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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1:10:12

톰 오브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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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톰 오브 핀란드/tom_of_finland.jpg

1. 개요2. 생애3. 특징4. 평가5. 기타

1. 개요

시대를 풍미한 게이 일러스트레이터. Tom of Finland는 필명이며, 본명은 토우코 라크소넨(Touko Laaksonen, 1920–1991). 필명대로 핀란드인이다. 서구의 20세기 중후반 게이 문화를 언급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며, 일러스트레이터로 봐도 그 스타일이 대단히 독특하면서 훌륭했던 인물이다.

2. 생애

1920년 5월 8일에 핀란드 남서부의 도시인 카리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학교 교사였고, 토우코 라크소넨은 학교 옆의 관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을 카리나에서 보내다가 19세가 되던 해인 1939년에 헬싱키로 와서 광고 분야를 공부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남몰래 야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장교로 입대하여 참전했다. 이때 제복이 멋지기로 유명한 독일군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1] 그의 작품세계에 꽤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그는 전역하여 학업에 복귀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게이 에로틱 일러스트를 계속해서 그렸다. 1953년, 게이 애인 밸리를 만나 서로 사귀게 되고, 토우코의 그림을 본 밸리는 이걸 발표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때 유럽에서는 동성애가 아예 법으로 금지되던 시절이라 발표할 수 없었다. 고심 끝에 토우코는 195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잡지사 피지크 픽토리얼(Physique Pictorial)에 그동안 그린 일러스트 몇 점을 투고한다. 편집자 밥 마이저는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지만, 토우코 라크소넨이라는 이름이 미국인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톰 오브 핀란드(Tom Of Finland)"라는 필명을 지어 잡지에 게제한다. 작품의 반응이 좋자 토우코는 계속해서 일러스트를 그려 게이 잡지에 투고했고, 미국 게이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끌게 된다. 이후 1958년 토우코는 광고 회사에 입사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게 되는데, 낮에는 광고 회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고 여가 시간에는 잡지에 게재할 게이 일러스트를 그리는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게이 일러스트 게재로 받는 금액은 너무 적어서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처음 발표하던 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게이 포르노가 법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때의 작품은 노출을 최소화했고, 성적 묘사도 없었다. 발표하던 잡지 피지크 픽토리얼도 명목상으로는 피트니스 잡지였기에 포르노를 게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63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게이 포르노가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토우코는 그동안 잠재웠던 욕망을 마음껏 폭발시켜 열심히 게이 포르노 일러스트를 그렸다.

수입도 크게 늘어나자 1973년 토우코는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게이 포르노 일러스트를 그렸다. 1976년에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지만, 한 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러스트를 도난당하고 말았다. 그 후 1978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가졌고, 이 무렵에 게이이자 사업가 더크 데너(Durk Dehner)를 만나게 된다. 더크는 토우코의 열렬한 팬이었고, 1979년 토우코와 함께 톰 오브 핀란드 재단을 세워 일러스트에 대한 저작권을 총괄하여 관리하게 된다.

1981년, 토우코의 애인 밸리가 인후암으로 사망했다. 이 때부터 토우코는 6개월은 헬싱키에서 지내고, 6개월은 로스엔젤레스로 와서 더크와 지내게 된다. 그러다 1988년 폐기종에 걸렸고, 약물치료로 인하여 손이 떨려서 연필로는 그림을 그리기 힘들게 되었다. 따라서 극후기 작품은 파스텔로 그린 작품이 많다. 이후 1991년 11월 7일, 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향년 71세.

3. 특징

터질듯한 근육, 콧수염, 꽉 조이는 가죽 재킷과 부츠, 청바지 혹은 넥타이제복, 선글라스거근이 그가 그리는 인물들의 상징이다. 극도로 마초적인 게이들을 묘사하는 것. 이러한 인물들을 연필만 가지고 숨막힐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그의 장기다. 본인도 이런 복장이 취향이었던 듯, 생전에 가죽 재킷이나 제복 등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들이 있다.

<Kake> 등 포르노 만화도 다수 제작하였는데, 대부분 별 내용 없이 난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역관광당하거나 NTR당하는 장면 등에서는 유머러스한 면이 있다. 특히 이 만화에 등장한 주인공 캐릭터 Kake는 톰 오브 핀란드의 대표 캐릭터로 뽑힌다.

4. 평가

근육과 남근, 그리고 가죽자켓에 대한 판타지 등 미국 게이스트림을 마초 스타일로 바꾸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전의 미국 게이문화에서 드랙퀸과 여성스러운 게이들이 서브문화에서 메인스트림이었다면 이 흐름을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꽉 달라붙는 가죽 옷을 입은 근육빵빵 마초 게이는 사실상 이 사람의 작품이다. 그 스타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예가 바로 영국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다.[2]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게이 페티시 축제인 폴섬 스트릿 페어도 톰 오브 핀란드의 작품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톰 오브 핀란드의 업적은 단순히 음지에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과 게이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현대미술계에서도 그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뉴욕에 있는 현대 미술의 성지인 MoMA에서도 그의 드로잉 다수를 영구소장하고 있으며, 시카고 미술관 등 여러 유명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에서는 톰 오브 핀란드의 복장 스타일과 콜라보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유명 디자이너들과도 협업하여 잡지 등에 많은 일러스트레이션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본연의 영역이었던 게이 포르노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에서 후대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일본장미물 장르를 형성하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고, 이 장미물의 유명한 작가 중 하나가 타가메 겐고로다.

2014년에는 핀란드에서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는 2018년 8월 30일에 ‘토우코 락쇼넨’의 전기영화인 ‘톰 오브 핀란드’가 대한민국에서 개봉한다.

5. 기타

로스엔젤레스 에코 파크에는 토우코 라크소넨이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지냈던 집이 있는데, 사망 후에는 톰 오브 핀란드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예약 후에 가이드를 동반하여 관람이 가능하다. 관람 비용은 1인당 20달러다. 자세한 것은 이곳을 참고하자.



[1] 핀란드는 2차세계대전 때 추축국 쪽에 가담했다. 겨울전쟁 때문에 소련과는 앙숙이었기에 독소전쟁이 터지자 독일 편을 든 것이다.[2] 메인보컬 롭 헬포드는 동성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