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36363><colcolor=#fff> 토머스 채터턴 Thomas Chatterton | |
필명 | 토머스 로울리 Thomas Rowley |
데키무스 Decimus | |
출생 | 1752년 11월 20일 |
영국 잉글랜드 브리스틀 | |
사망 | 1770년 8월 24일 (향년 17세) |
영국 잉글랜드 홀본 | |
직업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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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최연소 시인.2. 생애
1752년 잉글랜드 브리스틀에서 태어났으며,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1]는 채터턴이 태어나기 3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채터턴은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진아 취급을 받았고, 하루의 대부분을 다락방에서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가 간직하던 악보를 우연히 보게 된 채터턴은 악보에 아름답게 쓰여있는 프랑스어 대문자에 매료되었고, 그 후로 뛰어난 지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채터턴은 자선 학교에 입학하여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읽기, 쓰기, 산수 등을 깨우쳤고, 10살의 나이에 '마지막 공현축일에(On the last epiphany)라는 시를 썼으며, 11살에는 <브리스틀 저널(Bristol Journal)>이라는 신문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자신이 지은 시를 15세기의 수도자 토머스 롤리(Thomas Rowley)라는 가공의 인물이 지은 것처럼 꾸미고, 롤리의 이름으로 지은 시에 자신의 영감을 모두 쏟아부어 운율과 정서 면에서 낭만주의의 선구자이자 천재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명성과는 달리 그는 평생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롤리의 시(=채터턴 자신의 시)를 출판사에 보내 시집을 출판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770년 런던으로 가서 서사시, 희곡 등을 마구 써냈으나, 돈이 쉽게 벌리지 않아 금세 빈궁에 빠졌고, 이에 자포자기하여 결국 17세의 나이에 비소를 먹고 자살하였다.
사후 그가 롤리의 것처럼 지은 시는 어린 소년의 순수한 상상력 덕분에, 윌리엄 워즈워스, 퍼시 비시 셸리 등 19세기 영국 낭만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채터턴의 죽음 (헨리 월리스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