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타티스의 아들에 대한 내용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138808><colcolor=#fff>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No. | |
페르난도 가브리엘 타티스 시니어 Fernando Gabriel Tatís Sr | |
생년월일 | 1975년 1월 1일 ([age(1975-01-01)]세)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산 페드로 데 마코리스 |
신체 | 180cm, 84kg |
포지션 | 3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TEX) |
소속 팀 | 텍사스 레인저스 (1997~199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8~2000)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1~2003)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6)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2006/07~2008/09) 뉴욕 메츠 (2008~2010) 레오네스 델 에스코히도 (2010/11~2013/14) 알고도네로스 데 우니온 라구나 (2014) |
지도자 | DSL 레드삭스 감독 (2019)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1)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2021/22~) |
기록 | Hit two grand slams in one inning[1] (1999.04.23) |
가족 |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엘라이자 타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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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만두의 2번째 만루홈런을 날린 후. |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전 메이저 리그 선수이자 현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감독.
박찬호가 허용투수로 알려져 있는 한만두를 기록한 인물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이닝 최다 타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2] 또한, 현재는 메이저리그를 폭격하고 있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한만두의 임팩트와 아들 육성으로 인한 유명세에 비해 정작 타티스 시니어 본인은 11시즌 동안 통산 0.265의 타율과 113홈런을 기록한 평범한[3]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스카우터 역할을 하고있던 오마르 미나야[4]에 의해 발탁되어 1992년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고 레인저스에 입단한다. 17살에 나이에 입단하여 비교적 빠른 속도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해 나간 타티스는 계약 5년만인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콜업된다.그렇지만 그 다음해 곧바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노리던 팀으로 20승 투수 릭 헬링과 19승 투수 애런 실리가 있었지만 ERA 4점대라는 에이스라기엔 한참 부족한 성적이었고, 나머지 투수들은 ERA 6점대를 찍던 막장 상태였기 때문에 플레이오프를 위해 마크 맥과이어가 세기의 홈런쇼를 벌이긴 했지만 플레이오프와는 거리가 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베테랑 에이스였지만 FA가 임박했던 선발투수 토드 스토틀마이어와 유격수 로이스 클레이튼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텍사스에서 부진했던 선발 대런 올리버와 타티스를 보내준다. 당시 카디널스는 주전 3루수 개리 가에티가 39살의 노장이라 대체가 시급했기 때문에 젊은 타티스에게 주전 3루수의 자리를 맡겼다.
2.1. 1999년, 한만두와 커리어하이
그리고 자리를 옮긴 카디널스에서 이듬해였던 1999년 .298의 타율에 34홈런 21도루 107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이 해가 바로 결코 잊혀질수 없는 불멸의 기록인 한만두를 4월 23일 LA원정 3회 초 박찬호를 상대로 기록한 해이다. 이 한만두는 아직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남아있으며 덧붙여 한 이닝 한 타자의 최다타점 경기로도 역사에 남아있다.[5] 또한 이날 타티스가 날린 만루홈런들은 개인 통산 1호/2호 만루홈런이었다.한만두가 아니더라도 1999년의 성적은 정상급 3루수로 손색이 없는 기록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어가나 했는데..
2.2. 저니맨 인생
다음해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후루룩 말아먹는다. 그리고 곧바로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며 전성기 대신 저니맨의 막을 힘차게 열어제끼기 시작한다.[6]어쨌든 엑스포스로 가서도 부상을 떨치기는 커녕 유리몸 기질이 더 심화되면서 3년동안 총 208경기 출장에 그치면서 메이저리그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2004년엔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초청됐지만 생존경쟁에 실패했고 이후 그는 2005 시즌말까지 약 2년의 기간동안 고국인 도미니카에서 머무르면서 이렇게 초라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나 싶었다.
그런데 2005년 말, 스토브리그 도중 뜬금없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더니[7] 같은 해 7월 마침내 콜업되면서 무려 3년여 만에 메이저리그 복귀에 성공한다![8] 그렇지만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이듬해는 조용히 AAA에 머물렀고[9], 2008년에도 마이너에 머무르다 5월에 메이저리그 콜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9월 어깨탈골로 시즌을 마감하기 전까지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며 '올해의 재기상'까지 수상받는다. 이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부상당하자 그의 대체자로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2.3. 은퇴
이후 2010년을 끝으로 메츠에서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감했고, 그 후로는 3년간 윈터 리그에서만 뛰다가 2014년에 멕시칸리그에 진출하며 오랜만에 서머리그에 돌아왔다. 그러나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241을 기록하며 방출당했고, 결국 선수 생활의 공식적 은퇴를 선언한다.3. 연도별 기록
통산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1997 | TEX | 60 | 241 | 57 | 9 | 0 | 8 | 29 | 29 | 3 | 14 | 42 | .256 | .297 | .404 | .701 | 0.4 | 0.6 |
1998 | 95 | 350 | 89 | 17 | 2 | 3 | 41 | 32 | 6 | 12 | 66 | .270 | .303 | .361 | .664 | -0.1 | 0.1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1998 | STL | 55 | 229 | 58 | 16 | 2 | 8 | 28 | 26 | 7 | 24 | 57 | .287 | .367 | .505 | .872 | 0.9 | 0.9 |
1998 시즌 합계 | 150 | 579 | 147 | 33 | 4 | 11 | 69 | 58 | 13 | 36 | 123 | .276 | .329 | .415 | .744 | 0.8 | 1.0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1999 | STL | 149 | 639 | 160 | 31 | 2 | 34 | 104 | 107 | 21 | 82 | 128 | .298 | .404 | .553 | .957 | 3.2 | 3.0 |
2000 | 96 | 394 | 82 | 21 | 1 | 18 | 59 | 64 | 2 | 57 | 94 | .253 | .379 | .491 | .870 | 1.8 | 1.6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2001 | MON | 41 | 168 | 37 | 9 | 0 | 2 | 20 | 11 | 0 | 16 | 43 | .255 | .339 | .359 | .698 | -0.8 | -0.8 |
2002 | 114 | 430 | 87 | 18 | 1 | 15 | 43 | 55 | 2 | 35 | 90 | .228 | .303 | .399 | .702 | -0.8 | -0.3 | |
2003 | 53 | 196 | 34 | 6 | 0 | 2 | 15 | 15 | 2 | 18 | 40 | .194 | .281 | .263 | .543 | -1.0 | -1.6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2006 | BAL | 28 | 64 | 14 | 6 | 1 | 2 | 7 | 8 | 0 | 6 | 17 | .250 | .313 | .500 | .813 | 0.1 | 0.1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bWAR |
2008 | NYM | 92 | 306 | 81 | 16 | 1 | 11 | 33 | 47 | 3 | 29 | 59 | .297 | .369 | .484 | .853 | 1.3 | 1.3 |
2009 | 125 | 379 | 96 | 21 | 4 | 8 | 42 | 48 | 4 | 22 | 54 | .282 | .339 | .438 | .777 | 1.7 | 1.5 | |
2010 | 41 | 72 | 12 | 4 | 0 | 2 | 6 | 6 | 0 | 6 | 19 | .185 | .254 | .338 | .592 | 0.0 | 0.0 | |
MLB 통산 (11시즌) | 941 | 3468 | 807 | 174 | 14 | 113 | 427 | 448 | 50 | 321 | 709 | .265 | .344 | .442 | .785 | 6.8 | 6.3 |
4. 지도자 시절
2020 도쿄 올림픽 아메리카 예선에 참가하는 도미니카 공화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미국,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니카라과와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총 8개팀중 단 1개팀만이 올림픽에 진출하게 되는데 2년차 백수인 호세 바티스타를 비롯해 어빈 산타나등 왕년의 스타들이 대거 합류하는 만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30년만의 올림픽 진출을 노릴만한 전력을 이끌게 되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결과적으로 3등을 했으며, 한만두 대상이었던 박찬호는 해설위원으로 나오기에 한국vs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가 나올 시 묘한 장면이 연출될 뻔했으나 .본선 진출 확정 전에 감독이 헥터 베르그로 교체 되었으므로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5. 여담
- 해야갤산 드립으로 타티스를 흔히 매국노라고 부르는 드립이 유명해서 전 야구 관련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이젠 메이저리그좀 보는 사람이면 다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로 디시인사이드에 페르난도 타티스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
- 한국에서 약쟁이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은데, 타티스 주니어만 약물 복용 전과가 있을 뿐 타티스 본인은 공식적으로 약물 스캔들에 포함된 적이 없는 청정 타자이다.[10] 또한 SNS 계정을 통해 박찬호를 조롱했다는 정보도 거짓이다. 그 계정은 가짜 계정이다. 애초에 타티스와 박찬호는 2007년 뉴욕 메츠 마이너리그에서 동료로 같이 뛴 적이 있어서 꽤나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 은퇴 이후 한동안 SNS 등으로만 소식이 전해지다가 2017년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미겔 사노의 배팅볼 투수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의 반응은 만두만 먹을 줄 알지 배팅볼은 정말 못 던진다고...
-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야구 선수였으나 2022년,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약물 복용에 적발된 아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 동성애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다. FOX의 대표 아나운서 조 벅과 성관계를 한 게 걸려 조 벅이 이혼당했다는 내용이다.
[1] to one pitcher. 한 이닝 최다 타점 기록.[2] 한 이닝 만루 홈런 2회, 총 8타점.[3]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11시즌 동안 있으며 113홈런을 친 건 메이저리그 기준의 평범함이지, 야구계 전체에서는 엄청난 커리어의 선수이다. 물론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되었고 2024년 기준 5시즌 만에 127홈런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빈약하긴 하다.[4] 알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뉴욕 메츠의 단장 출신이다.[5]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이 날 타티스가 쓴 헬멧을 보관 중이다. 그는 정말로 딱 한 이닝으로 전설이 된 셈이다.[6] 만약 이 때 타티스가 3루수로서 건강하고 단단하게 버텨줬다면 카디널스의 3루 빈 자리는 없었을테고, 당시 한창 마이너리그를 핫하게 달구고 있던 알버트 푸홀스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푸홀스는 초창기에 3루수로 콜업되었으나, 1루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그냥 외야고 1루고 3루고 자리 나는대로뛰었다. 그러면서 3할 30홈런 100타점을 찍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2001시즌 세인트루이스 팀 기록을 봐도 푸홀스는 주전야수 8명 자리에 이름이 없고 그 밑에 당당히 유틸리티 선수로 등재되어 있다.[7] 교회를 지을 돈이 없어서 메이저리그로 돌아왔다고 한다. 참고로 복귀 이후 약 5년간 타티스가 벌어들인 돈은 320만 달러. 도미니카 물가라면 교회 10채는 짓고도 남을 돈이다.[8] 물론 주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백업[9] 이때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는다.[10] 도미니카 언론에서 나온 신빙성이 떨어지는 명단에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걸 근거로 삼는다면, 페드로 마르티네스, 애드리언 벨트레도 약쟁이가 된다.