 공항에서 출국하던 카로 퀸테로와 대치했으나 현지 지휘관은 그는 카로 퀸테로가 아니라는 택도 없는(...) 변명을 하면서 눈앞에서 풀어줬다.[4] 발똥에 불이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던 카르텔 조직원들은 키키와 사발라의 시신을 파내 다른 주에 유기했다.

키키의 처참한 시신이 발견되자 미국 정부는 더욱 공분했고, 멕시코 정부는 한층 더 양보했다. 키키에 대한 직접적인 살해 지시를 내린 에르네스토 폰세카 카리요(Ernesto Fonseca Carrillo), 라파엘 카로 퀸테로(Rafael Caro Quintero)가 체포된 것이다. 이들은 약 40년형을 선고받고 멕시코 연방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그들 모두 키키의 살해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면서 미국으로 인도되는 것을 피했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 정부와 카르텔 사이의 깊은 유착관계 역시 미궁에 빠져있었다.

키키가 사망한 후 4년이 지났음에도 수사에 아무런 진전이 없자 DEA는 헥터 베레예즈[5]를 총 책임자로 삼아'작전명 레옌다'를 실행했는데, 이는 DEA 창설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수사작전이었다. 헥터는 폰세카 카리요와 함께 체포당했던 경찰 펠릭스 고도이를 포섭하여, 당시 도주중이던 키키 카마레나 납치에 가담한 다른 두 경찰의 증언을 얻어 내는데 성공해 가담자들을 하나 둘 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헥터는 워싱턴으로부터 사건 해결을 위한 초법적인 권한-이를 테면 납치-을 부여받았다.

제일 먼저 체포당한 것은 키키의 고문을 책임졌던 의사들인 움베르토 알바레즈 마차인(Humberto Álvarez Machaín)과 하비에르 바스퀘스 벨라스코(Javier Vásquez Velasco) 였다. 이들은 헥터에게 매수당한 멕시코 현직 경찰들에 의해 납치되어 미국으로 넘겨졌다.

다음 타겟은 키키가 납치당해 고문당한 로페데베가의 소유주 루벤 수노 아르세였다. 그는 전직 멕시코 대통령과 사돈지간이자 멕시코 마약 카르텔 관계자들과 깊은 관계에 있는 인물로, 멕시코 정부와 카르텔 사이의 공모관계를 폭로해줄 핵심 증인이었다. 그런데 재판에서 DEA 요원이자 키키 카마레나의 상관 하이메 쿠이켄달이 수노 아르세에 대한 반대 증언을 하면서 재판은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 정부는 마차인 박사의 '불법' 납치를 문제 삼아 미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미국 법원은 정부의 항의로 마차인 박사를 석방해 미국으로 보냈고[6], 레옌자 작전 책임자 헥터 베레예즈는 불법체포 혐의로 멕시코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으며 좌천되어 워싱턴 DC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신세가 되었다.

비록 레옌다 작전이 흐지부자하게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키키 카마레나의 죽음 이후의 일련의 미국의 보복으로 인해 마약판매상들은 절대 DEA 요원에 대해 위해를 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나르코스에서는 DEA는 키키 카마레나를 일종의 수호신처럼 여기는 것으로 묘사했다.

5. 대중문화에서

나르코스: 멕시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배우 마이클 페냐가 연기했다.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파내기 위해 라파엘의 대마초 밭을 잠입해 정보를 캐고 멕시코 경찰과 함께 대마초 밭을 불태우는 등 열혈파 요원으로 그려진다. 이후 시즌 2에서는 그가 살해당한 뒤 DEA 요원들이 멕시코에 잠입해 납치 공모자들을 추적하는 레옌다 작전을 펼치는 것이 주요 스토리로 그려진다.

그 이후 시점인 나르코스에서도 언급된다. 키키가 일종의 수호자같은 상징으로 DEA 요원들을 지켜준다는 언급이 있으며 주인공인 하비에르 페냐가 시즌 3 마지막회에서 자신의 첫 임무가 실종된 키키 카마레나를 찾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10여년이 흐른 시점[7]임에도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는 키키 카마레나 살인 사건을 심도깊게 다룬 The Last Narc가 있다. 이 다큐에서는 키키의 납치 배후에 단순히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나 부패한 정부 관리 수준이 아닌 미국 정부의 개입이 있음을 시사한다. 콘트라 반군들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의회의 예산안 부결로 막히자 CIA가 마약 카르텔과 공모해 마약을 팔아 콘트라 반군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해왔다는 것. DEA 과달라하라 지부 또한 카르텔의 돈을 받고 있었으며 키키가 CIA의 공모를 재보할 까봐 우려한 이들이 키키 납치를 사주했다는 것이 이 다큐의 주장이다.

6. 여담



[1] 멕시코 국경 지대가 아닌 캘리포니아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2] 선교하러 온 여호와의 증인이나 그냥 운없게 카로 퀜테로가 운영하는 식당에 잘못 들어온 관광객들이었다.[3] 의사와 약물을 동원해 기절하지 못하도록 고문했다. 부검 결과 두개골에서 철근이 뚫고 지나간 구멍의 흔적을, 갈비뼈에서 골절을 발견했다.[4]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 1에도 이 과정이 잘 묘사된다.[5]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 2의 주인공 월트 브레슬린의 모델이 된 사람으로 DEA 베테랑 수사관이었으며 현재는 작가로 활동하는 인물이다.[6] 후에 그는 1993년 불법 체포에 대해 DEA 4명과 민간인들에 대해 고소하였고 미 법원에서는 이를 인정하여 승소하였다.[7] 나르코스 멕시코의 배경은 1980년대 중후반, 나르코스 시즌 3는 1990년대 중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