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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02 17:05:06

투란




1. 중앙아시아, 튀르크족을 가리키는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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توران(Turân)

페르시아어로 '투르의 땅'이란 의미로, 투르는 고대 이란 신화의 아베스타에 등장하는 신화적 영웅인 파리둔의 아들이다. 투르는 이란 북동쪽에 위치한 민족인 투르인들을 다스렸다고 하는데, 그들이 사는 땅을 투르의 땅이라고 해서 '투란'이라고 불렀다. 이란의 아리아인과 투란의 투르인은 서로를 적대하여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는데,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중 하나인 '파르바르딘 야세트'에서 '투르인'은 '투리아'라는 이름으로 프랑라시얀(아프라시압)과 같은 조로아스터교의 적들로 등장하는 등 이란에서는 투란을 적대했음을 알 수 있다.

아베스타 시기의 투르인은 아리아인과 적대 관계로서 스스로를 아리아인과 구별되는 별개의 민족이라 칭했지만 투르인들도 넓은 의미에서의 아리아인의 일파에 속했다.[1] 역사 시대 이후 투르인은 이란 북동쪽 국경 너머 중앙아시아에서 이란을 침략하는 유목민을 가리키게 되었고, 사산 왕조는 '투란'을 이들 유목민이 사는 중앙아시아 일대로 정의하며 이를 이란의 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6세기 이후 튀르크족이 서진해 중앙아시아 일대에 정착하자 이란의 입장에서 튀르크족은 과거 그 자리에 있던 '투르인'과 동일시되었고, 이란의 이슬람화 이후 이란에서 '투르인'과 '튀르크인'은 혼용되는 등 이 둘은 완전히 동일화되었다.[2] 흥미로운 사실은 튀르크족 본인들 역시 '투르인'과 '튀르크인'을 동일시한 이란의 이런 관념을 받아들였는데, 일례로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화와 이슬람화를 주도한 카라한 칸국은 튀르크계 국가임에도 투란의 왕인 아프라시압을 자신들의 선조로 여겼다.[3]

이러한 관념은 서구권으로도 전파되어 근대 서양 인문학계 역시 중앙아시아와 그 자역의 모든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로 투란을 사용한 적(예: 범투란주의)이 있지만,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라는 지적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2. 스타프로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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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튀르키예 국적의 축구인

아르다 투란 항목 참조.

4. 몬스터X몬스터 - 허무왕의 주인공

투란(풍종호) 항목 참조.

5. 아르슬란 전기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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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스 및 이웃 나라로 쳐들어가 약탈하는 걸 당연시하며 여기 왕은 강대하고 이웃 나라에서 풍부한 걸 약탈해와서 백성들에게 베풀어야지 참된 제왕이자 명군으로 존경받는다[4]. 평화를 사랑하고 학문을 권장하네 하는 왕족은 진작에 죽어 이름없이 묻혀졌을 것이라고 한다.

토크타미시 왕이 제위하여 파르스가 루시타니아에게 패하고 수도가 함락된 것에 좋아라 나머지 파르스 지역을 약탈하고자 쳐들어오게 된다. 그러다가 전투 중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짐사가 파르스군이 배치한 곳을 노리자는 건의로 투란군을 2개로 나눠 적을 급습한다는 게 되레 어둠 속에서 아군끼리 싸워 막대한 피해를 입고 엉망인 상태에서 파르스군 공격으로 박살나며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어처구니없는 이런 정보를 알려준 짐사는 배신자로 몰려 아군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된 채로 파르스군에게 구원을 받는데 그 모든 게 나르사스의 잔꾀였다.

이 전투 와중에 맹장 타르칸이 다륜과 싸우다가 전사[5]했으며 토크타미시 왕은 패배에 힘이 빠졌고 이때를 틈타 선왕의 왕제 아들인 일테리시가 겨우 한 번의 패배에 절망해 의욕을 잃어버린 토크타미시를 자격이 없다 판단해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하지만 또다시 나르사스의 꾀로 함정에 빠져 크게 패했고 디자불로스, 카를룩같은 휘하 장군을 모조리 잃고 3만에 달하는 병력 대다수도 잃으면서 투란은 위기에 빠진다. 젊은 남성들이 많이 희생되어버렸기에 본국을 추스를 틈도 없었고 결국 이전부터 앙숙이던 튀르크에게[6] 공격받아 사실상 속국으로 전락한다. 덕분에 이후 전쟁을 벌일 때는 은퇴했던 40~60대 이상 장노년 남성들에서부터 10대 중후반 청소년들까지 동원해야 했다.

그 뒤에 튀르크에게 속국신세가 되면서 얼마되지 않던 투란 젊은이들은 튀르크의 노예병같은 신세가 되지만 이들 중 한 부대인 가면부대를 이끌던 히르메스가 파르스와 전투에서 패한 뒤 튀르크를 배신하고 1백 명 남짓한 부하들을 이끌고 신두라군의 상선을 빼앗아 미스르로 가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와중에 짐사의 아우인 브루한을 비롯한 투란인 부하들이 히르메스의 충복으로서 미스르 국정에 같이 활약하게 된다.

달아난 일테리시는 사왕 자하크의 부활을 노리는 마법사들에게 잡히고 결국 그 강인한 몸을 사왕을 따르던 존사의 혼을 담아 부활해 사왕 군대를 이끌며 파르스 전역을 침공하게 된다. 그리고 투란 장수이던 짐사는 이 뒤로 아르슬란에게 충성을 다하게 되면서 아르슬란의 16익장 중 한 사람이 된다.

아르슬란 전기 애니 2기에서 등장하는데 몽골 모티브로 해서 복장이 몽골과 비슷하며 타고다니는 말들도 몽골말과 비슷하다.

6. 헝가리의 중형전차


7. 폭스바겐의 준중형 M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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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베트남의 항구도시 다낭의 옛 이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Tourane(투란)이라는 프랑스식 지명으로 불렸다.
[1] 아베스타, 그리고 중세 페르시아의 서사시 샤나메에서 등장하는 투란인의 이름은 이란계의 특성을 가진 이름이다. 이는 투란인이 파리둔의 후손을 자처하는 아리아인의 일파지만 이웃한 호라산에 살던 아리아인들과는 구별되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2] 샤나메 역시 이란의 이슬람화와 튀르크족의 중앙아시아 정착이 이루어진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 둘을 같은 의미로 혼용하였다.[3] 다만 아랍의 역사가 알 마수디는 "아프라시압은 튀르크인의 땅에서 태어났는데 이 때문에 역사가들과 일반인들이 그를 튀르크인이라고 적는 오류가 생겼다"라고 서술하는 등 '투르인'과 '튀르크인'을 확실히 구분하였다.[4] 그래서 소설 본문에서는 "만약 안드라고라스가 투란에서 태어났다면, 투란 백성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5] 사실 무예가 대단했기에 먼치킨 다륜도 한참을 싸워서 겨우 이길 정도로 강력한 적이었다. 또한 왕을 피신시키고 목숨을 바쳐 싸운 기사이기도 하여 다륜은 그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6] 투란과 튀르크는 조상은 같으나 둘로 갈라져 한쪽은 유목민족으로 다른 한쪽은 정주민족으로 살아가면서 서로 앙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